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맹세합니다. 그대를 기다려왔어”
누구나 알지만, 계속해서 찾게 되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뮤지컬로 만나고 왔다. 프랑스에서 시작된 이번 작품은 2009년 한국에서 첫 내한을 한 이후, 17년 만에 다시 한전 아트센터 무대에 올랐다. 26살이 되어서야 다시 마주한 로미오와 줄리엣은, 이전과는 다른 결로 다가오며 여러 생각을 남겼다.
공연을 본 뒤 지하철 안에서 조심스럽게 적어 내려갔던 감상을, 이 에세이를 통해 나누고자 한다.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기지
극장에 들어와 자리에 앉아 공연을 기다리는 사람들. 그들 대부분은 이미 결말을 알고 있지 않을까.
그럼에도 이 이야기가 계속해서 관객을 불러 모으는 이유는, 결국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이야기 자체에 대한 사랑 때문일 것이다. 오랫동안, 그리고 반복해서 사랑받는 콘텐츠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 그중 하나는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긴다’는 메시지일 것이다.
이번 뮤지컬에서는 특히 로미오와 줄리엣이 서로에게 사랑의 세레나데를 건네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영화나 다른 매체에서는 대사로 감정을 표현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선율과 시선으로 서로를 감싸 안는다. 그들의 사랑은 결국 전쟁을 끝내고, 두 사람의 죽음을 통해 사랑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보여준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은 가면무도회에서의 첫 만남이다.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도 서로를 알아본 두 사람. 핀 조명이 비추는 가운데, 서로에게 다가가며 부르는 노래에는 그들이 꿈꾸던 ‘사랑’, 나아가 ‘평화로 향하는 발걸음’이 담겨 있었다.
서로에게 평화이자 사랑, 그리고 안식처였던 로미오와 줄리엣. 이미 알고 있는 결말임에도, 뮤지컬이라는 형식을 통해 그들이 얼마나 평화를 갈망했는지를 더 간절한 멜로디로 느낄 수 있었다.
가족, 방패이자 담장
이번 작품은 다른 매체에 비해 두 가문, 즉 가족의 역할에 더 큰 비중을 둔다.
서로를 지독히도 혐오하고 조롱하는 베로나의 두 가문. 그들은 전쟁 속에서 피어난 사랑을 인정하지 못하고, 로미오와 줄리엣이 꿈꾸는 평화를 허황된 망상처럼 치부한다.
하지만 정말 그랬을까. 어른들과 달리, 두 가문의 젊은이들은 조금 달랐던 것 같다. 가족을 사랑하면서도, 동시에 전쟁을 혐오하고 사랑을 갈망했던 두 형제. 그들이 결국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은 깊은 충격과 슬픔을 남겼다. 그렇게 해서라도 평화를 원했던 그들의 선택은 오래 마음에 남는다.
가족은 나를 지켜주는 방패이지만, 때로는 성장을 가로막는 담장이 될 수도 있다. 무대 위를 가득 채운 ‘전쟁, 갈등, 혐오’의 감정은 넘버의 가사와 함께 붉은색과 푸른색의 대비로 드러난다. 그리고 결국, 그 모든 것을 덮는 검은색의 죽음이 내려앉는 순간, 이야기는 피할 수 없는 결말로 향한다.
사랑이 부재한 공간과 시간에는, 결국 죽음만이 남는다는 사실을 다시금 마주하게 된다.
오늘도 어디선가 신부가 울부짖는다.
“지금 좀 이 꼴을 보세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