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과거와 현재가 만나다, 2016 서울 루나포토 페스티벌 현장

글 입력 2016.09.13 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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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현재가 만나다,
                                       - 2016 서울 루나포토 페스티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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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적으로 연극이나 뮤지컬, 음악회, 미술 전시회가 아닌 온전히 사진을 찾아보러 길을 나선 지가 무척 오래되었습니다. ‘사진’은 누구라도 일상생활에서 가장 기록으로 쉽게 남길 수 있기 때문일까요, 타인이 촬영한 사진을 특별히 시간 내어 보려고 하진 않았습니다. 불과 몇 초 만에 수십 장이 저장되는 저의 핸드폰 앨범에는, 눈으로만 보고 입으로만 먹기 아쉬워 카메라로 담아낸 사진부터 심지어 강의 시간에 필기하기가 번거로워 찍은 교수님의 판서 사진까지 온갖 다양한 사진들이 존재합니다.
   사진은 말을 한다고들 하는데, 수많은 나의 사진들 중에는 말을 할 수 있는 사진이 얼마나 될까, SNS에 업로드 되는 몇 초 사이에 수명을 다하고 마는 사진뿐인 것은 아닐까, 곰곰이 생각하며 서촌으로의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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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담서원은 종로구 보건소를 지나 위치한, 꽃밭이 널브러진 책방 겸 카페였습니다. ‘한뼘 미술관’이라 불리는 한 쪽 갤러리에서는 임채욱 작가의 <인왕산-서울의 진경을 품다>가 전시되어 있었고요. 서촌 뒤로 보이는 인왕산의 구석구석 골짜기와 바위, 그리고 산에서 바라본 마을의 전경을, 마치 묵을 머금은 정교한 붓놀림처럼 흑백 필터로 담아낸 사진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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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효자로를 끼고 위치한 통의동 보안여관은 80여 년의 세월동안 여관으로 사용된 흔적이 고스란히 간직된 곳이었습니다.  
   그곳에서는 <추적자; 그들은 너무도 사랑했다>라는 제목 아래 , 작가들이 사랑한 ‘인민’, 현실에 존재하는 ‘인민’을 마주하고 현재화하는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사실 저에게는 인민이라는 단어가 공산주의, 사회주의 체제 하의 용어라는 이미지가 강했는데, 원래 ‘국가를 구성하는 자연인(네이버 백과)’, ‘피지배자이자 국가와 사회의 주인(두산 백과)’을 의미했다고 합니다. 오늘날에는 계급적 시각에서 노동자·농민·지식인·민족자본가를 주로 가리킨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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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당 전시의 주제어답게 1층 신학철 작가의 아카이브 전시실에서는 슬라이드 영사. 영상자료, 사진콜라주, 몽타주 작업 등을 통해 ‘인민’의 정의에 대한 사색과 고찰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무엇이 인민을 상대적인 계급 요소로 해석해 수동적인 존재로 만드는가, 인민, 혹은 우리라는 공동체가 사라지고 개인만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나’는 어떤 위치에 있는가 등 인민에 대한 스물 하나의 응답 하나하나에 발걸음을 멈추게 되더군요.
   2층은 조금 더 우리와 밀착된 느낌입니다. 과거와 현재에 공존하는 한국 현대사의 모순과 현재 순화되어 버린 문제의식에 대한 고민, 부조리와 투쟁을 겪으며 일상을 담담히 살아내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세월의 흐름에 못 이겨 낡아진 여관이지만 그 안에 자리 잡은 작가들의 의식과 사진만큼은 시간에 부식되지 않고 남아 기억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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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으로 사진위주 류가헌(류가헌 사진책 도서관)의 사진전이 저를 맞이했습니다. 성남훈 작가의 사진전, <불완한 직선>은 작가가 민족과 종교 갈등, 자원 전쟁으로 떠나는 난민들을 바라본 25년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겨울 바다를 건너기 위해 보트를 타는 이들, 창문을 넘어 기차에 올라 희망을 알 수 없는 여정에 몸을 맡기는 이들 혹은 기차선로에서 언제 올지 모르는 다음 기차를 기다리는 이들, 불완한 직선의 길을 끊임없이 걷고 또 걸어 마침내 그리스 레스보스섬에 도착한 난민들의 행렬, 떠도는 이들을 가슴이 품은 레스보스의 고요한 밤 이 모든 것이 몇 장의 사진에 실려 있었습니다.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기나긴 이 행렬이, 마치 눈앞에 보이듯 그려졌습니다.

   이재갑 작가의 <그림자가 일어섰다> 또한 역사가 되어버린 지나간 날들을 프레임에 담아냅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강제 징용된 조선인들이 동원된 일본의 지하시설, 베트남 전쟁에서 민간인 학살이 자행되었던 그곳과 기억, 혼혈인 1,2,3세대들에 대한 기록, 경산 코발트 광산 민간인 학살사건 등 우리가 제대로 보지 못했던 것들, 혹은 정확히 알기를 외면했던 것들, 왜곡된 기억들에 대한 면면을 가공하지 않은 있는 그대로, 진정한 역사 그 자체로 선사하였습니다. 또한 한 코너에 마련된 작가의 스크랩북을 넘기던 중 94년도 실린 신문기사의 위안부 문제 내용과, 그로부터 22년이 지난 지금도 변함없이 같은 실정이라는 사실에 놀라기도 하였습니다.
  
   한편 <또 다른 한국인>이라는 제목으로 써내려간 혼혈인 세대의 기록을 보며, 개인적으로 계속해서 보기를 미루어두었던 송 라브렌티 감독의 <고려사람들>, 얼마 전 EBS국제다큐영화제에 소개된 김정 감독의 <망명3부작> 등 중앙아시아 고려인의 역사와 현재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꼭 한번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장의 사진이 보는 이에게 말을 걸 때, 그 힘은 고요하고 강하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잊고 있던 것, 혹은 부재하는 것을 현재로 불러와 그 이야기를 전달하고, 더 나아가 가슴으로 기억하고 간직하기. 사진 한 장이 그걸 해내고 있는 것입니다. 역사의 순간을 붙잡은 사진은 수십 년이 지나도 늘 변함없이 기억될 것이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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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브닝 스크리닝(Evening Screening), ‘달과 사진의 밤’은 서울, 그리고 한국의 정체성을 가진 국립고궁박물관 마당에서 진행된 포토필름 상영회였습니다.
가을 밤 하늘 아래 뮤지션 김목인의 공감가는 노래들로 첫 문을 열어 더욱 특별했던 포토상영회. 총 15명 아티스트들이 만든 자유로운 형식의 정지된 사진 프레임을 동영상의 방식과 어울리는 음악들로 함께 버무린 기존 사진의 틀을 깬 필름 상영회였습니다.  15개 주제의 사진작품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내는 가운데, 공통적인 느낌은 작가가 끊임없이 관찰해온 사물의 정체성을 탐구하고 나름의 기준으로 나열한다는 데 있었습니다.
   'TV를 보다'를 주제로 우리가 TV를 시청할 때 취하는 다양한 모습을 담은 사진들, 행인들의 옷차림을 유형별로 분석해 옷의 정체성을 파헤친 사진들, SNS상의 셀피를 관찰해 셀피를 가장 잘 찍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 등 가장 일상적인 주제를 시작으로, 반정부 지도자로서 정치적 사건에 연루되어 행적을 알 수 없게 된 시아버지의 증거들을 추적한 사진들, 장승이 가진 위엄과 정서를 그대로 담으며 80년대의 사진이 오늘까지도 유효하다는 것을 보여준 육명심 작가의 작품 등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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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우리네 인생, 인생을 살아가게 하는 ‘시간‘에 관한 것을 이야기한 케빈 오 무니 작가의 작품이었습니다. 1월부터 12월까지 하루의 24시간이 한 프레임의 12개 화면에 편집된 영상으로 동시에 재생되는데, 작가의 아버지가 살아계셨던 10월과 돌아가신 후의 12월이 한 프레임에 같이 있다는 것 또한 주목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일 년 열두 달을 얼마나 반복적이고 규칙적으로 살아가고 있었는지, 시간이 우리 인생을 어떻게 지배하며 우리는 하루라는 주어진 시간 속에서 어떤 삶을 살아갈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되는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 데미를 장식한 왕칭송의 ‘기념비의 역사’는 역사가 남긴 기념물들의 도상을 모아 평범한 사람들로 하여금 기념물 속 인물의 포즈를 재현시키는 행위를 촬영한 영상이었습니다. 권력이 이루어낸 역사적 기념비를 자유로이 해체함으로서 진정한 역사를 만들어가는 이는 누구인지, 통의동 보안여관 사진전의 ‘인민’에 대한 고찰과 같은 맥락으로 역사의 주체로서의 권력과 상충되는 인민의 존재가치를 고민한 인상적인 작품이었습니다.
      
   이렇듯 이번 루나 포토 페스티벌은 사진이 담아야 할 대상에 대한 고민과 함께 과거와 현재라는 역사를 함께하는 사진의 역할을 확실히 각인시켜준 계기가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요즘과 같이 사진이 쉽게 소비되고 잊히는 시대에, 정지되어 있지만 우리에게 말을 건네며 살아 움직이는 이러한 사진들은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는 생각이 듭니다.

   
 
   위에 적혀있는 곳 외에 다양한 갤러리와 전시실이 서촌에 위치해 있습니다. 러버 밴드를 한번 구매하면 모든 사진전을 자동으로 관람할 수 있으니 나름대로 출발 지점을 정해 한 곳 한 곳씩 자유롭게 사진을 감상하고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요? 또 하나, 가을 밤 감상했던 이브닝 스크리닝 시간이 무척 신선했던 만큼 다음 페스티벌 기간에 기회가 된다면 꼭 한번 참여해보시길 추천합니다.


[심한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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