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여성, 철강 노동자, 밀레니얼 세대. - 러스트벨트의 밤과 낮

글 입력 2021.01.26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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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스트벨트의 밤과 낮_표1.jpg

 

 

"러스트벨트의 도시에서 주황빛 불꽃은 단순히 역한 냄새와 오염의 전조만이 아니다. 저 불꽃은 우리 역사와 우리 정체성의 일부다."

 

 


1. 녹이 슨 지대(Rust belt)


 

러스트벨트. 한때 미국의 70년대 제조업을 이끌었던 공업지대를 일컫는 단어다.

 

미국 철강 제조업은 한때 영광을 누렸으나, 제조업의 쇠퇴, 중국 자본의 유입 등으로 미국 공업지대는 차차 쇠락했다. 높은 실업률과 빈곤, 권리를 박탈당했다고 믿는 가난한 백인 노동자들이 있는 이 지역을 둘러싼 시사 비평과 담론은 많지만, 러스트벨트, 미국의 쇠락한 지대에서 살아간다는 게 정말 무엇인지를 말하는 책은 드물다.

 

<러스트벨트의 밤과 낮>은 그 공백을 메워주는 반가운 책이다. 이 밀레니얼 세대 여성, 양극성 장애, 철강 노동자로서의 회고록이다. 남초 문화가 뿌리 깊은 제철소의 여성 노동자. 엘리스 골드바흐의 목소리는 냉철하고 따뜻하며, 담백하다.

 

 

저자사진_4.png

 

 

저자 엘리스 콜레트 골드바흐는 1986년 미국 클리블랜드에서 태어났다. 공업지대인 클리블랜드는 저자의 유년기에는 이미 쇠락해 을씨년스러운 러스트벨트가 되었다. 공업 지대의 황량함과 함께 자라난 골드바흐의 꿈은 고향을 벗어나는 것이었다. 미래가 있는 곳, 더 넓은 세계로 가는 것이 자신의 몫이라고 믿었다.

 

그는 교수의 꿈을 안고 대학원에 진학하지만, 학자금 대출과 생활비 등을 벌기 위해 쉬지 않고 일해야 했다. 거기다 양극성 장애라는 질병이 심각해져 더 이상 학업을 계속하지 못하고 고향 클리블랜드로 돌아오게 된다.

 

일자리를 찾던 그는 이내 그토록 벗어나고 싶던 공업 지대의 한가운데, 아르셀로미탈 클리블랜드 제철소에 취직한다. 제철소는 클리블랜드에서 얻을 수 있는 그나마 고임금의 일자리다. 노조가 있기 때문에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어느 정도 보장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제철소의 일이 고임금인 건 목숨을 걸고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철강 노동자들은 강철과 크레인, 타오르는 불꽃 밑에서 쉬지 않고 일한다. 제철소의 불꽃은 꺼지지 않고 사람들을 집어 삼키며 타오른다.

 

 

 

2. 유틸리티 노동자 6691번



유틸리티 노동자 6691번. 저자는 그렇게 불린다. 공장의 다양한 유지 보수를 담당하는 역할이다. 입사동기 23명은 흑인, 백인, 라틴계 등 다양하지만 여성은 단 3명이다. 제철소의 여성 노동자에게는 성희롱, 집적거림이 만연하지만 존중을 위해선 직접 맞부딪쳐 내야 하는 것이 제철소 세계다.

 

신참을 알리는 노란 모자를 쓴 그는 커다란 솥에서 강철 찌꺼기를 긁어내고, 기름에 전 바닥을 청소하고, 코일로 강철을 감는다. 그는 제철소의 세계에 들어서고 나서야 러스트벨트 사람들 속에  내재한 분노, 혐오, 두려움, 무엇보다도 이들의 정체성을 이해하게 된다.

 

 

"철강 노동자는 그들의 정체성이고 제철은 그들이 누구보다 잘하는 것이다. 제철소는 남들이 보는 녹 이상의 것이므로. 그 모든 것을 뒤로 하는 건 종교를 잃는 일과 다름없다. 그곳은 살아 있는 역사의 일부고, 그 경계선 안에서 우리 모두는 자신보다 더 큰 무엇과 연결되어 있다."

 

-167p

 

 

엄청난 규모의 아르셀로미탈 제철소에서 사람들은 다치고, 죽는다. 크레인과 탄광, 거대한 공장 기계들과 일한다는 건 매일 끔찍한 죽음을 아슬아슬하게 비껴가며 사는 일이다. 고참들은 그에게 죽은 노동자들의 얘기를 들려준다. 끔찍하고 잔인하지만 단순히 신참을 겁 주기 위한 건 아니다. 그건 일종의 추모다. 제철소의 세계, 험하고 고된 작업으로 먹고 사는 부침과, 동시에 한때 역사의 영광을 누린 강철을 만든다는 자부심은 철강 노동자들의 손에 알알이 맺혀있다.

 

 

 

3. 교차하는 이야기


 

 

"뭐가 그렇게 끔찍하죠?" 정신과 의사가 물었다. (...) "이 빌어먹을 나라에서 사는 게 끔찍해요. 됐어요?" 말을 뱉고는 내가 깜짝 놀랐다.


미국이라는 나라의 맥락을 벗어나서는 나의 슬픔을 이해할 수 없었다. 점점 커지는 점점 커지는 근사한 삶에 대한 요구와 지지 정당에 따라 점점 깊어지는 나라의 분열, 그리고 리얼리티쇼 스타 대통령이라는 광기 어린 상황과 변화를 추구했던 좌절된 꿈에 이르기까지-현재의 내 모든 상황은 미국이라는 특별한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여기에 따르는 슬픔을 미국에서의 내 위치와 별도로 생각하는 것은 슬프도록 불완전한 것이리라."

 

-349p

 

 

이 책은 철강 노동자로서의 세계에 대해서만 말하지 않는다. 이야기는 그의 부모의 삶, 양극성 장애, 성폭력 피해, 분열된 미국에서의 생애가 교차해 한 여성의 삶이 깊은 목소리로 울린다. 생계는 나아졌지만 골드바흐는 불규칙한 야간 근무, 육체 노동, 위험한 환경에서 일하며 양극성 장애가 재발하기 시작한다. 환각이 보이고 우울이 극심해 꼼짝도 할 수 없다.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회사에 가는 길에 교통사고를 낸다. 그의 양극성 장애는 대학 시절 성폭행 경험과 이어져 있다. 번쩍이는 환각 속에서 지난 시절의 상흔과 분노, 슬픔이 다시 그를 덮쳐온다. 젊은 여성인 그의 육체는 그의 삶과 분리되지 않는다. 그 기억과 제철소의 일상과 과거가 겹쳐지면서 골드바흐는 외적으로도 내적으로도, 고된 분투를 계속한다.

 

골드바흐는 미국 정치세력이 러스트벨트의 노동자들을 호명하는 방식이 연대가 아닌 분열과 혐오를 조장할 뿐임을 간파한다. 트럼프는 두려워하는 노동자들을 분노에 가득 찬 존재로, 몰락한 존재로만 바라보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골드바흐는 제철소 속으로 증오의 언설로는 포착할 수 없는 이들 삶의 풍부함을 발견했다. 자신이 이들 중 일부가 되어, 이들 정체성의 힘을 경험한다. 트럼프의 혐오의 말과는 다른 공동체의 목소리. 제철소 노동자들의 내면에서 반짝이는 연대의 힘이다.

 

 
"트럼프는 우리의 회복력을 보는 대신 우리를 찌부러뜨려 최악의 면을 도드라지게 했다. 그는 산업 노동자를 몰락한 자로 여겼고 몰락이 우리의 유일한 정체성이라고 우리를 믿게 했다. 그는 우리의 불안을 감출 수 있는 희생양과 분노의 대상을 제공했고, 그로써 그가 더 큰 권력을 탐하는 또 한 명의 부유한 권력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우리가 못 보게 했다. 그는 우리에게 복수심을 불어넣었고 우리의 분노를 부추겼다. 그는 우리 마음 속의 선을 훼손했다. 그것은 곧 우리가 지키기 위해 싸우는 그 모든 것의 섬세한 아름다움을 그가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4. 밀레니얼



이 이야기의 한 겹에는 밀레니얼 세대라는 정체성이 흐르고 있다. 그는 밀레니얼 세대로서 시도하면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교육을 받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우리는 예상치 못한 경기 침체기의 산물이었다. 오래 기다린 성인기가 도래하기 직전에 발밑에서 카펫이 치워졌으니, 우리는 스스로를 낯추고 묵묵히 걸으며 힘겹게 버텼다. 정책을 입안하기 전에 샌드위치를 서빙해야 했다. 사회에서 목소리를 내기 전에 라떼를 따라야 했다."
 

 

시대의 기대와 현실 사이의 간극에서 괴로운 분투를 해야 했던 엘리스 골드바흐의 회고록은 울림이 깊다. 밀레니얼 세대의 문제가 단순히 미국의 문제만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젊은 밀레니얼 세대 여성의 목소리는 미국이나 한국이나 현저히 부족하다. 골드바흐는 제철소에서 공동체의 정신, 실망과 상처에 맞서 싸우는 법, 다시 시작하는 법을 배우고 대학원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그는 3년 간 제철소에서 근무하고 그 동안 석사 학위를 취득한다. 결혼을 하고, 책을 쓴다. 그의 회고록 <러스트벨트의 밤과 낮>은 개인의 서사와 철강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이 잘 교차하는 수작이다. 마지막에 골드바흐는 강단에 서기로 다시 결심한다. 그는 클리블랜드의 정체성과 신성함을 뒤로 하고, 새 삶을 위해 갈 길을 떠난다.

 

저자의 성장은 철광석이 불에 단련되어 철로 만들어지는 과정처럼 고통스러우면서도 아름답다. 골드바흐가 떠난 뒤에도 제철소의 불꽃은 타오르고, 사람들은 그 아래서 노동할 것이다. 러스트벨트의 이면을 보았다 해도 저자는 언젠간 떠날 사람. 그 곳에 남은 이들은 또 무슨 생각과 사랑을 하며 살아갈 것인가. 궁금해진다.

 

 

[김나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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