[Review] 북새통의 겨울이야기

셰익스피어가 못 다한 이야기
글 입력 2016.11.20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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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 미마지아트센터 눈빛극장으로

 11월 19일 3시. 아트인사이트에서 좋은 극을 볼 기회를 제공해주신 덕에 오랜만에 연극을 보기 위해 대학로에 도착했다. 때마침 광화문에서 집회가 있기 때문인지 사람들이 평소보다 많아 연극 구경 전에 사람 구경을 먼저 할 수 있었다. '겨울 이야기' 이기 때문에 '눈빛' 극장에서 진행되는 것일까? 꽤나 진지한 고민을 하며 극장을 찾아 걸었다. 필자가 길치인 탓에 골목에 있으면 어쩌나 하는 우려와 달리 혜화 사거리를 쭉 가로질러 올라가니 '눈 빛 극 장' 시야 가득 극장이 자신을 알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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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층에 위치한 극장에 올라가자, 소규모의 공간이 드러났다. 이전에도 소규모 극을 여러 번 본 경험이 있었지만 '겨울 이야기'는 가장 작은 공간에서 관람하는 극이었다. 앞에서 표를 배부 받고 (맨 앞, 중앙자리 소위 '꿀'자리이다.) 입장을 기다리는 사이 2층이 관람객으로 가득 찼다. 

 보통 연극을 보기 전에 캐스팅 보드를 확인하는데, '겨울 이야기'는 출연 배우들만 표기되어있었다. 각자 어떤 배역인지 알 수 없어 공연 전 의아함을 가지고 극 관람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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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 상자와 스케치북

 극 시작 전 무대 위에 커다란 나무 상자가 놓여 있었다. 마치 보란 듯이, 궁금하지? 라고 물음을 던지는 상자. (얼핏 어린 왕자가 가지고 싶어 하던 양이 담긴 상자 그림을 보는 듯 했다.) 

 '상자'의 정체는 극이 시작하고 진행하며 드러났다. 양 옆으로 상자가 열리고, 가운데는 문을 연상 시키는 붉은 커튼이. 양 옆의 공간엔 '역할'을 결정할 여러 의상들과 소품들이 위치했다. 극은 상자를 주축으로 빠르고 경쾌하게 혹은 느리고 엄숙하게 진행되었다. 상자 속에서 배우들이 나올 때면 의상이 바뀌고 배역이 바뀐다. 혹은 상자 자체가 움직여 또 다른 공간과 시간을 만든다. 

 상자를 가장 먼저 이야기 하게 된 것은, 단순한 '상자'를 이용해 단순히 어떤 '소품' 만이 아니라 공간까지 표현해낸 점이 인상 깊었다. 무대 중앙의 큰 상자뿐만 아니라 무대에 놓여진 상자는 화려한 왕궁이 되기도 하고, 거친 파도가 치는 바다를 가르는 배가 되기도 한다. 배우들의 표현력과 연기력이 더해져 상자가 아닌 그 극의 상황에 맞는 '무언가'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무대 왼편에는 스케치북이 있다. 사실 처음 극이 시작하였을 때 셰익스피어의 원작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이게 무슨 내용이지? 극의 내용을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집중력이 저하되었다. 이야기의 길을 잃고 헤매지 않도록 무대 왼편에 놓인 스케치북은 1장, 2장 현재 무대에서 진행되는 이야기의 주제를 명시해준다. 그 흐름을 따라가자 극의 내용을 따라갈 수 있었고, 공감할 수 있었다. 

 이런 장치적 요소들이 '겨울 이야기'만의 특별한 점이 아닐까.



# 02 각자의 색이 자연스럽게 

 극을 보기 전 캐스팅 보드의 부재에 대한 의문이 풀렸다. 여기에서 '겨울 이야기'의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배역이 정해지는 타 극들과 달리 '겨울 이야기'는 배역을 맡는 배우들이 계속해서 바뀐다. 이 과정에서 혼란스러웠다면 극에 집중하지 못했을 텐데, 너무나 자연스럽게 각자의 색을 배우들이 표현한다. 그리고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왕'을 여배우가 연기하고, '왕비'를 남자 배우가 연기한다. 

 연기를 할 때 성적 차별이 없다는 점, 그로 인해 '연기'의 본질은 성별 상관없이 배우가 그 역할에 이입하여 자신의 연기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 03 질투, 겨울, 가족, 무조건 화해? NO.

 이야기는 셰익스피어의 원작을 기반으로 한다. 시칠리아의 왕 레온티즈와 보헤미아의 왕 폴릭세네스. 이 둘의 오랜 우정은 레온티즈의 의심과 질투로 무너진다. 헤르미오네와 폴릭세네스 사이를 비틀린 시선으로 본 레온티즈는 헤르미오네를 감옥에 가둬버린다. 

 질투에 눈이 멀어버린 왕. 헤르미오네는 옥 안에서 딸을 출산하였지만 레온티즈는 불륜의 결과라고 생각해 먼 땅에 내다 버리라고 명령한다. 그 후 왕비가 감옥에 갇힌 사실을 안 왕자는 병들어 죽고, 왕은 왕비 마저 절망감 속에 죽었다는 소식을 전달 받는다. 신탁 마저 부정하게 만든 질투를 인지한 레온티즈는 뒤늦게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만 시간은 되돌릴 수 없었다. 

 무대에서 박수를 치며, 시간을 뛰어넘는다. 16년 후. 버려진 딸 페르디타는 폴리세네스 왕국의 양치기에게 발견되어 그의 딸로 성장한다. 그리고 폴릭세네스의 아들인 플로라젤 왕자와 수줍은 사랑을 하는 사이가 된다. 그 사실을 안 폴릭세네스는 '고작 양치기의 딸'을 무시하여 그 둘을 갈라놓는다. 그리고 반전.

'야반도주'

 둘은 (우연하게도) 시칠리아로 도망쳤고 16년 만에 딸과 아버지가 상봉한다. 죽은 줄 알았던 헤르미오네. 실은 그 긴 16년 동안 숨어있었고, 이들은 극적으로 한 자리에 모이게 된다. 이대로 해피엔딩인가? 배우들이 박수를 유도하고, 인사를 하자 페르디타와 헤르미오네가 그들을 저지한다.

"이대로 끝이라고? 정말?"

 레온티즈는 이렇게 만났으니 용서하면 해피엔딩이라며 애써 웃는다. 

"감동저억?!"

 16년 간 괴로웠던 게 과연 왕 뿐일까? '겨울 이야기'는 단순하게 셰익스피어의 원작만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가 다 하지 못한 이야기. 그 16년의 고통은 페르디타와 헤르미오네에게도 공평하다. 16년 만에 자신의 친부모를 만나 혼란스러운 페르디타. 그렇다면 자신을 길러준 부모는? 갑작스레 변해버린 신분. 상황. 그리고 16년 간 왕을 피해 숨어살던 헤르미오네. '여왕'의 신분으로 누리던 권리들을 잃고 음지에 숨어 살며 왕의 잘못된 질투와 의심으로 문드러진 속. 이 모든 것을 단순히 '가족'이라는 이유로 용서하고 화해해야 하는 것일까? 

 극은 이렇게 셰익스피어가 하지 못한 이야기를 보여주며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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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을 보고 나오며 스스로 내린 결론은 'NO'.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그 자체로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사회적 문제로 가정 폭력과, 성추행, 아동 학대 등이 대두 된다. 그만큼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용서할 수 없는 일들이란 얘기이다. 그렇지만 이면에는 분명히 '가족이니까' 라는 이유로 묻힌 이야기들도 많을 것이다. 그 문제로 인해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무너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그래도, 그 두려움에서 도망치기 위해 '나 자신'을 희생하는 게 과연 장기적으로 올바른 답일까? 

 아이가 잘못을 하면 어른들은 꾸중과 함께 교정을 한다. 역으로 (사회적 통념으로 정해진) 어른이 잘못을 했을 때도 마찬가지로 꾸중과 함께 교정이 필요하다. 현재로서는 도덕이나 '법'이 그 역할을 하고 있다. '겨울 이야기'가 만약 셋의 만남과 해피엔딩으로 끝났다면 다시 보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 이야기보다 더 나아가 의문을 던져주었기 때문에 생각할 여지를 주고 '다시 한번 더' 보고 싶은 마음을 생기게 해주었다. 무엇보다도 배역이 바뀌어도 이질감 없는 배우들의 높은 연기력, 상자의 변화무쌍한 역할. 

 초반에 극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웠던 점만 빼면, '겨울 이야기'는 셰익스피어의 이야기 보다 한층 더 깊은 내용을 담은 생각이 깊어지는 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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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lust by 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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