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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표 한 장 예매하겠습니다. [여행]

발레 공연으로 시작된 당일치기 여행

by 윤재현 에디터
2026.06.12 17:30

 

 

작년 이맘때쯤, 나는 갑자기 영국 로열 오페라 발레단의 공연 티켓을 예매했다. 오페라 하우스를 직접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라이브 오케스트라의 사운드를 듣고 싶었으며, 발레 공연도 보고 싶었다. 사실 나는 발레를 잘 아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가끔 발레 음악을 즐겨 듣고, 로열 오페라 하우스 홈페이지에 있는 발레 공연 실황 영상을 종종 감상하곤 했다.

     

몇몇 친구들에게 함께 갈 생각이 있는지 물어봤지만, 방학이라 이미 여행 계획이 있거나 집에 내려간다는 이유, 혹은 클래식 공연에는 관심이 없다는 이유로 모두 거절했다. 결국 나는 공연 티켓 한 장과 기차표를 예매했다.

 

저렴한 기차표를 선택하다 보니 낮 공연을 보고 저녁을 먹을 정도의 시간 밖에 없는 빠듯한 일정이 되었다. 그래도 공연을 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주말 공연중 하나를 선택하기로 했지만, 어떤 날에 어떤 작품을 볼지 고민이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오네긴(Onegin)이라는 발레 공연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전적인 서사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었고, 주연은 발레를 잘 모르는 나조차 영상으로 여러 번 본 적 있는 나탈리아 오시포바(Natalia Osipova)와 마리아넬라 누녜스(Marianela Nuñez)였다. 하지만 다른 공연보다 티켓 가격이 훨씬 비쌌고, 내용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정통 클래식 발레를 처음 보는 내가 그만한 값을 충분히 즐길 수 있을지 고민이 되었다.

 

결국 나는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 공연을 보기로 했다. 사실 이전에 홈페이지에서 이 공연의 실황 영상을 본 적이 있었는 데,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작품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것 역시 이 작품을 선택하게 된 이유 중 하나였다. 게다가 영국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인 루이스 캐럴의 작품을 바탕으로 한 공연이라 영국적인 분위기를 더욱 잘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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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당일 아침은 유난히 화창하고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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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를 타고 약 3시간을 달려 런던 패딩턴역(Paddington Station)에 도착했다. 런던을 오갈 때마다 마주하는 역이지만, 늘 여정의 시작과 끝을 의미해서인지 볼 때마다 설렘이 느껴졌다.

 

기차에서 샌드위치를 먹었던 터라 배가 고프지 않았고, 나는 곧바로 공연장으로 향했다. 공연장으로 가는 길에는 말과 마부들이 인도에 잔뜩 서 있었다. 몇몇 말들은 마부가 진정시키고 있었지만 금방이라도 사람들에게 달려들 것 같은 모습을 보여서 나는 얼른 그 자리를 벗어났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이날 왕실 행사가 있었다고 한다. 아마 그 행사나 관광객들을 위한 말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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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로열 오페라 하우스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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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앞에 보이는 이 공간에서 과거 헨델의 작품들이 공연되었다니 신기했다. 놀라움도 잠시, 나는 굿즈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이날 공연하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관련 상품도 있었고, 로열 오페라 하우스 기념품과 다른 공연 관련 굿즈도 다양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전부 사고 싶었지만 프로그램북과 발레 관련 굿즈 하나만 구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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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오페라 하우스를 둘러보는데, 맑은 날씨가 건물을 더욱 아름답게 비춰 주는 듯했다. 공연이 시작되기도 전이었는데, 단순히 공연장에 와 있다는 사실때문인지, 날씨가 좋아서인지, 아니면 공연이 기대되어서인지 이유를 알 수 없을 만큼 들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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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된 공연 소품과 다양한 포스터들은 로열 오페라 하우스의 긴 역사를 보여주고 있었다.

 

공연장 입장이 시작되었다는 안내를 듣자마자 안으로 들어갔다. 처음에는 생각보다 평범한 영국의 공연장처럼 보여 약간 실망할 뻔했다. 그러나 공연이 시작되자 세련된 무대 연출과 풍성한 오케스트라 사운드, 그리고 뛰어난 무용수들의 연기가 공연장을 특별한 공간으로 바꾸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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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미션 시간. 공연에 지나치게 집중해서인지, 아니면 그날 날씨가 너무 더워서인지 공연장이 무척 덥게 느껴졌다.

 

그러던 중 옆자리에 앉아 있던 한 노년의 여성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원래 자신이 앉아 있던 자리는 남편의 자리였는데, 본인이 키가 작고 앞사람이 너무 커서공연 중간에 자신의 자리(내 옆옆 자리)와 남편의 자리를 바꾸었다고 했다. 혹시 그 과정에서 내가 불편하지는 않았는지 걱정되었다며 정중하게 말을 건네는것이었다.

 

사소한 부분까지 신경 쓰며 예의 바르게 행동하는 모습에 문득 ‘과거 문화를 즐기던 영국의 상류층들도 이런 모습이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분은 동양인 여자아이가 혼자 공연을 보러 온 것이 신기했던 것인지, 주말에 가족이나 친구 없이 공연을 보는 이유가 궁금했던 것인지 “공연이 정말 멋지고 무용수들이너무 아름답지 않나요?”라고 말을 걸었다. 나는 “정말 환상적이고 즐거운 공연이에요.”라고 답했고, 그렇게 짧은 스몰토크를 나누었다.

 

2부가 시작되었고, 공연에서 가장 기대했던 장면인 Mad Hatter's Tea Party가 펼쳐졌다. 강렬한 탭댄스가 인상적인 장면으로, 이전에 보았던 공연 실황 영상에서도 가장 좋아했던 부분이었다. 다만 이번 공연에서는 새롭게 캐스팅된 여성 모자 장수의 탭 소리가 다소 작게 들렸고, 영상에서 느꼈던 폭발적인 에너지에 비해 약간은 아쉽게 느껴졌다.

 

공연이 끝난 뒤 나는 곧바로 한인 마트로 향했다. 기차 출발까지 약 두 시간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필요한 식재료들을 서둘러 구매하고 나오는데, 눈앞에 ‘Frozen Yogurt’라는 간판이 보였다. 더운 날씨 탓에 한국의 요아정이 떠올라 하나 사 먹고 싶었지만, 긴 줄을 보고는 미련 없이 발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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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으로 뭘 간단히 먹을까 고민하던 중 멕시코 음식점이 눈에 들어왔다. 직원은 친절하게 자리를 안내하며 여러 코스 요리를 설명해 주었다. 하지만 내게 남은 시간은 한 시간 반 정도뿐이었다. 결국 타코 하나와 음료 하나만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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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둘러 움직여서인지 기차 출발까지 약 40분 정도가 남아 있었다.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역 안에 있는 패딩턴 상점을 둘러보기로 했다. 흥미롭게도 패딩턴 상점은 시즌마다 일부 상품이 바뀌는지,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물건들이 꽤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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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시간이 남아 영국의 올리브영이라고 할 수 있는 Boots에도 들렀다. 특별히 볼 것이 없다고 생각하며 둘러보던 중 한 반창고가 눈에 들어왔다. 피부색에 따라 색상이 다른 반창고였다. 화장품도 아닌 반창고가 피부색별로 판매된다는 사실이 꽤 신기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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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에 올라타고 창밖으로 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매우 짧은 여행이었지만,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던 공연장과 공연을 직접 경험했다는 점에서 충분히 의미 있는 하루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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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때 기차가 고장 나는 바람에 열차가 선로 위에 멈춰 섰고, 한 시간 넘게 지연되었다. 결국 원래 도착 예정 시각보다 훨씬 늦은 시간에야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원래 인생은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기대에 못 미치기도 하고, 때로는 기대를 훌쩍 뛰어넘기도 한다. 그래서 여행은 늘 예상치 못한 순간들로 채워진다. 공연을 보기 위해 떠났던 하루였지만, 길거리 말들을 구경하던 일이나 피부색별 반창고를 발견했던 일, 그리고 예상치 못한 열차 지연까지도 함께 기억에 남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날의 한 시간의 열차 고장마저도 그 하루를 더욱 선명하게 기억하게 만드는 요소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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