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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사랑에 관한 몇 가지 고찰

무형의 생각을 유형화 하는 것은 언제나 즐겁다

by 조은서 에디터
2025.10.20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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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에너지이다.

 

그 자체로 힘을 가지고 특정 행동과 변화를 유도하는 인간의 주된 원료이다. 어떤 대상을 사랑하게 되었을 때 그 감정 안에는 다양한 방향의 힘이 존재한다. 에너지를 기울인 딱 그만큼 반작용으로 튕겨 나가기도 한다. 외부 환경 흐름에 따라 운동 에너지는 위치 에너지로, 다시 열 에너지로 변화한다. 그를 향했던 에너지는 음식을 향해, 무기력을 향해, 영문모를 이상 성욕을 향해, 자아성찰을 향해, 다시 운동을 향해 전환된다. 그리고 다시 그를 향한다. 우리는 매순간 특정 대상을 향해 마음을 쏟으며 살아가야 한다.

 

‘사랑’은 쇠구슬이다.

 

그저 조그마한 구슬인 줄 알았던 게 옹골차게 빽빽이, 크기에 비해 무서울 정도로 밀도가 높다. 반짝반짝 투명한 줄로만 알았던 게 왠지 알 수 없고, 우울하고 속이 시꺼멓다. 투명한 유리 구슬은 썩어 문드러진 지 오래고 어느덧 냉소적인 무채색 빛을 띈다. 여기저기 마구 굴러다닌다. 어느 곳에 정착해야 할 지, 얼마동안 머물러야 할지 도통 갈피를 잡지 못한다. 엉뚱한 타이밍에 엉뚱한 곳으로 내려 앉아 요란한 소리를 내며 주변을 파괴한다. 손도 못 댈 정도로 순식간에 위험하게, 뜨겁게 달아올랐다가 차가운 물 속 깊이 잔뜩 김과 거품을 일으킨다.

 

‘사랑’은 외국어이다.

 

보편적으로 많이 쓰이는 단어, 문법. 2형식, 3형식, 4형식과 같은 표현 방식과 규칙에 집착하는 사이 진정한 말의 의미를 놓친다. 그냥 듣고, 그냥 말하고, 그냥 표현하는 게 왜 이리 어려운 일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때때로 표정, 말투, 행동 등의 요인으로 대강의 의미를 알아들을 수는 있으나, 정확한 뜻을 파악하긴 어렵다. 문화, 환경적 맥락 차이, 난생 처음 보는 단어와 표현, 수준 높은 긴 문장은 당혹감을 선사한다.

 

나는 미칠 듯 화가 나는데 상대는 영문을 모르고, 상대는 갑갑함에 질식할 듯 허우적대는데 나는 갈피를 못 잡는다. 어려울수록 흥미와 의욕이 떨어진다. 소통의 소망과 재미와 융화가 사라진다. 한 때는 공부가 놀랍고, 새롭고, 신기하고 재미있었는데 이제는 한국어도 어렵다. 독서와 공부를 포기하고 숏폼의 늪, 미디어가 주입하는 사랑의 늪으로 빠진다.

 

‘사랑’은 안경이다.

 

세상을 좀 더 선명하고 정확히 바라보게 한다. 갑갑하고 뿌옇기만 했던 시야와 가슴이 회복된다. 온갖 모니터들을 통해 접하는 쓸데없는 이슈, 정보 과잉, 지겨운 숫자들의 연속, 과도한 업무량으로부터 현대인을 보호한다. 안경이 절실히 필요하다. 어떤 순간에도 있어 보임을 잃지 않는 소위 센스 있는 이들은 본인의 얼굴에 딱 어울리는 안경을 패션의 일원으로 삼는다. 그런 생각할 여유가 없는 이들은 꼬막눈이 되건 말건, 절실한 심경으로 안경을 걸친다. 기꺼이 안경을 걸치는 꾸밈없는 순수함과 무심함이 누군가의 눈에는 간혹 가중된 찌질함과 만만함, 못남으로 누군가의 눈에는 가중된 사랑스러움과 귀여움, 열정으로 내비친다.

 

‘사랑’은 나 자신이다.

 

‘사랑’에는 참 많은 의의와 설명이 존재하지만, 내가 어떤 사람을 사랑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사랑에 빠지고 표현하는지는 곧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드러낸다. 사랑하면 서로 많이 닮아간다. 내가 그를 모방하고, 그가 나를 모방한다. 사랑하는 방식에 무엇인가 문제가 있다면 나와 그 둘 중 하나 이상에게는 분명한 문제가 생긴 것이다.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부터 건강한 사랑이 깃든다. 건강한 나와 그로부터 건강한 사랑이 깃든다. 내가 건네는 나의 사랑은 곧 나 스스로에게 건네는 사랑의 형태와 흡사하다.

 

이는 나 자신과 흡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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