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뒤에서 따르릉, 하며 벨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대여섯살 정도 되어보이는 아이가 자전거를 타고 내쪽으로 오고 있었다. 아이의 아버지와 함께 자전거 연습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아버지는 조금 떨어진 뒤에서 아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아직 조작이 미숙한지 불안하게 앞바퀴, 핸들이 흔들흔들거렸고, 금방이라도 부딪힐 듯 위태로워보였다. 하지만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 꼭 나를 보는 것만 같았다.
# 2008년, 여름
"아빠, 절대 놓으면 안돼!"
절대, 절대 자전거를 놓지 말라는 내 말에 아빠는 걱정말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뒷 안장을 살포시 손으로 잡았다. 대여섯번의 도전이 이어졌지만 번번이 중심을 잃고 쓰러지기 일쑤였고, 한 번은 무릎으로 넘어져 쓰라린 상처를 얻기도 했다. 그 뒤로도 계속 두발자전거를 정복해보려고 노력했지만, 앞으로 잘 나아가지 않는 모습이 답답했을 뿐만 아니라 밧줄타기처럼 위태롭게 흔들리는 중심에 어린 몸을 맡기기에는 내심 겁이 났다.
우선 자전거와 친해져보는 게 어떻겠니, 라고 말씀하시던 아빠에게 보조바퀴를 선물받았다. 학교가 끝난 방과후에, 온통 노란빛으로 눈을 부시게 했던 학교 운동장에서 혼자 자전거와 친해지는 연습을 했다. 더이상 망설일 것도 없던 때, 보조바퀴로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은 용기를 얻었다.
# 다시 2024년, 여름
나와 따릉이 옆을 아스라히 지나간 아이와 자전거, 그리고 그 뒤를 따라가던 아버지는 이제 우리를 앞질러 뒷모습을 보여주게 되었다. 서서히 멀어져가는 자전거 뒤로, 어릴적 내가 사용했던 보조바퀴가 있었다. 한가지 유심히 보았던 것은 바로 보조바퀴의 높이. 중심을 잡아주기 위해 보조바퀴를 장착하지만, 신기하게도 땅으로부터 떨어져있는 모습을 봤다.
내가 두발자전거를 배울 때도 분명 그랬다. 어느순간부터 보조바퀴를 잊고, 두 바퀴와 한 몸이 되었다. 다치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 스스로를 오롯이 믿는 과정이 지나자, 자전거를 익히게 된 지금이 됐다. 결국 보조바퀴란 있지만 없는 것. 없지만 믿다보니 존재하게 된 일종의 불안같은 것이었다. 그런 흔들거리고 덜컹거리는 걱정을 내던지던 때면, 어느순간부턴 바닥에 긁히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자유롭게 두발자전거를 타게 될 때쯤 한 뼘정도 키가 자랐던 것 같다.
그런 성장의 시간이 있다. 4만번대 따릉이, 그리고 뒤에서 우리를 향해 불안하게 달려오던 아이의 모습은 지나온 나의 모습이었다. 동시에, 내 앞으로 지나가던 아이는 앞으로 내가 성장하게 될 미래였다. 지나가던 아이와 네발자전거로 얼핏 엿봤다. 우리는 늘 보이지 않는 불안에 보조바퀴처럼 흔들거린다. 자전거를 타는 일은 자신을 스스로 믿는 힘을 기르는 것이며, 언젠가 찾아올 성장한 모습을 꿈꾸게 하는 창문이었다. 그 노란 빛이 드리우는 곳으로 발을 떼었고, 앞으로 나아간다. 아이와 내가 그랬듯이 말이다.
나도 속도가 느리고, 여러번 덜컹거려.
그리고 모든 사람의 마음을 맞추기가 어렵지.
따릉이가 한 말에 끄덕이며 공감이 된다는 듯, 이런 말을 했다. 이젠 그 누구의 속도도 맞추지 않고 자전거와 내 속도대로 천천히 앞으로 향했다. 삐걱거리며 여유롭게, 그냥 자신을 믿는 일이었다. 문득 자전거와 내 모습이 좋았다. 덜컹거렸던 우리의 모든 모습에서 춤을 추는 듯한 경쾌함을 느꼈다. 자신의 가장 편인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서로의 가장 편이 된다. 그렇게 우린 그냥 그렇게 느린대로 환상의 호흡을 자랑하는 최고의 친구가 됐다.
동네의 풍경이 평소보다 조금 느리게 흐르던 지난 여름, 분명히 어느순간 그 아이처럼 내가 나를 지나갔겠지. 아스팔트 도로와 마찰되는 소리가 시끄러워야 했던 소음 대신, 하늘을 날아오르는 듯한 적막. 두발자전거를 정복했다는 뜻. 두둥실 떠오르는 꿈처럼 달고 달았던 그 날도 무더운 여름일까?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