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무용과 판소리의 한 마당, 국립극장 공연 < 심청 >을 보고 나서 [공연예술]

글 입력 2016.06.06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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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동네 출판사의 페이스북 이벤트에 당첨 되었다. 황석영의 「심청」을 소개하며, 국립극장에서 6월 2일부터 4일까지 진행한 국립무용단 공연 <심청> 티켓을 신청 받았던 이벤트다. 기대하지 않았건만, 운이 좋아 생에 첫 무용을 이렇게 접할 수 있었다. 게다가 판소리 심청가의 창이 함께 어우러지는 무대! 몸짓과 소리(서양 오페라가 아닌 판소리!)가 어떻게 조화를 이룰지 그 기대가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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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청>은 총 5장으로 구분된다. 


  1장에서는 심청이 탄생하고 곽씨 부인이 죽음을 맞이하는 다이내믹하고 비극적인 초입 부분을 다양한 연출과 동작들을 통해 표현한다. 군무(群舞)가 굵은 밧줄들 아래서 꿈틀대며 몸을 뒤집고, 무대 위를 달려다니는 부분에서는 생명의 탄생을, 상여꾼의 옷을 입은 남자들이 비장한 음악과 함께 느리고 장중한 움직임으로 다가와 심청 어미와 함께 무대 뒤로 사라지는 부분은 죽음을 암시한다. 2장은 슬픔에 빠진 맹인 심학규가 힘찬 도약과 손짓을 선보이며 개울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장면을 묘사하는데 이때, 그 격동하는 불안한 심리를 묘사하기 위한 것이지, 아니면 물살을 묘사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흘러내리는 듯한 천을 들고 나오는 여인들이 인상적이다. 그리고 몽은사 화주승에게 눈을 뜰 수 있도록 하는 공양미 삼백 석을 재물로 바치겠다고 약속한다. 3장은 심학규가 눈을 뜨는 장면만큼이나 유명한 심청가의 백미, 절정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다. 심청이 인당수 물에 떠내려가는 씬. 위엄 있는 걸음으로 나타나 느린 춤사위를 보여주다 갑자기 치마폭으로 눈을 가리고 냅다 달려 사라지는 식으로, 뱃전에서 죽음을 마주하고 있는 심청의 심리를 극대화시켜 보여주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사실 내겐 가장 어렵게 느껴지는 장이기도 했다. 이를 극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두 명의 심청을 등장시켜 서로의 그림자처럼 붙어 같은 춤을 추도록 한다. 죽음 앞에서 갈등하는 심청의 마음을 표현했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론 감정은 전해졌지만 시각적으로 혼란스러운 무대였다. 4장은 바닷속 용왕의 세계를 보여준다. 무용수들은 빠르고 깨알 같은 발동작과 도약으로 물고기와 같은 바다 생명체들을 연상시켰다. 여기에서 심청은 새로운 삶을 얻고 육지로 나아가 황후가 된다. 5장은 황후 심청이 화려한 의상을 입고 여인들과 춤을 추며 황궁의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심청은 심봉사를 찾기 위해 맹인 잔치를 여는데 이 장에서의 군무가 가장 화려하고 역동적이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드디어 심청과 심학규가 만나 그가 눈을 뜨고 막이 내린다. 


  생에 첫 무용을 관람한 소감은 구구절절 말하기가 힘들다. 내겐 그저 ‘신세계’였다고 밖에 할 말이 없다. 정말로 새로운 경험이었다. 여타 다른 무용극을 접한 적도 없거니와 워낙 내겐 낯선 예술 분야였기 때문에 비교할 만한 대상도 없다. 사실 처음이라는 부담감 때문에 이해하려고 따라가는 데에 급급했던 점도 적지 않다. 심청가는 서사성이 뚜렷한 작품이라 진행을 위해서는 당연히 구체적인 무언극이 들어갈 것이라 예상했다. 그래서 좌석에 앉을 때까지만 해도 태연하고 막연한 생각으로 극 시작을 기다렸다. 그러나! 그런 사실적이고 친절한 묘사가 거의 없어 바로 당황했다. 마지막 장에서 심청과 심학규가 재회하는 부분에서도 그들은 서로 몸이 스친다거나 손을 맞잡는 것과 같은 사소한 신체 접촉조차 하지 않았다. 무용수들은 드라마 진행보다는 다양한 음조와 분위기 변화에서 야기되는 감수성에 집중하고 거기에서 기민하게 반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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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고 하여 무용극 관람 초보자(?)가 공연 내내 모든 것을 놓칠 정도로 막막하고 어렵기만 한 것은 아니다. 판소리 창자와 고수의 무대 장악력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춤만 보면 바로 이해하기 힘든, 자칫 전달력이 떨어져 보일 수 있는 장면이라 하더라도 창자의 아니리와 창이 묵직하게 균형을 잡아주기 때문에 무대에 몰입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다. 뛰어난 연출도 한몫을 한다. 무대 세트 자체부터 파격적이다. 무대에서부터 길게 연결 된 관객석을 가로지르는 흰 길이 가운데 있는데, 인당수의 물줄기 같기도 하고, 생과 죽음을 가로지르는 길 같기도 하고, 심청의 험난한 여정 같기도 한 상징적 존재로 보인다. 그리고 조명 연출도 돋보인다. 슬픈 장면에선 창백한 기운이 감도는 흰 빛, 웅장하고 비장한 장면에서는 노랗고 붉은 빛, 바다 속의 푸른 빛, 그림자를 돋보이게 만드는 빛 등등 장면 전환과 관객의 극중 이해를 돕는 데에 탁월한 역할을 해주었다.


  이번 문화생활로 여러 가지 생각들이 오갔다. ‘무용’은 엄청난 것이라는 것. 정말 엄청나다고 밖에 못하겠다. 서로 비교할 문제는 절대 아니지만 문학, 미술, 연주와 같은 장르는 종이와 펜, 붓과 조형물, 악기 등의 사물을 매개로 예술적 감수성을 드러내지만 무용은 자신의 육신 자체가 펜이자 도화지이고 악기인 것인 게 아닌가. 손끝, 발끝, 발꿈치, 팔다리, 고갯짓, 허리의 미세한 각도와 움직임의 속도 등이 그 순간의 감수성을 좌우하다니. 끓어오르는 감정적 충동과 에너지를 마구 분출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몸 안에 가둬 명료하게 증류하고 승화시켜야 한다는 점이 가장 경이롭고 존경스러웠다. 의식의 한 과정을 보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다양한 무용극을 봐야겠단 생각이 든다. 드라마가 있는 무용이든, 소리에 반응하는 무용이든. 허공을 개척해나가며 날아오르는 몸의 열정에 큰 감명을 받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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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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