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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에세이
[에세이] 순도 백 퍼센트의 사랑
열다섯 살에 난 열렬히 사랑에 빠졌다. 혼자.
열다섯 살에 난 열렬히 사랑에 빠졌다. 혼자. 내가 사랑한 여자아이의 이름을 세영이라 하자. 세영은 검은 긴 생머리가 가슴께로 내려왔고 키는 나보다 한 뼘 반 정도 작았다. 그해에 난 전학생이었고 새로 온 학교가 익숙하지 않았다. 친구들을 사귀고 적당한 무리와 어울리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무료했다. 그 학교는 학생 수가 많지 않아 과목별 선생님을 따라 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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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은 에디터
2021.12.28
칼럼/에세이
에세이
[에세이] 집안일의 가격은 얼마인가?
세탁기만 고장 나지 않았다면 이런 귀찮은 생각을 하지도 않았을 테지.
사소한 이야기를 해보자. 얼마 전 세탁기를 앞에 두고 기분이 상했다. 최근에 세탁기가 고장 나 세탁기를 돌리면 싱크대 밑으로 계속 물이 새 나왔다. 몇 시간 동안 문이 안 열리기도 했다. 한동안 속 썩은 나는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 빨랫감도 별로 없으므로 그냥 손빨래하고 살기로 했다. 손빨래는 귀찮은 일이지만 엉망인 세탁기를 두고 감정 소모하는 일보다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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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은 에디터
2021.12.04
칼럼/에세이
에세이
[에세이] 네가 나오는 꿈.
사랑 이야기
너를 만났을 때, 나는 열네 살이었다. 이제 막 입기 시작한 교복은 어색하고, 늘어난 수업 시간과 과목마다 바뀌는 선생님도 낯설게 느껴지던 때였다. 남자 아이들은 머리에 왁스를 바르기 시작했고 여자 아이들은 눈 위에 아이라인을 그리기 시작했다. 난 이마의 여드름을 가리기 위해 앞머리를 일자로 잘랐을 뿐, 뿔테 안경에 무심한 표정 그대로였다. 매일 아침 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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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은 에디터
2021.08.27
칼럼/에세이
에세이
[에세이] 성훈이 이빨 빠진 날 - 돌봄교실 일기
오늘 밤 이빨 요정은 성훈이의 방을 잘 찾아갈 수 있을까?
난 작년부터 일 년 반이 넘게 초등 돌봄교실에서 근무하고 있다. 돌봄교실의 아이들은 1학년부터 5학년까지 다양하다. 코로나 시국과 겹친 채 매일 4-8시간씩 아이들과 함께 있다보니 이런저런 일도 많았고, 기억에 남는 장면도 많았다. 일기를 들추어 보면 짧게 나마 그 순간들에 대한 기록이 쓰여 있다. 아이들은 잊고 나도 때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때가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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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은 에디터
2021.07.31
리뷰
공연
[Review] 깊은 사랑에 빠지는 건, 깊은 불행에 빠지는 것. 오페라 '토스카'
모든 이야기가 단 하룻밤 사이에 이뤄진다. 사랑과 질투, 정치, 배신, 고문, 살인까지 피처럼 붉은 이야기다.
코로나 시국으로 공연장에 드나드는 일이 거의 없다시피 한 요즘. 운 좋게 예술의전당에 갈 기회를 얻었다. 제 12회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 참가작 중 하나인 <토스카>가 예술의전당에서 공연됐다. 오페라를 보러 간 건 처음인데, 간신히 시간 맞춰 가니 매표소가 사람들로 가득 차 웅성웅성했다. 중장년층이 대다수였고 그 많은 사람들이 어쩐지 다들 서로를 알아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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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은 에디터
2021.05.30
리뷰
PRESS
[PRESS] 웃으세요, 아버지. 웃어요. -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엄숙한 비극이 만들어내는 카타르시스.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이 명동예술극장에 다시 돌아왔다. 4월 9일부터 5월 9일까지. 중국의 기군상의 고전 희곡 『조씨고아』를 고선웅 연출가가 직접 각색, 연출한 이 작품은 2015년 초연 직후부터 뜨거운 호평을 받았다. 동아연극상, 대학민국연극대상 등을 수상하며 2019년 '국립극단에서 가장 보고 싶은 연극' 1위를 차지했다. 작년에 공연을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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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은 에디터
2021.04.18
오피니언
영화
[Opinion] 어린이를 재현하는 방법 - 미쓰백 [영화]
고유한 존재로서 아이를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말해주는 작품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영화 미쓰백의 주인공 ‘백상아’는 아무도 믿지 않고 고독하게 살아간다. 그녀는 과거의 상처를 안고 산다. 어느 날 백상아는 폭력과 학대 흔적이 역력한 이웃집 아이 김지은이 자꾸 눈에 밟힌다. 백상아(미쓰백)는 김지은에게서 외롭고 힘들었던 자신의 어린 시절을 겹쳐보고,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세상에 맞서 자신이 김지은을 구출해내겠다고 마음먹는다. 20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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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은 에디터
2021.04.09
칼럼/에세이
에세이
[에세이] 샤워를 하는 두 가지 방법
우리는 우리가 자라온 과거에서 얼마나 벗어날 수 있을까?
나는 지금 화장실에 있다. 미적지근한 온수가 나오고 머리는 깨질 것 같다. 어제 술을 너무 많이 마셨다. 머리카락에서 담배 냄새가 난다. 몸은 쥐어짜인 걸레처럼 기운이 없다. 나는 비척비척 목욕 의자에 앉는다. 이 의자는 이사와서 지금까지 쓴 적이 없다. 나는 항상 서서 샤워를 하니까. 하지만 오늘은 천근만근으로 몸이 무겁고, 꼼짝도 하기 싫고, 어디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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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은 에디터
2021.03.29
리뷰
PRESS
[PRESS] 우리는 동물이다 - 짐을 끄는 짐승들
모든 몸은 비장애중심주의의 억압에 노출되어 있다.
본가의 바둑이가 새끼를 낳았다. 바둑이는 개다. 바둑이는 새끼를 핥아주고 젖을 물리고, 바쁘게 돌본다. 그 광경을 보고 있던 나는 바둑이가 하는 일이 너무나 인간이라 놀랐다. 바둑이는 사랑과 기쁨, 우정, 논리적 추론까지 모든 자질을 가지고 있었다. 목줄을 떼어낼 힘과 사람말을 하는 기술 빼고. 우리가 사람들을 ‘인간적’이라 부를 때 드는 행동적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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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은 에디터
2021.02.28
오피니언
도서/문학
[Opinion] 낙태죄와 재생산권 - 배틀그라운드 [도서/문학]
2021년 1월 1일, 낙태죄는 폐지됐다.
2021년 1월 1일, 낙태죄는 폐지됐다. 2019년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 이후 다른 입법 없이 2020년을 지나면서, 더 이상 임신중지로 인해 처벌받지 않게 되었다. 낙태죄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지난한 투쟁에서 ‘임신중지 비범죄화’ 요구와 함께 가장 많이 들렸던 단어는 ‘재생산권’이다. 여러 시민단체는 ‘낙태죄 폐지가 끝이 아니라, 이를 바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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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은 에디터
2021.02.25
칼럼/에세이
에세이
[에세이] 세상에서 가장 터프한 열 다섯 살.
다무라와 나.
<해변의 카프카>는 내 방 책장 구석에 꽂혀 있었다. 하루키 광팬인 외삼촌이 놓고 갔거나 언니가 사놓고 잊어버린 책 중 하나로, 모두가 잊은 나머지 슬슬 먼지가 쌓이고 있었다. 나는 학교를 그만 둔 열다섯 살. 시간은 넘쳐나고 할 일은 없었다. 침대에 옆으로 누우면 내 눈높이에 책장 구석이 딱 들어왔다. 카프카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참 멋있는 이름이군.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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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은 에디터
2021.02.06
리뷰
PRESS
[PRESS] 여성, 철강 노동자, 밀레니얼 세대. - 러스트벨트의 밤과 낮
저자의 성장은 철광석이 불에 단련되어 철로 만들어지는 과정처럼 고통스러우면서도 아름답다.
"러스트벨트의 도시에서 주황빛 불꽃은 단순히 역한 냄새와 오염의 전조만이 아니다. 저 불꽃은 우리 역사와 우리 정체성의 일부다." 1. 녹이 슨 지대(Rust belt) 러스트벨트. 한때 미국의 70년대 제조업을 이끌었던 공업지대를 일컫는 단어다. 미국 철강 제조업은 한때 영광을 누렸으나, 제조업의 쇠퇴, 중국 자본의 유입 등으로 미국 공업지대는 차차 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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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은 에디터
2021.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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