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공연의 본질은 사라짐에 있습니다. 그날의 극장 분위기, 배우의 표정과 몸짓, 라이브 밴드의 연주는 기록되지 않습니다. 극장에서 지나간 1초는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사라집니다. 사라짐을 막으려는 시도는 필연적으로 좌절합니다. 인간이 사라짐을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방법은 '기억하기'뿐인데, 기억만큼 불완전한 건 없기 때문입니다. 극장 맨 뒷자리에서 휘갈겼던 글자를 나중에 보면, 글씨체 때문에 해석할 수도 없을뿐더러 묘사는 했을지언정 감정은 하나도 담아내지 못했더군요.

 

어쩌면 공연으로 글을 쓰는 것은 불완전한 순간을 불완전하게 붙들어두는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불완전성 때문에 막연해지는 날들이 많았습니다. 공연에 대한 글은 공연이 주는 감동을 뛰어넘기 어려운 법이니까요. 소개 글, 비평, 감상문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그래도 계속 썼습니다. 공연 비평을 제대로 할 자신은 없으니, 창작자 다음으로 관련 자료를 많이 읽은 사람이 되어보자 다짐했습니다. 공연을 본 다음 날엔 꼭 도서관에 갔습니다. 자료를 읽다 보면 창작자가 영감을 얻었을 법한 조각들을 발견했습니다. 그럼 숨이 멈추고 명치부터 시원한 감각이 올라왔습니다. 심장이 뛰거나 발목이 저릿해지기도 하고요. 이 감각을 잊지 못해서 계속 읽고 쓰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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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들은 유료 문서 앱 'Milanote'에 정리해 둡니다. 마인드맵 기능이 있어 글을 구상하거나 자료를 구상할 때 요긴하더군요. 지금까지 아트인사이트에 기고한 글은 대부분 폴더로 만들어두었습니다. 자료를 많이 모으면 글도 정성스러워지나 봅니다. 자료가 많은 글이 자연히 가장 아끼는 글이 되더라고요. 제가 아끼는 글 두 편을 소개합니다. 글을 쓸 때 참고한 책과 글에 담진 못했지만 흥미로운 내용도 함께 보여드리겠습니다.


 

 

여성 파라오 '하트셉수트', 무덤에 함께 묻힌 여성은 누구였나 - 뮤지컬 <하트셉수트>


 

뮤지컬 <하트셉수트>는 고대 이집트 제18왕조의 5번째 파라오인 하트셉수트의 삶을 다룹니다. 무대 위에 등장하는 건 '하트셉수트'와 신원 미상의 여인 '아문', 둘뿐입니다. 해당 글에선 무대나 조명, 서사 구조보단 실제 하트셉수트의 생애를 다루는 데에 집중했습니다. 하트셉수트의 생애를 알았을 때 서사적으로 보완되는 부분이나 더 재밌게 볼 수 있는 지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글로 번역된 하트셉수트 자료가 많지 않아 책 <미스터리의 이집트 여왕, 하트셉수트>, 외국 박물관 웹사이트 자료와 칼럼을 참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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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하트셉수트>는 '여성 파라오인 하트셉수트와 무덤에 함께 묻힌 여성이 누구였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됐습니다. 책 <미스터리의 여왕, 하트셉수트>에 따르면 그 여성은 유모였는데요. 발견 당시 유모의 입꼬리는 편안하게 올라가 있었고, 빨간 머리카락까지 잘 보존돼 있었습니다. 왕족과 가까운 관계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입니다.

 

아문은 실제 인물인 '세넨무트'를 모티프로 삼은 듯합니다. 세넨무트는 건축가이자 국정 조언자로서, 가정교사 역할까지 맡으며 하트셉수트와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하트셉수트는 이복동생 투트모세 2세와 결혼했다가 그의 요절로 파라오가 되었기에 세넨무트와는 혼인 관계를 맺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세헬의 낙서화에서 두 인물이 정면으로 마주 보고 있거나 무덤에서 두 사람의 이름이 나란히 새겨져 있는 등, 둘의 관계를 암시하는 증거들이 속속 발견되고 있습니다.

 

해당 작품의 핵심적인 특징은 2인극입니다. 논문 '2인극의 연극적 특성에 대한 고찰-2인극 페스티벌 작품을 중심으로'에도 흥미로운 내용이 많았는데요. 2005년 2인극 극페스티벌 김진만 총감독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2인극이란 의사소통의 최소 단위 만으로 극을 끌어가면서 갈등 구조를 명확하게 보여줄 수 있고, 인물의 관계나 특성을 집중적으로 탐구해 연구할 수 있기에 배우들에겐 두려우면서도 도전해 보고 싶은 매력적인 형식." 논문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문장도 "2인극에서 배우의 역할은 극대화된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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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왕조의 웅장함, 군주의 고뇌 등을 표현하기에 2인극은 다소 불리합니다. 그런데도 뮤지컬 <하트셉수트>가 연일 매진을 기록한 데엔 여덟 배우의 공이 컸겠지요. 때마침 대학로에 <올랜도 in 버지니아>(2025.07.09~2025.10.09, 링크아트센터드림 드림4관), <더 크리처>(2025.06.16~2025.08.31, 자유극장) 등 여성 (페어) 2인극이 올라온다고 합니다. 각 작품이 어떤 자료를 참고했을지도 꼼꼼히 살펴보겠습니다.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4608

 

 

 

커튼콜, 당신들의 '가짜' 고백을 환영합니다.


 

달력을 확인해 보니 지난달에 공연만 8번을 봤더군요. 주변 친구들을 보니 저는 양반이었습니다. 공연 예술이 무엇이길래 사람들이 그토록 열광하는 걸까요? 어떤 교수님께선 이런 질문을 던지기도 하셨습니다. OTT 때문에 영화관이 망해간다던데, 공연장을 찾는 청년들은 왜 점점 느는 거냐고. 저도 그 '청년들' 중 한 명으로서 곰곰이 생각해 봤습니다. 대체 어떤 순간이 우리를 공연장에 꼭 붙들어두는 걸까요?

 

배우가 완전히 몰입한 게 느껴질 때? 그들이 배우가 아니라 캐릭터로 존재할 때? 그 캐릭터가 나와 공명하는 지점이 있을 때? 모두 맞습니다. 그러나 가장 후련할 때는 마지막 대사가 끝나고 암전이 된 후 관객이 모두 일어나면서 의자가 탁탁탁 닫힐 때, 다시 무대 위로 나온 배우들에게 힘찬 박수를 보낼 때, 관객만큼이나 배우들이 벅찬 표정을 짓고 있을 때, 극장을 나와 보니 손이 새빨개져 있을 때 아닐까요? 극 내용이나 대사를 기억하진 못하더라도 그 얼얼한 감각만은 기억에 남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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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커튼콜은 공연 예술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문화입니다. 우리는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본 후 박수를 치지 않습니다. 박수를 쳐도 그들에게 닿지 않으니까요. 공연장에선 다릅니다. 그들의 목소리는 바로 우리에게 닿고, 우리의 박수는 바로 그들에게 닿습니다. 우리는 영영 기록되지 않을 예술을 보여준 그들에게, 그들은 이 시간을 비로소 예술로 완성해 준 관객에게 박수를 쳐줍니다.

 

커튼콜 박수를 진화 심리학적으로 해석한 자료도 있었는데요. 배우들이 관객을 향해 양팔을 벌리는 것은 아이가 부모에게 안아달라고 팔을 벌리는 행위를 닮았고, 관객이 박수를 치는 것은 자식의 등을 한 손으로 두드려주는 애정 행위와 비슷하다는 내용이었어요. 이렇게 생각하니 커튼콜이 더 좋아지더군요.

 

좋은 글은 쓰는 나와 읽는 내가 바뀌는 글입니다. 그 변화는 실시간으로 일어나기도 하고, 꽤 긴 시차를 두고 찾아오기도 합니다. 이 글은 시차 없이, 쓰는 내내 제가 바뀌고 있음을 느끼게 해줬습니다. 공연 예술을 사랑하시는 분이라면, 이 글을 조심스레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4979


저는 앞으로도 불완전한 순간을 불완전하게 붙들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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