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집안일의 가격은 얼마인가?

글 입력 2021.12.04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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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이야기를 해보자. 얼마 전 세탁기를 앞에 두고 기분이 상했다. 최근에 세탁기가 고장 나 세탁기를 돌리면 싱크대 밑으로 계속 물이 새 나왔다. 몇 시간 동안 문이 안 열리기도 했다. 한동안 속 썩은 나는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 빨랫감도 별로 없으므로 그냥 손빨래하고 살기로 했다. 손빨래는 귀찮은 일이지만 엉망인 세탁기를 두고 감정 소모하는 일보다 편했으니까.

 

나는 손빨래를 할 때 언니의 옷도 같이 빨았다. 언니는 직장 유니폼이 흰색이라 빨래할 것도 많고 중요했다. 언니의 흰 와이셔츠 네 개와 잠옷을 빨았고 그걸 하얗게 빠느라 허리가 아팠다. 손빨래는 삼십 분 정도 걸렸다. 내 생각보다 더 힘들었다. 나는 언니에게 빨래 한 번에 편의점에서 와인 한 병 사다 달라고 했다. 와인은 8900원이다.

 

-빨래할 게 별로 없는데 와인 한 병을 줘야 하나?

 

언니가 말했다.

 

-해주면 좋은데, 이게 와인 한 병이니? 어떻게 생각해. 이게 너한테 8900원이나 지불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

 

세탁기 속에 언니 옷은 서너 벌 있다. 적다면 적은 양이다. 손빨래 한 번에 삼십 분 정도 걸리니 시간으로 따져도 옷 한 벌에 삼천 원꼴이다. 언니 입장에선 비싸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런데 나와 언니 사이의 손빨래가 계산적인 관계의 것인가? 화가 났고, 기분이 상했다.

 

집안일의 가격은 얼마인가? 언니가 ‘지불’이란 단어를 쓴 걸 보면 그녀는 빨래를 판매와 구매라는, 거래 관계로 받아들인 것 같다. 카페에서 커피를 사듯이 말이다. 문제는 가족 간 집안일은 커피와 다르게 경제적 논리로 계산할 수 없다는 거다. 나는 내가 말하지 않고 넘어간, 언니에게 해주는 일의 돈 계산을 따져보았다. 내 집에서 매일 숙식하는 비용, 전기세, 가스비, 청소비, 세탁비, 생필품비. 좁은 원룸에 둘이 산다는 데서 오는 짜증과 피로를 참아내는 비용 등등. 내가 제대로 돈을 매겼다면 괘씸죄까지 합해서 언니에게 빨래 한 번에 57만 원을 내라고 했을 것이다.

 

언니는 8900원도 아깝고 나는 57만 원도 적다. 집안 노동을 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 사이의 액수의 차이. 집안일과 같은 생활 유지 노동은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일이다. 대개는 남의 것까지 누군가 대신해줘야 하는 일이다. 집밖에서 각박하게 노동하고 온 사람이 집안에서도 계속 일한다면 너무 지칠테니 말이다. 집밖의 노동에는 돈을 주지만 집안의 일엔 돈을 안 준다. 그건 노동을 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암묵적으로 알고 있다. 왜일까?

 

나는 빨래를 하느냐 마느냐는 제쳐두고 다른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 든 생각은 집 밖의 노동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집안의 노동을 평가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집 밖에서 내 노동력은 일종의 산물(커피)이나 내가 쓴 시간(최저시급)으로 계산해서 보상을 받는다. 그곳에서 나는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고 거래 관계를 맺는다.

 

집안은 전혀 다른 논리로 돌아간다. 이곳은 감정적 관계로 이뤄진다. 집안에서 노동이 이뤄지는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게 필요하고 서로를 아끼기 때문이다. 이 노동은 대부분 인간의 선의와 인내심에 위탁한다. 내가 언니의 많은 부분을 참고 사는 건 돈을 원하기 때문이 아니라 땡전 한 푼 없는 언니를 오갈 데 없이 만들고 싶지는 않은 마음에서다.

 

이런 감정적 보상 말고 아무런 대가 없는 일은 언젠가는 뒤틀리기 마련이다. 무급 노동은 필연적으로 노동을 받는 사람이 주는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한다. 그러니 8900원짜리 와인은 애초에 노동의 판매가가 아니라, 삐걱대는 집안일을 지속하게 할 만한 윤활유 역할이었다. 집안일에서 돈은 다른 많은 것과 같이(깨끗한 집, 무탈한 일상 등) 노동의 부산물이어야지, 노동의 대가면 안 된다는 말이다. 평가 기준 자체가 부재하기 때문에 등가 교환이 이뤄질 수가 없다.

 

집안일은 말하지 않는 노동이라기보다는 말하면 안 되는 노동이다. 안 그러면 가정이, ‘집 안’이라는 성역이 사라지게 되기 때문이다. 내가 집밖의 경제 논리를 그대로 집안에 끌고 와 언니에게 응당한 대가를 요구한다면(오십 칠만원 내놔!) 성질 나고 서러워진 언니는 집을 나갈 것이다. 보증금이 한 푼 없으니 대출을 받거나, 아니면 형편없는 집에 들어가거나…...안 그래도 각박한 세상을 더 각박하게 만들 순 없으므로 난 참는다. 내가 얼마나 많은 걸 묵인하고 있는지 말하지 않는 게 더 낫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래서 세상은 오늘도 굴러간다. 기름이 잘 발린 바퀴처럼.

 

언니는 내가 빨래한 흰 유니폼을 입고 출근하고, 돈을 벌고, 지치고, 집에 오고, 잠을 자고, 회복하고, 출근하고. 이 굴레를 유지하게 하는 밑바닥은 대개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아서 이게 백오십 만원 짜리 노동인지, 오십칠만원 짜리 노동인지, 아니면 8900원도 안 되는 노동인지 알 수가 없다. 노동의 값어치가 얼마인지 계산할 수 없다면, 이 노동에 대해 말하지 않는 일의 값어치는 얼마일까? 누군가는 해야 하지만 대부분은 하기 싫어하는 일을 도맡아 하는 일의 정당한 가격이 얼마인지 묻지 않고, 이 세상이 깔끔한 경제 논리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며 사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일에 주어져야 할 정당한 대가는 얼마? 인간 행위에 가격을 매기는 굴레는 계속 이어진다.

 

세탁기만 고장 나지 않았다면 이런 귀찮은 생각을 하지도 않았을 테지. 기계는 사람과 사람 사이 노동의 골치 아픈 찌꺼기를 무마할 수 있는 손쉬운 방법이다. 세탁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되므로 허리가 아플 일도, 옷의 물기를 쭉 짜낼 일도 없다. 하지만 나는 와인 한 병과 내 노동의 값어치를 두고 한 고민으로 머리가 아팠다. 나는 누군가는 해야 하지만 하기 싫은 일을 기계에 맡기기로 하고 세탁 버튼을 눌렀다. 세탁기가 우우웅 하는 소리를 내며 돌아갔다. 간편한 일이다. 기계가 인간의 삶을 전부 떠맡아준다면, 사람이 노동에 대해 생각할 일도 서로 갈등할 일도 없다. 절대 고장 나지 않는다면. 기계 역시 인간의 크고 작은 노동으로 유지된다는 사실을 무시하면 말이다.

 

이렇게 내가 복잡한 노동의 심연을 고심하는 동안 내 집 세탁기는 싱크대 밑으로 물을 흘려보내기 시작했다. 물은 자꾸 나왔다. 언니는 출근하고 없으므로 집 안에 있는 사람인 나는 생각을 멈추고 걸레로 바닥에 고이는 물을 닦았다.

 

 

[김나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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