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서는 한 때 스스로를 '예술가'라 믿었다. 열 살 즈음까지만 해도 은서는 꽤 재밌는 사람이었다. A4용지 서른여장을 겹겹이 쌓아올려, 반으로 접고, 호치케스로 찍어 창작 동화책을 만들기도 하고, 동네 아주머니들과 함께 보던 연속극 내용을 토대로 드라마 대본을 작성해보기도 했다. 어떤 날은 동시집을 읽으며 시 내용에 멜로디를 붙여 가요처럼 불러보기도 하고, 고모네 비디오 가게에서 얻어 온 일본산 직수입 도라에몽 만화책을 반 친구들 전체와 돌려보기도 했다.
운 좋게도 평범하고 사랑 많은 가정에서 태어나, 자의적인 창작활동을 즐길 줄 알았던 품격있는 어린이 은서는 또래 친구들보다 어른들에게 훨씬 인기가 많았다. 유달리 말투나 행동이 그 나이에 비해 되바라진 경향이 있었다. 이는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뛰어놀기보다 주말 연속극이나 무한도전 같은 성인 대상 예능 관람을 선호하며 어른들과의 간접 소통을 또래보다 일찍, 많이 해온 탓이다. 주말마다 TV보려고, 배달음식 시켜 먹으려고 놀러갔던 외할아버지 댁은, 내성적이고 조숙했던 은서에게 최상의 피난처였다. 손녀를 무척이나 사랑하셨던 그의 배려 덕에 은서의 뇌는 온통 연예인과 쓸데없는 가십거리들로 절여졌다. 이후 그녀는 점차 실제적인 사회활동과 소통을 어색해하며 '실제의 자신'보다 더 스스로를 후하게 평가하는 푼수좋은 성인 여자로 성장하였다. 힘들고 외로울 때면 미디어로 현실 도피를 종종하곤 했다.
다행히 은서를 그나마 정상적인 어른으로 성장하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한 '학교'라는 집단이 있었다. 또래 집단, 교사들로부터 여러 평가를 들으며, 되도 않는 '미디어 중독 증세', '망상병', '연예인병'은 자연스레 완치되었다. 은서는 누가봐도 천재적인 신동까진 아니지만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를 곧잘 하는 학생이었다. 조금만 더 현실적이고 성실한 사람이었다면 지금쯤 더 유명인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공부, 외모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분야에서건 '최상'까진 아니더라도 '중상' 혹은 '중박이상'은 치는, 그냥저냥 봐줄만한 적당히 잘난 사람. 그것이 학창 시절 때부터 이십대 초반까지 은서가 알고, 쌓아왔던 자신의 자아상이었다. 실질적으로 들이는 노력에 비해 타고난 재능과 머리가 그를 뒷수습하는, 그것이 그녀의 주된 인생 패턴이었다.
대학 졸업 이후, 남들 다 하는 취업이란 걸 하게 된 스물다섯의 은서는 도무지 요령을 피울 줄 모르는, 좋게 말하면 '순수소녀', 나쁘게 말하면 '바보'였다. 대부분의 적당한 사회성을 탑재한 인간들은 회사가 싫어도 그것을 절대적으로 감춘다. 불행히도, 제 나이와 경험치에 비해 감정 표현이 매우 투명했던 은서는 의도가 다 읽히는 사람이었다. 당시 그녀의 심정은 다음과 같았다.
'외모가 특출났으면 연예인을 했을 테고, 특정 분야의 재능이나 기술이 뛰어났으면 예술가나 전문가를 했을 테고, 근데 나는 다 안 되니까 적당한 회사에 광고, 마케팅 부서 정도로 취직해서 적당한 월급쟁이로 살아야지.' (광고 폄하 발언 절대 아니다. 근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내 생각하는 꼬라지가 다 티가 나서 회사 사람들이 별로 안 좋아했나보다.) 은서는 이토록 멋대가리 없는, 생각 같지도 않은 생각을 하는 재미없는 어른이 되어있었다. 그에 대한 하늘의 벌이었을까. '평범한 삶'을 완벽히 구현해낼 것이라던 소박한 기대는 입사 첫 달 부터 처참히 개박살이 났다.
'일'과 '공부'는 엄연히 다른 영역이라는 것을 회사생활 하며 처음 알았다. 공부는 뭐랄까 그냥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 잘 모르겠으면 외우면 된다. 일시적인 시험 점수를 위해 잠깐만 타협하고 머리에 집어넣으면 끝날 일이다. 그를 위한 풀이과정과 답까지 다 명시되어있으니 엉덩이 붙이고 앉아 일정 기간 성실히 임하면 된다. 근데 사회생활은 '시키는 대로', '성실히' 한다고 풀릴 문제가 아니었다. '시키지 않아도', '센스있게' 가 관건이었는데 그저 TV벌레, 책벌레, '한 순간의 시험을 위한 단기 범생이'로 살아온 사회생활 생초짜 신입 은서에겐 둘 다 너무 생소한 개념이었다.
스물 다섯살 이후, 2년 정도의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다. 마치 군대에 다녀온 기분이다. 그간의 기간 동안 은서는 본가인 부산을 떠나 서울에서 홀로 자취를 하며 월세를 충당하고, 총 네 군데의 회사 사무직을 전전했다. 그 결과 어느 한 곳에도 제대로 정착하지 못했다. 자질구레한 아르바이트까지 포함하면 나름 수십가지 환경에서 수백명의 사람들을 상대하고 온갖 감정노동과 밥벌이를 했음에도 아직도 은서는 사람을 잘 모르겠다. 은서 본인도 잘 모르겠다. 방구석에서 알던 은서와, 세상 밖에서 자신도 모르게 마주한 은서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어떤 게 진짜 은서일까.
두 번째 광고 회사에서 배테랑 선임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혹시 광고홍보학부를 전공했기 때문에 광고를 해야 하는 의무감이 있는 것이냐고. 세상에 그게 대놓고 티가 날 정도로 회사생활을 엉망진창으로 했나보다. 등골이 오싹하다. 선임님은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은서님은 광고홍보학부보단 문예창작과가 어울리는, 회사생활보다 작가 생활이 어울리는 사람인 것 같다. 혹시 글을 쓰거나 독립 서점을 운영할 생각은 없느냐. 회사에서 진로 상담을 받고 있으면 안 되는데 이게 무슨 민폐고 망신인가. 나름 성실히 공부하고 학점도 좋았는데 학교안에서의 공부는 (그게 설령 대학교라 할지라도) 확실히 회사 생활과는 달랐던 것 같다.
또 다른 중학교 시절 절친은 이렇게 말했다. 그 정도 시도했으면 아무래도 너는 회사와 맞지 않다. 개인 프리랜서로서 너가 진정으로 잘 하고 좋아하는 일을 자발적이고 독단적으로 찾아서 하는 게 맞다. 일은 직접 해봐야지 아는 거다. 이야기를 듣다보니, 마치 사회 생활, 일은 연애와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상상했던 광고는 이런 일이었는데. 내가 상상했던 그 사람은 이런 사람이었는데. 직접 해보기 전까지는, 겪어보기 전까지는 그저 상상에 그치는거다. 광고 회사 기획자에겐 여느 한국 회사와 마찬가지로 창의력과 독창성이 중요하다기보다 오히려 실용성과 컴퓨터 활용능력이 중요하며 그러한 면에서 은서는 광고회사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이 때 스물일곱의 은서는 열 살 즈음의 은서로 타임 워프를 한다. 창작 동화를 만들고, 드라마 대본을 작성하고, 노래를 부르고, 도라에몽 만화를 돌려보던 은서를 다시 마주한다.
그리고 너무나 당연했지만, 외면했던 나의 현상을 뒤늦게 직면한다. 애초에 은서는 광고회사에 도움이 되는 존재가 아니었다. 은서는 단체 생활보다 적당한 규율 아래 지멋대로 사는 게 어울리는 애다. 당시 배테랑 선임은 눈이 텅 비어있는 나를 보곤 너는 좋아하거나 관심있는게 하나도 없는 사람인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지금은 이렇게 반문하고 싶다. 없는 게 아니라 잊고 산거라고. 광고회사 안에서의 은서가 곧 은서는 아니다. 이건 너무 당연한 얘긴데.
"너는 이 사회와 어울리지 않는다."
이 말에는 답이 없다. 근데.
"그래서 너와 어울리는 사회를 지어줄 것이다."
이 말을 덧붙이면 답이 생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어른들이 전자의 말만 하며 혀를 끌끌 차기 보다 후자의 말도 함께 덧붙여주었으면 한다. 는 식의 요구사항과 왠지 모를 서운함을 토로하면서도, 은서는 사실 알고 있었다. 후자의 말은 보통 남들이 해주지 않는다. 본인 스스로 해야 한다. 그리고 늦게서야 깨닫는다. 누군가는 그렇게 살았거나, 그를 계속해서 시도하고 있었다는 것을.
고로 스물일곱의 은서는 후자의 어른이 되기로 하였다. 나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