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방황은 아니고 방랑 중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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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방지축 어리둥절 빙글빙글 돌아가는
어릴 때일수록 돈을 절약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차피 나이 들면 돈은 더 벌게 되어 있으니 경험에 아낌없이 투자하라는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람은 좋아하는 것을 본업으로 삼아 행복해졌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좋아하는 것이 본업이 되는 순간 싫어지게 되므로 그냥 잘하는 일을 하라고 한다. 예전에는 한 분야에 전문적으로 파고들어 스페셜리스트가 되어야 한다더니, 또 요즘 시대에는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경험이 있는 제너럴리스트가 되어야 한다고 한다.
서로 상충하는 이야기들이 동시에 들려온다. 그 말도 맞고 이 말도 맞는데 그 사람도 틀리고 이 사람도 틀린 것 같다. 무슨 말이 맞는지 어떤 게 더 좋은 선택인지 아침에는 끄덕였다가 저녁에는 고개를 젓고 있는 요즘. 모든 문장의 끝에 물음표가 붙는다. 그런가? 아닌가? 그럴 수도 있나? 아닐 수도 있나? 둘 다 맞나? 둘 다 아닌가?
인생에는 뭐 이리 챙길 게 많은지 모르겠다. 학창 시절엔 공부만 잘하면 됐는데. 이제는 커리어, 자기 계발, 관계, 건강, 경제, 사회…. 챙겨야 할 게 너무 많다. 모든 걸 다 챙기지 못해 조바심이 나다가도 일순간 다 놓아버리고 싶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에 벅차오르다가도 금세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라는 무력감에 휩싸인다. 누구라도 뭐라도 간절히 붙잡고 물어보고 싶다가도 어차피 의심이 많아서 누가 뭘 말해줘도 쉽게 안 믿는다. 결국 답은 내 안에 있다고 마음을 다잡아 보지만, 끝내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내가 한심해진다.
<짱구는 못말려> OST처럼 '빙글빙글 돌아가는' 세상에서 '천방지축 어리둥절'의 상태로 방황하고 있는 요즘이다.
방황의 세월
대학 때까지 나는 항상 꿈이 있는 아이였다. 초등학교 때는 작가, 중고등학교 때는 영화감독, 대학교 때는 학자. 학창 시절에는 꿈이 있다는 것이 내 자존감의 바탕이었다. 공부를 특출나게 잘하진 않아도 나는 꿈이 있어서 두려울 게 없었다. 인생에 목표가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꿈이 좌절될 때도 많았지만 그때마다 다음 꿈을 꾸었다. 사사로이 흔들리기는 해도 어디로 향해야 한다는 대략의 방향은 언제나 있었다.
그러다가 대학 졸업 후 2020년, 붙을 거라고 믿었던 대학원에서 떨어졌고 난생 처음으로 꿈 없는 인생을 마주했다. 대학원 석박사 통합 과정은 최소 5년의 세월을 바쳐야 한다. 그 후 대개 교수 혹은 학자의 길로 접어든다. 고로 대학원 입시를 결심한 것은 내 인생을 학문에 바치겠다고 결심한 것과도 같았다. 대학원 입시 실패는 내가 꿈꿨던 최소 10년의 미래가 송두리째 좌절된 거나 다름없었다. 인생의 장기 계획이 무너진 셈이었다.
갑자기 인생의 방향성이 사라졌다. 더 이상 내가 가야 할 곳이 없었다. 누구도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길을 잃었다.
방황의 세월이 시작되었다. 대학원에 다시 지원할 생각은 없었다. 어쩌다 보니 이곳저곳 단기 계약직을 거쳤다.
나는 사실 방황하는 것을 싫어하지는 않는다. 어떤 사안에 대해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끊임없이 의심하는 것은 내 성격이기도 하다. 생각의 뿌리를 쫓고, 다른 사람의 생각은 어떤지 두리번거린다. 내 생각이 맞는 것 같지만 다른 사람의 생각도 틀리지 않다. 다양한 생각들을 들을수록 혼란스러워지기도 한다. 그렇게 방황할수록 더 방황하게 되지만, 방황은 지적으로 충만한 경험일 때가 많다. 방황하는 자만이 가볼 수 있는 세계가 있다. 그래서 나는 지적 방황을 즐긴다.
다만 본격적인 밥벌이를 해야만 하는 나이가 된 후로 나의 방황은 나날이 불안해졌다. 계속 방황해도 되는 걸까? 방황은 점차 고통스러웠다. 나도 언젠가 정착할 수 있을까? 정착하면 행복할까? 누구는 정착할 준비를 다 끝마친 것 같기도 하고, 누구는 정착할 곳을 알아보고 있는 것 같은데. 도태되는 것 같았다.
정착은 사실 정체되는 걸지도 몰라
그러다 작년 초 중견기업 정규직에 입사했다. 처음으로 한 곳에서 1년 넘게 일했다. 그리고 2달 전 퇴사를 했다.
퇴사를 했다고 하면 사람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너무 좋겠다며 부러워하는 사람, 아니면 불안하지 않냐며 걱정하는 사람. 나도 퇴사 직전까지 너무 좋을 것 같다는 설렘 반, 너무 불안할 것 같다는 걱정 반이었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나는 그렇게 좋지도, 불안하지도 않다. 아니, 사실은 꽤나 좋고 꽤나 불안하다. 별로 큰 변화로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어차피 회사를 다닐 때도 나는 똑같이 좋았고 불안했기 때문이다.
내가 다녔던 회사는 월급이 밀린다거나 사내 왕따가 있었다거나 심각하게 경직된 조직이었다던가 등등 흔하다는 블랙기업도 아니었다. 월급이 만족스럽진 않아도 적당히 저축하고 적당히 소비하며 살 수 있는 수준이었다. 업계 전망도 괜찮았다. 회사 사람들과 관계도 좋았다. 일도 잘 해내고 있었다. 제법 안정적으로 보이는 정착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불안했다. 속으로는 계속 방황하고 있었던 걸지도.
아니, 실은 방황하지 못해서 불안했다. 적당한 월급, 원만한 인간관계, 안정적인 직장, 나쁘지 않은 워라밸… 다 괜찮았다. 그러나 모든 것을 손에 쥐고 있으면 아무것도 제대로 얻지 못한다. 그곳에서 내가 정말 얻은 것은 없었다. 내가 정착한 게 아니라 사실은 정체되고 있는 거라는 생각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을 때 회사를 그만두었다. 정체되는 것은 견딜 수 없었다. 성장 없는 삶. 고여있는 삶. 나는 그곳에 멈춰있고 싶지 않았다.
나는 정체되느니 차라리 방황하기로 결심했다.
지금의 불안은 회사 다닐 때의 불안과 정도는 비슷해도 종류가 다르다. 회사 다닐 때의 불안이 늘 무기력으로 종결되었다면, 퇴사 후의 불안은 오히려 뭐라도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 준다. 불안해서라도 뭘 자꾸 하게 된다. 그렇게 방황은 불안하더라도 끊임없이 변화와 성장의 계기를 가져다준다.
현재 나는 열심히 방황하고 있다. 글 쓰는 일로 밥 벌어 먹고살고 싶다고 평생 (속으로나마) 부르짖던 나는 얼마 전부터 뜬금없이 인스타툰을 그리기 시작했다. 점점 긴 글을 읽지 않는 이 시대에 맞춘 나름의 비책이었다. 평소와는 달리 길게 고민하지 않고 냅다 기기부터 사서 무작정 그려보았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평생을 그림이나 디자인처럼 손재주가 필요한 영역에는 죄다 젬병인 똥손이다. 그런 내가 그림을 그린다. 기왕 방황할 바에는 안 해본 거, 못 해본 거, 싫어하던 거, 별거 다 해보기로 했다.
어렸을 땐 요란한 빈 수레가 세상에서 제일 싫었는데 요즘은 빈 수레라도 굴러가는 게 훨씬 나은 것 같다. 불안은 이제 빈 수레를 굴리는 용기와 절박함이 되어줄 것이다. 시끄럽게 굴러가는 빈 수레가 되어야지. 굴러가다 보면 뭐라도 채우겠지.
기왕이면 '방황' 말고 낭만 있게 '방랑'으로
누군가 5년 뒤 계획이 뭐냐고 묻는다면 고민 없이 답하겠다.
“모르겠는데요? 방황하다 보면 뭐든 하고 있겠죠."
기왕 그렇게 하기로 한 거 ‘방황’ 말고 ‘방랑’으로 하겠다. 사실 두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비슷하다. (조금 다르지 않을까 기대하고 찾아봤지만 거의 같다.) 하지만 어쩐지 어감상 ‘방황’은 길을 잃어서 갈팡질팡하는 것 같은 부정적인 느낌이고, 방랑은 능동적으로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것 같다. ‘방랑’이라는 단어에 좀 더 낭만적인 느낌이 깃들어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슈베르트의 <방랑자 환상곡> 때문일까. 혹은 “방랑은 낭만주의의 조건이다”라고 피아니스트 알프레드 브렌델이 한 말 때문일지도 모른다.
원래 20대는 불안하고 막막한 시기라고들 한다. 내 주변에도 겉으로 보기엔 탄탄대로의 길을 걷고 있는 것만 같았던 친구도, 자신의 꿈을 향해 묵묵히 성실하게 살고 있던 친구도, 속사정을 들어보면 다들 각자만의 방식으로 방황하고 있다. 어쩌면 20대를 지나고 있는 모든 이는 어디선가 방황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방황하고 있는 지역과 정도가 조금씩 다를 지는 몰라도. 방황은 20대의 특질인 걸까.
방황, 혹은 방랑이 20대의 특질이라면 사람들이 20대를 굳이 ‘청춘’이라는 간지럽지만 낭만 가득한 단어를 붙이는 이유가 여기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방랑에는 나름의 낭만이 있다.
아무튼 나는 한동안 방랑하려고 한다. 여전히 세상은 어지럽고 뭐가 뭔지 모르겠으며 이말도 저말도 맞으면서 틀린 것 같다. 혼돈이 가득하니 이런 와중에는 더더욱 정착할 수 없다. 이 혼돈 속에 몸을 던져 맘껏 방랑하겠다. 정해진 곳 없이 이곳 저곳 떠돌면서 배우는 건 또 얼마나 많을까 싶은 마음에 오늘 밤은 조금 설렌다. 그러다가 침대에 누우면 막상 마주해야 할 막막한 미래에 또 불안하겠지.
다소 다혈질적이고 들쑥날쑥한 분위기의 <방랑자 환상곡>이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한 방랑 동반자가 되어줄 거라 믿는다. 나와 같은 방랑자들에게도 이 곡을 추천하며.
[황연재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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