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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서로 어울리는 것들이 있어. 계란은 역시 사이다거든요. 사이다 없는 계란, 아 그거 생각만 해도 목매지 않아요?“


김태용 감독의 2006년 작 ‘가족의 탄생’은 사랑이 태어나고 또 옮겨가는 관계들을 그린다. 생판 남과도 가족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낯설다. 알고 보면 원래가 그렇게 가족이 탄생하는 것인데 말이다. 한국의 전형적인 가부장적 가족관을 탈피하는 이 영화는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적이라는 점에서 내 마음을 끌어당겼다. ‘가족의 탄생’에서 발견할 수 있는 한국적 감성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특별히 아름다운 이유는 무엇인지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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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이란,


 

흔히 ‘정’이란 다른 언어로 번역할 수 없는 한국에만 존재하는 말이라고들 한다. 나 역시 이 단어를 외국인 친구에게 설명하고자 애를 먹었던 적이 있다. 오래 봐온 사람이나 물건 또는 장소에 드는 애정인 동시에, 연고 없는 누군가에게 베푸는 호의이기도 하다. 유의어로는 애착, 포용, 연대, 인류애 등이 있겠고, 반의어로는 무시, 배척, 외면, 적대 등이 있겠다. 한국의 현재는 이렇게 뿌리 깊은 ‘정’ 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빠르게 휩쓸어 온 ‘개인주의’의 물결이 시시각각 충돌하고 있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한다. 그렇다면 정은 ‘가족의 탄생’ 속 인물들에게 어떻게 스며들어 있었을까.


‘미라(문소리)’는 깜깜무소식이던 동생 ‘형철(엄태웅)’이 집에 돌아온다는 소식에 무척 신이 났다. 하지만 돌아올 때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싱글벙글 웃으며 ‘무신(고두심)’이라는 여자를 아내로 소개한다. 결국 갈 데가 없어 찾아온 누나네 집이지만, 웃는 얼굴에 침 뱉을 수 없는 미라는 이내 둘을 받아준다. 그렇게 자리를 잡아가나 했는데, 또 뜻밖의 손님이 찾아온다. 이번에는 주소가 적힌 쪽지 하나를 달랑 들고 찾아온 어린 소녀이다. 알고 보니 무신의 전남편의 전 애인의 딸이었다. 그러니까 미라에게는 더 설명할 필요도 없는 남이다. 미라는 이 소녀를 어찌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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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경(공효진)’은 엄마 ‘매자(김혜옥)’가 밉다. 늘 새로운 사람과 연애하는 엄마 때문에 ‘정상적’인 가족을 가질 수 없었던 선경은 엄마에 대한 깊은 감정의 골이 생겼다. 그 슬픔과 서러움은 틈만 나면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고 빈정대면서 분출된다. 그러나 슬프다는 뜻의 가시 돋친 선경의 말을 매자는 알고 있었던 것일까. 싫다고 할 걸 알면서도 이부형제인 ‘경석’의 유치원 운동회에 대신 가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그렇게 싫다고 빽빽거리던 선경은 어쩐지 운동회에 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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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석(봉태규)’과 ‘채현(정유미)’은 연인이다. 그러나 서사 내내 같은 문제로 다투는데, 이유는 채현의 오지랖이다. 주변 사람들의 딱한 사정과 상황은 마땅히 살피고 도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채현과, 그런 그녀에게 ‘헤프다’라며 불안과 질투의 마음을 못나게 표현하는 경석의 끝없는 싸움이 벌어진다. 결국 둘은 헤어지지만, 다시 그녀를 붙잡다 들어가게 된 채현의 집에는 ‘엄마들’이 있었다.


요약하면 기존의 보수적인 가족관 혹은 연애관을 가진 인물과 그런 정상성에서 벗어난 인물들끼리의 충돌과 상호작용으로 어떻게 대안적인 가족이 탄생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둘을 화해시켜 주는 요소는 다름 아닌 ‘정’이다. 헤어졌어도 밥은 먹어야 하고, 애는 죄가 없으니 일단 잘 재워야 하고, 엄마는 구질구질했던 게 아니라 ‘정이 많았던’ 것이었으니까. 정을 주는 것을 곧 이용당하고 손해만 보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정의 책임에 대해 신중하게 고민은 할지언정, 무작정 내치고 외면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님을 이 작품은 보여주고 있다. 가족은 그렇게 꾸려지고, 인간은 오가는 정 덕에 생존한다.

 

 

 

#2. 한국 감성이란,


 

‘한국 감성’이란 무엇일까.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음은 당연하고, 전통문화의 요소가 들어간다고 해서 무조건 한국 감성이라고 일컬을 수도 없을 것이다. 일본 영화, 대만 영화, 프랑스 영화 등을 보면 각 나라의 감성이 꽤 식별되는데, 한국 영화에 그런 것이 있는지 생각했을 때 의문이 들었었다. 그런데 영화를 하나둘 보기 시작하면서 현대 한국이 특유의 아름다움을 갖고 있음을 확신할 수 있었던 영화가 딱 두 개 있었다. 허진호 감독의 ‘봄날은 간다’와 이 영화, ‘가족의 탄생’이다. 물론 훨씬 더 많이 발견할 수 있겠지만 짧은 나의 경험상으로는 그렇다.


따라서 이 영화들에서 한국의 감성을 느낀 이유는 무엇일지 되짚어보니, 아마도 ‘감각의 재현’ 덕분인 것 같다.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던 아파트 이전의 한국 주택과, 시장의 잡다한 물건이 즐비한 가게, 덜컹거리는 기차에서 먹는 사이다와 계란, 상에 둘러앉아 먹는 식사 등 경험해 보았거나 꼭 경험해 보지 않아도 너무나 잘 아는 요소들이 자연스레 감각을 자극했다. 대화에서도 그러하다. 누군지도 모르는 ‘태식이 형’ 등의 이야기에 쉽게 몰입이 가능한 것은 아마도 주변에서 들어볼 법한 지극히 현실적인 경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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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나 배우들의 연기가 이 특별한 이야기 속 평범한 인간들의 감정을 유려하게 설명해 내고 있다. 사람좋은 웃음으로 모든 것을 무마하려는 형철을 두고, 웃을 수 없었던 미라와 무신은 결국 채현을 받아주고 키웠다. 다짜고짜 강요되는 모성이 아닌 책임과 연대 의식을 공유하는 두 여성의 말 없는 식사가 그것을 대변해 주었다. 그리고 엄마의 자유로움을 곧 정으로 받아들인 선경은 어린 이부동생 경석을 키우는 결정을 한다. 그 과정에서 선경의 애쓰는 반항과 그 후의 좌절은 보는 이의 마음에 파고들기에 충분했다. 또한, 깜빡거리는 복도 센서 등으로 표현된 채현의 마음은 연인과 수평선을 달리는 대립 사이에서 감정의 소진을 보여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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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울리는 것들과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어떻게 가족이 되는 걸까. 가부장제에서 벗어난 가족 형태 속에서도 충분한 한국의 맛을 느낄 수 있다. 여전히 정이 많은 한국인의 이야기이고, 여전히 한국의 문화와 시공간 속에 자리하고 있다. 서로를 포용하고 이해하고 배우며, 살길을 찾아가는 것이 비단 한국인만이 아닌 인간 본연의 성질이라고 한다면 부정할 길은 없겠지만 말이다.


‘가족의 탄생’은 함께하지만, 또 달라서 아름다운 한국 가족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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