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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여름 한복판, 델리스파이스를 듣는다 [음악]

슬프지만 진실한 여름의 사운드트

by 김혜성 에디터
2025.06.04 01:32

 

 

델리스파이스3.jpg

 

 

 

다시, 여름. 밴드 음악의 계절이 돌아오다.


 

여름이다.


습도 높은 공기, 도시의 아스팔트 위를 스치는 바람, 어쩌면 모두가 조금씩 예민해지는 이 계절. 그러나 사람이 붐비는 출근길에도, 꽉 막힌 버스 안에서도, 이어폰을 귀에 꽂는 순간 나만의 세계가 펼쳐진다.


그 속에 흐르는 한 줄기 멜로디는 무더운 날의 숨구멍이자, 마음의 그늘을 식혀주는 작은 그늘막이다.


오늘은, 내가 오래도록 좋아해온 밴드 델리스파이스의 노래 몇 곡을 통해 이 여름을 좀 더 서늘하게, 혹은 서글프게 만들어보고자 한다.

 

그들은 언제나 직선처럼 곧게 뻗은 말들로, 사선처럼 기울어진 감정을 노래해왔다.




새와 고양이에 대한 진실 -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날 수 없는 새 한 마리에 대하여


 

 

 

길을 걷던 한 소년은 물었지

엄마 저건 꼭 토끼같아 라고

심드렁한 엄마는 대답했지

얘야 저건 썩은 고양이 시체일 뿐이란다


뒤틀린 발목 너덜너덜 해진 날개를

푸드덕거려도 보지만

날 수 없는 작은 새 한 마리를 누가 쳐다나 보겠어

 

 

델리스파이스의 정규 3집 《슬프지만 진실...》(2000)은 제목처럼, 우울한 감정의 결을 날것 그대로 그려낸다.


그중 ‘새와 고양이에 대한 진실’은 첫 구절부터 청자를 멈칫하게 만든다. ‘토끼’라 믿고 싶었던 환상은 ‘썩은 고양이 시체’라는 냉혹한 현실로 부서지고, 날개를 퍼덕여도 날지 못하는 작은 새는 이내 시선 밖으로 밀려난다.


여기서 말하는 새는 단순한 동물이 아니다. 상처 입은 존재, 아무리 애써도 제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마음, 그리고 그런 마음을 외면하는 무심한 세상이다.


2000년대 초반, 여러 방송사에서 이 곡을 포함해 앨범 수록곡을 방송 부적절 판정을 내렸던 이유는 이 노래가 그 시대가 용인하지 못한 지나치게 ‘진실한’ 말들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델리스파이스는 그런 밴드였다. 직설적인 감정, 날것의 시선, 비극마저 미화하지 않는 방식으로 세상의 틈에 손을 넣어, 꺼내기 어려운 감정들을 조심스럽게 꺼내 보여주었다.




《챠우챠우》 - 아무리 애를 쓰고 막아 보려 해도 너의 목소리가 들려


 

이 노래는 원래 제목이 ‘아무리 애를 쓰고 막아 보려 해도 너의 목소리가 들려’였다. 너무 길다는 이유로, 결국 중국 개의 이름 ‘챠우챠우’로 줄여졌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은 결코 가볍지 않다.

 

 

 

 

2006년 부산 국제 락 페스티벌.

 

햇빛이 강렬하던 어느 여름날, 야외 무대 위에서 울려 퍼진 이 노래는 태양보다 뜨겁게 청중의 가슴을 두드렸다. 땀과 열기, 그리고 수천 명의 심장이 함께 박동하던 순간이 담겨있다.


델리스파이스는 해외 메탈 록의 물결 속에서 모던 록과 인디의 결을 고집스레 밀어붙였다. 그들은 한국에서 쉽게 ‘잘 될 수 없는 음악’을 했다. 그러나 챠우챠우는 오히려 그러한 의문에 대한 그들만의 해답이었다.


이 곡은 반복적인 가사 속에서 단호한 감정의 심지를 끌어낸다. "아무리 애를 써도 너의 목소리가 들려" 그것은 누군가를 향한 외침일 수도 있고, 스스로를 향한 포기일 수도 있다.


《챠우챠우》는 델리스파이스가 써내려간 낭만과 단호함이 공존하는 한 편의 여름이 되었다.




《처음으로 우산을 잃어 버렸어요》 - 나를 지켜주던 모든 것으로부터 멀어지는 순간



 

 

우산에 지나지 않아 비속에도 버려진 검은 우산처럼

오히려 하늘을 보기에

추억만 담고 있잖아 누군가 손을 내민대도

내리는 이 비를 막을 자신은 없어

 

 

정규 5집 Espresso의 11번 트랙이다. ‘고백’이라는 명곡 뒤에 숨겨진, 이 조용하고도 절절한 노래는 스러진 보호막, 혹은 더 이상 감정을 감쌀 수 없는 마음에 대해 노래한다.


비는 문득 찾아온다. 맑은 날이 오래 지속되면 우리는 비의 존재를 잊고, 비를 막아주던 도구들조차 의미를 잃게 된다. 그러다 갑자기 쏟아지는 빗속에서,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무방비한 존재였는지 깨닫는다.


'우산'은 원래 비로부터 누군가를 지켜주는 도구이다. 하지만 이 노래의 화자는 더 이상 누군가를 지켜줄 수도, 자신을 보호할 수도 없는 상태이다. 비에 젖은 채, 길가에 버려진 검은 우산처럼.




여름, 감정을 담는 그릇으로서의 음악


 

밴드 음악이 좋은 계절이다. 기분을 붕 띄우는 것도, 무너뜨리는 것도 모두 가능한 사운드. 델리스파이스는 그 중에서도 감정의 파편을 주워 담는 데 익숙한 밴드다.


삶의 어느 순간, 차마 말로 꺼낼 수는 없었던 감정이 있다면 한낮의 햇살과 밤의 빗소리에 모두 어울리는 감성이 필요하다면 이들의 노래를 들어보길 바란다.


이 여름이 조금 더 깊어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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