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
산문과는 달리 운문(시)만이 가진 특별함이 있다. 주변의 모든 사물과 사람을 따스한 눈으로 볼 줄 아는 자들만이 써낼 수 있는, 시만이 가진 미지근한 온도가 있다.
가령, 같은 '사랑'이라는 주제를 다루더라도 소설은 열정으로 가득 차 비운의 사랑을 장황하게 읊어대는 누군가의 고백 편지 같다면, 시는 가장 순수한 마음을 내비치는 눈물 한 방울을 짧디짧은 말로 형상화한 것만 같다. 그래서 시는 참 어렵다. 다층적인 감정을 전부 보여주는 대신 아주 곱게 포장해서 내보인다. 그 속의 의미를 알아맞히라는 듯이. 하지만 그 간결한 함축성이 아주 큰 돌덩이처럼 우리의 마음에 무겁게 내려앉을 때가 있다. 그리고 그 돌덩이는 우리의 마음속에 참으로 오래도록 남아, 사는 내내 우리를 이따금씩 울린다.
사랑스런 추억 - 윤동주
봄이 오던 아침, 서울 어느 조그만 정거장에서
희망과 사랑처럼 기차를 기다려,
나는 플랫폼에 간신한 그림자를 떨어뜨리고,
담배를 피웠다.
내 그림자는 담배 연기 그림자를 날리고
비둘기 한 떼가 부끄러울 것도 없이
나래 속을 속, 속, 햇빛에 비춰, 날았다.
기차는 아무 새로운 소식도 없이
나를 멀리 실어다 주어,
봄은 다 가고- 동경 교외 어느 조용한 하숙방에서,
옛 거리에 남은 나를 희망과 사랑처럼 그리워한다.
오늘도 기차는 몇번이나 무의미하게 지나가고,
오늘도 나는 누구를 기다려 정거장 가차운 언덕에서 서성거릴 게다.
-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
가끔 대중교통을 기다리고 있노라면, 원인 모를 공허함이 느껴질 때가 있다. 나는 그럴 때마다 윤동주 시인이 1942년에 집필한 <사랑스런 추억>을 떠올린다. 어딘가 붕 떠 있는 감정을 이 시에서 오롯이 느낄 수 있기에.
쉴 새 없이 지나가는 차들을 망연히 바라보면 현실감이 사라진다. 세상의 속도와 나의 속도에는 차이가 생기고, 나는 곧 렉이 걸린 동영상처럼 나아가지를 못하고 머물러있는다. 그렇게 고인 마음은 늘 관성처럼 과거로 흘러간다. 좋았던 순간 하나, 후회되는 순간 하나, 그렇게 겹치는 생각들은 기다리던 차가 도착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돌연히 현실로 끌려 내려온다.
나무 식별하기 - 이제니
그 나무의 이름을 들었을 때 나무는 잘 보이지 않았다. 나는 일평생 제 뿌리를 보지 못하는 나무의 마음에 대해 생각했다. 그 눈과 그 귀와 그 입에 대해서. 알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는 동안에도 나무는 자라고 있었다. 나무의 이름은 잘 모르지만 밤에 관해서라면 할 말이 있다. 나는 밤의 나무 아래 앉아 있었다. 너도 밤의 나무 아래 앉아 있었다. 밤과 나무는 같은 가지 위에 앉아 있었다. 그늘과 그늘 사이로 밤이 스며들고 있었다. 너는 너와 내가 나아갈 길이 다르다고 말했다. 잎과 잎이 다르듯이, 줄기와 줄기가 다르듯이. 보이지 않는 너와 보이지 않는 내가 마주 보고 있었다. 무언가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꿈에서 본 작은 나뭇잎이었다. 내가 나로 사라진다면 나는 바스락거리는 작은 나뭇잎이라고 생각했다. 참나무와 호두나무 사이에서, 전나무와 가문비나무 사이에서, 가지는 점점 휘어지고 있었다. 나무는 점점 내려앉고 있었다. 밤은 어두워 뿌리조차 보이지 않았다. 침묵과 침묵 사이에서, 어스름과 어스름 사이에서, 너도밤나무의 이름은 참 쓸쓸하다고 생각했다.
이제니의 시는 여타 시들과는 다른 특별함이 있다. 전통적인 운율이나 정형시의 틀을 거부하고 독창적인 구조의 시를 쓰는 그녀는 운문과 산문의 경계를 허묾으로써 그 둘의 장점을 모두 흡수한다. 호흡을 길게 가져가면서도, 압축적이다. 그래서 남는 울림은 묵직하다. 이는 '나무 식별하기'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줄글처럼 이어지는 시임에도 한 문장 한 문장이 가지는 힘은 여전하다.
처음 이 시를 읽었을 때는, 처음의 두 문장을 읽고서는 아주 오랫동안 시선이 그곳에 멈춰있었다. 제 뿌리를 일평생 보지 못하는 나무-라는 것이 너무나도 인간들 같았다. 너무나도 '나' 같았다. 우리는 우리의 시작을 모르고, 그 근원을 몰라서 괴로워하며 철학을 찾고 종교를 찾으며 과학을 찾으니까. 이런 주제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기도 했다. 내가 과학책 속의 고리타분한 문장으로만 되뇌이던 말들을, 시인의 세련된 언어로 비유된 문장을 보니 속이 다 시원했달까.
그 문장이 너무 좋아 한동안 그 부분에만 꽂혀있던 탓에 뒤의 문장들에는 그리 큰 관심을 두지 않았었는데, 후에 다시금 천천히 읽어보니 사실 이 시에서 가장 재미있는 점은 마지막 문장에 있었다. 시는 줄곧 '너도밤나무'라는 나무의 이름을 가지고 재미있는 말놀이를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너도밤나무'를 '너도 밤 나무'로 띄어 읽자 생기는 너와 밤과 나무라는 단어들을 연결지어 시를 지은 것이었다. 그제서야 나는 '너도 밤의 나무 아래 앉아 있었다'라는 문장을 이해할 수 있었다.
열정의 집합체
우리는 왜 시를 읽을까?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님은 이렇게 말한다.
"시를 읽는다는 건, 다른 이유가 없다. 그 사람이 인류의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인류야말로 열정의 집합체라는 것을 잊지 마라. 의학, 법률, 금융, 이런 것들은 모두 삶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다. 그렇다면 시, 낭만, 사랑, 아름다움이 세상에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건 바로 사람들의 양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부디 당신의 열정을 문학에 낭비하라. 당신의 시간을 그 무용해 보이는 아름다운 문장들에 마음껏 할애하라. 인류의 한 사람인 당신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