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웃으세요, 아버지. 웃어요. -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글 입력 2021.04.18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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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단]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_공연사진1_(2020).jpg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이 명동예술극장에 다시 돌아왔다. 4월 9일부터 5월 9일까지. 중국의 기군상의 고전 희곡 『조씨고아』를 고선웅 연출가가 직접 각색, 연출한 이 작품은 2015년 초연 직후부터 뜨거운 호평을 받았다. 동아연극상, 대학민국연극대상 등을 수상하며 2019년 '국립극단에서 가장 보고 싶은 연극' 1위를 차지했다. 작년에 공연을 시작했으나, 코로나19로 인해 일주일만에 끝나고 말았다. 이번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는 이형훈, 홍사빈 등 새로운 배우들이 합류했다.

  

이 연극의 원작은 기군상의 고전 잡극 『조씨고아』다. 역사서 『춘추』의 사건을 소재로 한 대표적인 복수극이다. 역사서에 등장하는 사건으로 조씨 집안이 반역 모의로 고발당하고, 도안고가 기회를 타 권력을 장악하나, 이후 한궐 장군의 상주로서 조씨고아 조무의 복권이 이루어진다. 간신인 도안고의 만행으로 멸족의 위기에 놓인 충신 조씨 집안의 마지막 씨가 여러 충직한 이들의 희생으로 우여곡절 끝에 조씨 집안의 맥을 잇는 이 서사는 극적인 이야기로 전승되며 다양하게 창작됐다.원 잡극에서는 복수를 완수한 조씨고아가 도안고의 일족 삼백 명을 참하는 것으로 끝맺는다. 충신과 간신, 신의, 혈족에 대한 도리, 전통적인 효孝의식이 두드러지는 중국의 전통 복수극이다.

 

고선웅 연출가가 각색한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은 이 전통극을 새롭게 재창작했다. 제사를 지내기 위한 마지막 씨(아들이다!), 부모와 일족의 복수, 충직, 신의. 이런 가치는 과거의 유물처럼 멀고 어쩐지 고루하다. 개인적인 삶을 사는 현대인에게 복수와 명예에 대한 이야기는 크게 와닿지 않는다. 그렇다면 각색한 <조씨고아>가 뜨거운 호평을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처절한 복수극이라는원작의 서사는 가지고 오되, 이야기의 초점을 달리 했다. 역사서에 담기지 않았을 부분. 분명 있었을 테지만 누구도 주목하지 않은 그늘. 고선웅의 <조씨고아>는 충신과 간신의 갈등이 아니다. 이 연극은 개인의 삶과 선택에 대해 묻고 있다.

 

 

[국립극단]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_공연사진5_(2020).jpg

 

 

이야기의 주인공은 정영이다. 시골의사인 그는 조씨 집안의 문객으로 드나들며 친분을 쌓았다. 아내와 소박한 삶을 일구며 늦은 나이에 자식을 얻었다. 황실에서는 도안고가 계략을 싸 충신 조순을 모함하고, 조씨 일족은 구족이 무참히 처형당하는 피비린내나는 상황. 목 잘리는 소리가 소름끼치게 무대를 울린다. 정영은 남편 조삭이 자결하고 홀로 아이를 낳은 공주는 조씨 집안의 마지막 씨앗을 정영에게 맡긴다. 정영은 계속 거절하지만 결국엔 어쩌지도 못하고 아이를 품에 안는다. 공주가 자결했기 때문이다. 목숨이 칼날 위에 놓인 세상. 앞으로 정영이 가는 길은 이렇게 복수를 염원하는 사람들이 피로 뿌린 희생으로 만들어질 것이다.

 

연극을 보는 내내 무언가 벌어질 거라는 걸 알 수 있다. 정영의 임신한 아내와 조씨 집안의 아이를 임신한 공주가 반복해서 나오기 때문이다. 아이는 둘이고, 하나는 지체 높은 집안을 되살린 막중한 임무를 갖고 있고, 하나는 미천한 시골 의사의 자식이다. 잔악한 도완고에게 아이 하나만 바치면 하나는 어떻게든 살아나갈 수 있다. 귀하건 귀하지 않건 갓 태어난 아이는 다 비슷하게 생겼으니.

 

아이를 바꿀 것인가. 자신의 아이를 희생해 갓난 조씨고아를 살릴 것인가. 정영은 선택의 기로에 놓이지만 사실 선택권은 없다. 이미 조씨고아를 데리고 궁을 나오면서 죽은 사람들, 목숨을 버리면서 조씨고아의 복수를 정영에게 맡긴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조씨고아에게는 조씨 일가 수백 명과 고아를 위해 희생한 장수 한궐, 공주, 아버지의 목숨이 담겨 있다. 정영의 아들에게는 정영과 그의 아내가 주는 두 명 분의 사랑밖에 없으니 저울에 달아보면 승산이 없다. 충효와 신의와 대의를 위해 내 아이를 버리기만 하면 되는데,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정영에겐 선택권이 없다. 그의 어깨에 너무 많은 죽음이 얹혀버렸기 때문이다.

 

 

[국립극단]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_공연사진7_(2020).jpg

 

 

정영의 아내와 정영이 아이를 두고 벌이는 처절한 다툼. 아내는 간장이 끊어지는 목소리로 정영을 비난한다. "어떻게 자기 자식을 버릴 수가 있어요? 그까짓 게 뭐라고." 정영은 아내를 내치고 눈물범벅이 되어 도안고에게 자식을 바치러 간다. 극의 중반에 있는 이 장면이야말로 <조씨고아>가 가장 강렬하게 관객을 끌어당기는 부분이다.

 

지금까지 소중하게 지켜왔던 걸 전부 무너뜨리면서 제 손으로 제 아이를 죽여달라고 바쳐야 하는 일. 이것은 충효도, 신의도 아닌 사랑과 의무에 대한 갈등이다. 역사에 휩쓸려 버린 어느 범부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본다. 내가 저 입장에 있었다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어떻게 감당하며 살 수 있을지. 위대함에 공감하기 어려운 현대인에게 정영의 아내의 울음소리는 그 문을 연다. 이들이 처한 잔인한 시대가 절절히 와 닿는다.

 

도안고는 정영의 아이를 돌바닥에 세 번 내려쳐 죽인다. 정영은 그 장면을 본다. 아이는 죽고, 도안고는 충실하게 밀고한 정영을 높이 산다. 정영은 측근으로, 그의 아이는 양부로 받아들여 권세를 주겠노라 약속한다. 조씨 일가의 마지막 씨앗까지 죽여 복수를 끝낸 도안고는 속이 시원하다. "기쁘지 아니하냐? 웃어라. 웃어!" 도안고의 명령에 정영은 웃는다.

 

머리가 깨진 아이를 땅에 묻은 정영의 아내는 그 자리에서 자결한다. 복수를 부탁하며...복수란 뭘까? 갈수록 처절해지는 정영의 상황에서, 정영은 극 초반의 호들갑스러움, 방황하는 모습을 잃어버린다. 아무 선택권이 없는 상황에선 권력이 요구하는 대로 움직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죽은 사람들은 정영 앞에 목숨을 내던지며 그가 자신들 뜻대로 행하도록 권력을 행사한다. 도안고의 권력과 죽은 사람들의 부채에 시달리는 정영은 조씨고아와 남겨진 채 나날이 늙어간다.

 

 

[국립극단]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_공연사진9_(2020).jpg

 

 

복수란 무엇일까. 무얼 위해서 복수를 하는 걸까. 그걸 행하고 나면 무엇이 남을까. 2부가 시작되고, 스무살의 조씨고아와 늙은 정영을 보며 그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긴 세월을 도안고의 얼굴을 마주하면서도 정영을 버티게 한 힘은 대체 무엇인지. 정영이 복수를 결심하고 조씨고아를 품에 받아들일 때까지의 갈등을 다룬 1부에 비하면 2부의 복수는 생각보다 순식간에 이뤄진다. 조씨고아는 짧은 고뇌 끝에 도안고를 포박해 황제에게 넘기고 조씨 집안의 누명을 벗겨지고 조씨고아는 조무라는 새 이름을 얻고...이것이 정영이 이십 년을 기다린 복수다. 조씨 집안이 다시 역사서에 이름을 올리는 것. 정영의 황제에게 한 가지 질문만을 한다. "도안고의 구족을 멸하실 겁니까?" 걱정하지 말게. 황제는 말한다. 씨를 말릴 테니.

 

아내와 아이의 무덤 앞에서 너무나 오랜 시간을 보냈기에 눈물 자국이 얼굴에 새겨진 정영의 얼굴. 그 무참한 고통은 조금도 덜어진 것 같지 않다. 복수가 그의 고통을 해소해주지는 못했다. 잃어버린 것을 되찾아주지도 않았고. 다만 다음 복수의 씨앗을 심었을 뿐이다. 죽이고, 죗값을 치르고, 그 죄가 다시 되돌아오는 끝나지 않는 연쇄.

 

이 연극에서 복수는 결국 힘 있는 자들의 권력 다툼과 다르지 않다. 역사서에 이름 한 줄이라도 남기 위한 발버둥, 후손으로라도 마지막까지 불멸하기 위한 몸부림. 충효와 대의는 목숨이 파리같던 그 시대에 자기 존재를 새기기 위한 유일한 방편이었을까. 정영은 역사가 요구하는 정의에 힘 없지만 끊임없이 반항함으로서 자신의 존재를 새긴다. 그에게는 거친 보자기에 담긴 자기 아이가 조씨 집안의 마지막 씨보다도 소중했다. 복수가 끝난 그 순간에도 그가 뒤바꾼 아이 조씨고아는 달려와 명쾌하게 외친다. "모든 게 제대로 끝났습니다. 웃으세요, 아버지. 웃어요!" 무대 뒤에선 단두대의 칼이 스르릉 올라가고. 정영은 결국 다시 죽음을 앞에 두고 웃으라는 말을 듣기 위해 여기까지 온 걸까.

 

조씨고아가 조무라는 이름을 얻고 다시 한번 권세를 얻는 동안 정영은 죽은 이들의 품 속으로 사라진다.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 그의 얼굴은 허망하다. 앞으로 벌어질 일을 더는 보고 싶지 않다는 듯 커튼을 치고 사라진다. 나는 궁금해졌다. 복수는 공허할 뿐일까? 죽은 사람을 되돌릴 수는 없기 때문에, 차라리 잊고 새 삶을 시작하는 게 나은 걸까? 아마도 정영에게 조씨 집안의 복수가 허무할 수밖에 없는 건 그것이 정영의 복수가 아니기 때문이 아닐까. 거절하는 그에게 아기를 안기고 자결해 버린 공주, 조씨 고아를 떠맡기며 희생을 강요한 조씨 집안 사람들. 도안고와 이들 모두 정영의 삶에 아무 가치를 두지 않았다는 점에선 무자비했다. 그들 자신의 삶에도 별 가치를 두진 않았지만. 이들은 개인이 아니니까. 사람은 없고 대의명분만이 있던 시대. 정영의 복수는 허망하지만, 동시에 그가 복수를 하지 않고도 살 수 있었을까 묻게 된다. 복수의 꿈이 아니라면 생살을 저미는 듯한 고통과 분노를 무엇으로 풀 수 있을까?

 

기군상의 원작은 역사서의 한 줄에서 대의명분과 충효의 가치를 다룬 복수극을 만들어냈고, 고선웅의 <조씨고아>는 그 풍파에 휩쓸렸을 개인의 감정과 고통에 주목했다. 엄숙한 비극이 만들어내는 카타르시스. 나는 이제 허망할 것을 알면서도 행하는 복수는 어떤 이야기가 나올 지 궁금해진다.

 

 

[국립극단] 포스터_조씨고아, 복수의 씨앗.jpg

 

 

[김나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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