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글은 스스로에게 보내는 내밀한 편지와도 같다. 개인적이고 솔직하게 내 이야기를 풀어내다 보면 나도 몰랐던 내 마음이 드러나기도 한다. 글쓰기가 심리 치료의 방법이 되기도 하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아트인사이트 에디터가 되어 정기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지 1년이 되어간다. 신기하게도 에디터가 된 시기는 내가 딱 퇴사를 하게 된 시기와 맞물렸다. 그래서인지 이곳에 예술 이야기나 공연 후기가 아닌 개인적인 에세이로 쓴 글들에는 전부 퇴사 이야기가 들어가 있다. 에세이만 모아놓고 보니 퇴사 후 1년여 간의 내 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 글들을 다시 되짚어보면 그때의 내가 어떻게 지금의 내가 되었는지, 무엇이 변하고 무엇이 변하지 않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과거의 내가 쓴 글이 어쩌면 지금의 나에게 단서를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약 1년도 채 되지 않은 작년 8월 초, 퇴사를 한 지 1주일쯤 된 백수 새내기였을 때, 나는 처음으로 아트인사이트에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를 기고했다. ‘자기소개’가 주제로 주어진 상황에서 나는 담담히 ‘스스로 되고 싶은 나’에 대해 적었다. 이중 유난히 눈에 띄는 부분이 있다.
세상에 꼭 ‘실용적’인 것들만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실용’의 기준은 경제적인 논리에 의해 판단되기 때문에 돈이 되는 것들만 필요한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그 외의 것들에서 삶의 이유와 가치를 느낀다고 믿는다.
이를테면 내게 그런 것들은 예술, 철학, 문학과 같은 것들이다. 내 삶에서 무용한 듯하지만 가치 있는 것들. 평생 그것에 대해 인지하고 다른 사람과 나누는 삶이 되었으면 좋겠다.
(...)
나는 결국 누군가에게 ‘쓸모’가 있다고 느껴질 때 충만감과 자기만족감이 올라가는 사람이다. 내가 선한 영향력을 끼쳤다는 기분은 나의 직업 선택에서도 아주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다. 내가 하는 일이 이 세상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야 동기 부여가 된다.
더 나아가 나의 고유성이 인정되는 방식의 도움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다. 나라서 줄 수 있는 도움, 내가 특히 잘하는 분야에서 내 능력이 더욱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일을 찾고 싶다.
- <심리 상담을 받고 있다> (2023.08.04) 중
이때의 나는 아직 인스타툰을 시작하기 전이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 그저 막막했던 때 어렴풋이나마 내가 하고 싶었던 것. 무용한 것을 맘껏 사랑하고 나누는 일. 그리고 나의 고유성이 인정받는 일. 나만이 할 수 있는 일. 그땐 무슨 일이 이걸 가능하게 해줄지 알지 못했다. 궁극적 목표만 있고 수단을 모르던 때였다. 내가 좋아하는 것과 가치를 두고 있는 것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결국 그 수단을 찾아서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었다. 이때의 나에게 돌아가 말해주고 싶다. 결국 너는 그 방법을 찾았다고.
그리고 뜻밖에도 지금의 내게 필요한 조언도 찾았다.
"남들이 당신한테 무슨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든, 그것은 당신의 가치를 조금도 훼손할 수 없어요.”
- <심리 상담을 받고 있다> (2023.08.04) 중
상담 선생님이 해주신 이 말이 그때 당시에도 굉장한 위로가 되었지만, 지금의 나에게도 큰 힘이 된다. 얼마 전 올린 게시물이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저조해서 한참 우울했다. 남의 관심과 평가에 좌우되고 싶지 않지만, 필연적으로 그런 성격을 띤 일을 하고 있어서 어느 정도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대중의 반응이 좋지 않다고 해서 내 콘텐츠의 가치가, 나라는 사람의 가치가 훼손되는 건 아니다. 그 콘텐츠에 쏟은 나의 진심은 여느 콘텐츠 못지않았다. 누구보다 스스로 알고 있다. 다시금 마음을 다잡았다.
그 다음에 기고한 에세이는 한층 더 진솔했다. 방황보다는 방랑하겠다고 좀 더 자신 있게 마음먹었을 때다.
아무튼 나는 한동안 방랑하려고 한다. 여전히 세상은 어지럽고 뭐가 뭔지 모르겠으며 이말도 저말도 맞으면서 틀린 것 같다. 혼돈이 가득하니 이런 와중에는 더더욱 정착할 수 없다. 이 혼돈 속에 몸을 던져 맘껏 방랑하겠다. 정해진 곳 없이 이곳 저곳 떠돌면서 배우는 건 또 얼마나 많을까 싶은 마음에 오늘 밤은 조금 설렌다. 그러다가 침대에 누우면 막상 마주해야 할 막막한 미래에 또 불안하겠지.
- <방황은 아니고 방랑 중입니다만> (2023.10.14) 중
이때만큼은 아니지만 지금도 여전히 불안한 건 마찬가지다. 할 일은 찾았지만 여전히 확신은 없다. 하지만 이때 방랑의 결심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내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엄청난 불안 속에서도 방랑하기로 마음먹은 과거의 내가 있기에 지금 원하던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이 글을 보니 방랑에 대한 확신이 더욱 굳어진다. ‘이곳 저곳 떠돌면서 배우는 건 또 얼마나 많을까’ 설레했던 그때의 내게 말해주고 싶다. 진짜 많이 배우게 된다고. 기대해도 좋을 만큼.
올해 첫날 쓴 글도 있다. ‘새해 첫날이 싫다’는 게 주제였던, 지금 봐도 뭔지 모를 불만 섞인 주저리에 가까운 글이다. 그 와중에도 눈에 띄는 구간이 있다.
고등학교 때 웨이크보드를 탄 적이 있다. 웨이크보드를 잘 타려면 파도를 이기고 헤쳐나가야 할 때도 있지만 파도에 내 몸을 맡기고 잠자코 따라가야 할 때도 있다. 그 타이밍을 아는 것이 핵심이다.
말하자면 나는 지금 파도에 내 몸을 맡기는 타이밍에 있는 것 같다. 일단 흘러가는 대로 따라가 본다. 물의 흐름이 나를 데려다주는 곳으로.
어쨌든 무언가 계속 하고는 있다. 정확히 어딜 향하고 있는지,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아직 잘 모르겠지만.
언젠가 내 힘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 같을 때가 오면 그때 헤쳐 나가도 괜찮아. 가라앉아 있는 것만 아니라면, 어딘가를 향하고만 있다면 괜찮아.
- <나는 새해 첫날이 싫다> 중
분명 과거의 내가 쓴 글인데 지금의 내가 다시 위로를 받는다. 최근 새로 벌린 프로젝트가 많아졌는데, 어쩌면 지금의 나는 파도를 거슬러 올라가고 있는 때가 아닐까 싶다. 파도에 몸을 맡기고 따라가던 때를 지나 어느새 새로운 물결을 만들어보기 위해 힘차게 물살을 가르고 있다. 다소 힘겹지만 지금이 왠지 그래야만 할 때인 것 같다. 이게 어떤 새로운 파도를 만들어줄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
지금의 나는 각각의 시기에 불안해 했었던 나에게 조금 더 여유를 가져도 된다고 말해줄 수 있을 것 같다. 미래의 나도 지금의 나를 여유로운 미소로 회고하게 되길 바라며.
계속 기록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된다. 미래의 나를 향해 편지를 쓴다는 마음으로, 오늘의 기록이 내일의 나에게 어떤 위로와 단서를 남겨줄 수 있을지 모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