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영화 [대니쉬 걸] - 온전히 내가 된다는 것 [시각예술]

"무언가 달라졌어."
글 입력 2016.02.24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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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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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덴마크 코펜하겐. 풍경화 화가로서 명성을 떨치던 에이나르 베게너(에디 레드메인)와 야심 찬 초상화 화가인 아내 게르다(알리시아 비칸데르)는 누구보다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부부이자 서로에게 예술적 영감을 주는 파트너이다. 
어느 날, 게르다의 아름다운 발레리나 모델 울라(엠버 허드)가 자리를 비우게 되자 게르다는 에이나르에게 대역을 부탁한다. 드레스를 입고 캔버스 앞에 선 에이나르는 이제까지 한번도 느껴본 적 없었던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또 다른 자신의 모습을 마주한다. 
그날 이후, 영원할 것 같던 두 사람의 사랑이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하고, 그는 모든 것을 송두리째 바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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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달라졌어."



아내가 그리던 초상화의 대역을 위해 스타킹을 신고, 가슴 위에 새하얀 드레스를 살포시 올리는 순간, 그의 손끝과 눈꺼풀이 파르르 떨린다. 숨죽이고 있던 릴리가 조금씩 꿈틀거린다. 며칠 후, 자신이 아닌 모습을 연기해야 하는 가식적인 파티를 싫어하는 에이나르를 위해 베게너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파티에 갈 것을 제안하게 되고, 그는 에이나르가 아닌 릴리가 되어 눈부신 모습으로 파티에 등장한다. 그곳에서 만난 남자와 자신도 모르는 끌림에 키스를 하던 도중 릴리는 코피가 터진다. 초경을 시작한 그의 내면에서는 서서히 에이나르가 사라져가고 릴리가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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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제가 여자라고 믿어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조금씩 달라져가는 에이나르가 걱정스러운 베게너는 여러 의사들을 찾아간다. 한 병원에서 호르몬의 불균형이라는 진단을 내리고 에이나르에게 고통스러운 방사능 치료를 가한다. 하지만 사실 에이나르는 잘못된 것이 없기에 치료할 것도 없다. 여전히 자신을 여자라고 믿는 에이나르를 의사는 미친 사람 취급을 해버리고 만다. 베게너는 자신이 사랑하던 에이나르의 모습을 죽이고 릴리로 살아가기로 결심한 그의 곁을 지키며 그를 도와줄 방법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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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온전히 내가 되었어."



베게너는 힘들어하는 에이나르를 도와줄 사람을 찾기 위해 에이나르의 어릴 적 친구였던 한스를 찾아간다. 그리고 마침내 에이나르가 혐오하는 자신의(남성의) 몸을 여성의 몸으로 바꾸어 주는 수술을 할 의사를 만나게 된다. 목숨을 잃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에이나르는 신의 실수로 잘못 가지고 태어난 자신의 몸을 바로잡기로 결심한다. 두 번째 수술을 기다리며 수술 방에서 홀로 오열하는 그는 어쩌면 죽음을 직감했을지도 모른다. 수술을 마친 후, 엄마의 품에 안겨 릴리로 다시 태어나는 꿈을 꿨다고 말하며 눈을 감는 그는 마침내 온전히 자기 자신이 되었다. 나는 그의 입가에 작은 미소를 보았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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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뭐라고 이런 사랑을 받는 걸까?"



완벽한 결혼 생활을 하던 도중 사랑하던 남편이 여자로 살아가겠다고 한다면 이를 지지해 줄 용기가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게다가 당시는 1920년대로 성전환수술이라는 것은 전례 없는 일임은 물론이고 자신이 다른 성별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정신분열 진단을 받던 시대였다. 자신의 그림에 대해 남편이 딜러에게 이야기 하는 것조차 크게 자존심이 상해하는 베게너는 누구보다도 독립적이고 당찬 캐릭터이다. 하지만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을 찾을 수 있게 하기 위해 끊임없이 돕고, 믿어주고 보내주기까지 하며 완벽하게 헌신적으로 사랑한다. 이러한 그녀의 사랑은 위대하다는 말로도 한없이 부족하다.
 
그녀에 비해 에이나르, 혹은 릴리는 다소 이기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에이나르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힘들게 하면서까지 어떻게, 왜 꼭 여자로 살아가야만 하는가에 대해 조금 더 그를 이해할 수 있을만한 장면들이 들어갔어야 한다는 것이 함께 영화를 본 친구의 입장이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베게너와 에이나르의 사랑이 너무나 일방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가장 기본적인 육체와 정신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그에게 주변을 돌아볼 여유를 말하는 것은 너무 가혹한 요구가 아닌가 생각한다. 왜 꼭 여자로 살아가야만 하는가에 대한 이유는 없다. 내가 나로 살아가는 것을 선택하지 못했던 것처럼 릴리에게도 여자로 살아가는 것은 애초부터 선택사항이 아닌 것이다. 풀려버린 스카프가 바람을 타고 날아가도록 보내주는 베게너는, 에이나르가 그의 그림 속 늪으로 언젠가 사라져버릴 것임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릴리와 에이나르
    

저 사람은 여자다. 저 사람은 남자다. 누군가를 만나는 찰나의 순간에 우리의 뇌는 그 사람을 두 개의 거대한 집단 중 하나로 분류하는 작업을 거치게 된다. 대개 이 작업은 외모, 특히 몸을 통해 이루어진다. 한번 구분지어진 이 성별이라는 것은 그 이후에 발생하는 그 사람의 모든 말과 행동을 설명하는 기준이 된다. “남자답다” “여성스럽다” 혹은 “남자치고는 어떠하다” “여자치고는 어떠하다” 등의 말들로 그 사람을 파악하는 것은 매우 간편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것은 당연하고 쉬운 일이다. 성별이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게 주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에이나르는 남자의 몸으로 태어나기를 선택한 적이 없고, 나는 여자의 몸으로 태어나겠다고 선택한 적이 없다. 스스로 선택하지도 않은 것을 자신의 가장 큰 정체성으로서 받아들이고 살아가야한다는 것이 생각해보면 참 억울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한 일인 것이다. 나아가 어쩌면 여자의 몸, 남자의 몸이라고 구분하는 것 자체가 이미 불분명하고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기준에 지나는 것은 아닐까. 애초에 인간을 성별이라는 기준으로 이분화 하는 것이 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에이나르도 릴리도 결국 한 사람일 뿐인 것처럼.


성소수자에 관한 영화라는 말을 듣고 영화관을 찾았다. 하지만 영화는 성소수자라는 소재에 대해 크게 사회적으로 접근하지는 않으며 두 사람의 애절하면서 아름다운 사랑이야기와 자신을 찾기 위한 용기 있는 도전이라는 이야기로서 접근한다. 에이나르가 거울을 보며 자신의 몸에서 남성을 지워내는 장면이나, 홍등가 여성을 관찰하며 손동작과 표정을 따라하는 등의 파격적인 장면을 신비로운 분위기로 연출하여 관객이 자연스럽게 이야기에 흡수되게끔 한다. 
영화를 보는 동안은 그 잔잔하면서도 압도하는 분위기에 몰입되어 있었지만 영화를 다 보고나니 조금 더 감상을 줄이고 메시지를 던져주어도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감독은 그들의 이야기를 두 사람의 아름답고 위대한 사랑이야기로 남기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우리의 아주 가까운 곳에 에이나르와 같은 혼란을 겪으며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영화에 드러나지 않은 수만가지 시선과 그에 따른 수만가지 고통이 존재할 것이다. 
언제나 정상과 비정상은 다수에 의해 구분 지어지지만 그 구분은 시대가 변하며 힘을 잃기도 한다. 이 영화와 같은 작은 움직임들이 모여 보이는 것에 불과한 ‘몸’으로 정의되는 수많은 비정상이라는 구분이 하루 빨리 힘을 잃어가기를, 모두가 '온전히 자기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기를 바라 본다.
 
 

 
 

 
[박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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