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심리 상담을 받고 있다.

내가 원하는 진정한 나의 모습을 찾아서
글 입력 2023.08.04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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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상담을 받고 있다.

 

살면서 내가 심리상담이 필요하게 될 거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스스로 건강한 마음의 소유자이고, 큰 흔들림 없이 잘 살아왔다고 자부했기 때문이다. 인생에 큰 고난이나 비극을 겪지 않는 이상 앞으로도 내가 심리상담을 받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얼마 전 어쩌다 좋은 기회가 생겨 무료 심리상담을 받아보겠냐는 제안이 들어왔다. 덥석 흔쾌히 받겠다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별생각이 없다가 막상 첫 상담을 앞두고 질문지를 작성하면서 마음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질문지는 전반적으로 상담 목적을 물어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왜 심리상담을 하겠다고 했지? 아무리 무료였다고 해도 내 시간과 에너지를 써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틀림없이 내 마음이 동한 것일 터. 하지만 스스로도 상담 목적이 무엇인지 정확히 설명할 수가 없었다. 고민 끝에 이렇게 적었다.

 

‘제 감정을 좀 알고 싶어요. 저를 알아가는 시간이 필요해요.’

 

당시에는 무척 모호하고 ‘충분하지 않은’ 상담 목적이라 생각해서 쭈뼛거리며 적었던 기억이 난다. 심지어 저 말이 진심인지도 알 수가 없었다. 목적을 말하라 해서 대충 둘러댄 건 아닐지 속으로 의심했다.

 

상담 10회차가 넘어가면서 상담 주제는 어느새 좁히고 좁혀졌다. 그리고 이제는 안다. 나는 그때 본능적으로 상담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대충 둘러댄 거라고 생각했던 상담 목적이 진짜 내 목적이었다는 것도 안다.

  

나의 모든 고민은 결국 ‘남들이 보는 나’에 대해 생각하는 것에 너무 매몰되어 있어서 정작 ‘내가 보는 나’를 들여다볼 에너지가 없다는 점에서 시작되었다. 물론 옛날부터 남의 시선을 지나치게 신경 쓰는 성격임은 알고 있었지만, 그저 스스로 ‘소심한 관종’이라고 우스갯소리로 넘어갔을 뿐, 내가 가진 부담감과 부채감, 불안 등 부정적인 감정이 다 그것에서 비롯된 건지는 몰랐다.

 

나는 어려서부터 특별해지고 싶은 욕망이 강한 사람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특별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었다. 친구들이 나를 둘도 없이 가깝고 소중한 친구라고 여겨줬으면 해서 남모르는 질투심이 많았다. 부모님도 나를 남들과는 다른 특별한 잠재력을 가진 영재라고 여겼던 것 같고, 그 기대를 맘껏 받아들이면서 즐기기도 했다. 선생님들 눈에도 공부를 제일 잘하진 않아도 어딘가에 특출난 멋진 학생으로 기억되길 바랬다. 심지어 가까운 사람이 아니라도 스쳐 지나가는 사람마저 나를 그렇게 기억했으면 좋겠다는 은밀한 욕망이 있기도 했다. 이 ‘특별함’은 때론 내가 얼마나 그 사람과 가까운지 관계의 문제이기도 했고, 얼마나 독특한 삶과 취향을 가진 사람인지의 문제이기도 했고, 어떤 분야에서 얼마나 특출나게 잘하는지의 문제이기도 했다.

 

이 욕망 때문에 내가 특별하지 않다는 느낌이 들 때마다 불안과 부담감이 덮쳐 오곤 했다. 학창 시절에는 관계에 지나친 애정과 집착을 보였다. 보통 모두에게 관계는 어려운 문제지만, 나는 유독 관계에 조금이라도 균열이 생겼다 싶으면 무엇에도 집중하지 못할 만큼 힘들어했다. 겉으로는 심각한 문제가 없어도 조금이라도 내가 ‘평범한’ 사람으로 인식된다고 생각되는 지점이 있으면 일상에 집중하지 못했다. 

 

머리로는 이것이 부질없는 것임을 당연히 알았다. 그리고 그런 것에 연연하는 것이 얼마나 피곤한 삶이고, 실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알면서도 고치지 못하는 것이 진짜 문제였다. 

 

평생 ‘남이 보는 나의 모습’에 집중하고 살다 보니 남의 시선을 배제한 ‘내가 진짜 원하는 나의 모습’을 설명하기 어렵다. 최근 상담에서는 그 두 개를 분리해 내는 것이 주요 과제이다.

 

‘자기소개’ 글을 쓰라고 했을 때 예전의 나라면 내가 살아온 길이나 호불호에 대해 구구절절 적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시점에서 나 스스로에게 가장 필요한 글을 써보고자 한다. 어쩌면 이 글은 남한테 보여주는 자기소개 글이라기보다 스스로 다짐하는 자기소개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기나긴 서론 끝에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에 대해 적어보겠다. 나의 진짜 지향점에 대해.

 

 


담백하고 겸손하게 살기


나는 요란한 빈 수레를 싫어한다. 그런 사람도 싫어하고 내가 그런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특별한 사람으로 인식되고 싶은 것과 별개로 빈껍데기 뿐인 것은 원치 않는다. 속에 없는 말을 지어내는 걸 정말 못하고, 그런 나 스스로를 좋아한다. 말과 행동에 과장이나 가식이 없으려고 노력한다. 

  

내가 원하는 삶의 방식도 담백한 것이다.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들 몇 가지가 주어진 삶이라면 그 이상을 욕망하지 않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식사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고, 적당히 예술을 향유할 수 있고,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편안한 장소와 시간이 주어지는 삶이면 충분하다.

 

또한 담백함과 겸손함은 감사함에서 온다고 믿는다. 나의 삶과 세상에 대해 감사한다. ‘내가 누구보다 낫다’는 감사함이 아니라, 내게 주어진 삶과 나를 둘러싼 세상 그 자체에 대해 감사하고자 한다.


 

 

무용하지만 삶에 꼭 필요한 것들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나누기


세상에 꼭 ‘실용적’인 것들만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실용’의 기준은 경제적인 논리에 의해 판단되기 때문에 돈이 되는 것들만 필요한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그 외의 것들에서 삶의 이유와 가치를 느낀다고 믿는다.

 

이를테면 내게 그런 것들은 예술, 철학, 문학과 같은 것들이다. 내 삶에서 무용한 듯하지만 가치 있는 것들. 평생 그것에 대해 인지하고 다른 사람과 나누는 삶이 되었으면 좋겠다.

 

 

 

신랄하지만 자비로운 태도로 세상을 보기


<단편소설집>이라는 연극에서 ‘신랄하고 자비롭게’라는 건배사가 나오는 장면이 있다. 내가 세상을 대하는 태도로 가장 정확한 표현이라 생각해서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말이다.

 

‘신랄하게’ 분석적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려고 한다. 온갖 정보가 넘쳐나고 쉽게 떠먹여 주는 콘텐츠도 많지만, 최대한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나만의 시선을 정립하려고 노력한다. 어떤 사안이든 개인에 대한 증오심보다는 세상을 거시적으로 바라보고자 한다.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편하지만 무지성적인 태도를 경계한다.

 

그러면서도 세상과 사람의 선의를 잊지 않는 ‘자비로운’ 태도를 갖고 싶다. 궁극에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은 사랑과 관용에서 온다고 믿고 싶다. ‘자비롭지만 신랄한’이 아니라 ‘신랄하지만 자비로운’ 태도를 유지하고자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 되기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망과 비슷해 보이긴 하지만, 나는 결국 누군가에게 ‘쓸모’가 있다고 느껴질 때 충만감과 자기만족감이 올라가는 사람이다. 내가 선한 영향력을 끼쳤다는 기분은 나의 직업 선택에서도 아주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다. 내가 하는 일이 이 세상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야 동기 부여가 된다.

 

더 나아가 나의 고유성이 인정되는 방식의 도움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다. 나라서 줄 수 있는 도움, 내가 특히 잘하는 분야에서 내 능력이 더욱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일을 찾고 싶다.

 

*

 

얼마 전 지난 1년 반 동안 다닌 회사를 그만두었다. 퇴사한 지 일주일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직할 곳을 정해두지 않은 채 회사를 나온 거라 벌써 불안하다. 불안의 기저에는 백수인 나를 바라볼 다른 사람들의 시선도 섞여 있다. 나의 퇴사는 다른 사람의 퇴사와는 뭔가 달라야 한다는, '특별함'에 대한 욕망이 또 다시 내 감정을 지배하고 있다. 

 

평생 남의 시선을 신경 쓰며 살던 내가 단번에 바뀔 수는 없을 것이다. 사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는 것은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피할 수 없는 숙명이긴 하다. 

 

상담 중에 상담가 선생님이 이런 말을 해주신 적이 있다. 

 

“남들이 당신한테 무슨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든, 그것은 당신의 가치를 조금도 훼손할 수 없어요.”

 

당연한 말인데도 새삼스럽게 큰 위로가 되었다. 앞으로도 남의 시선에 휘둘릴 때마다 꼭 되새기고 싶은 말이다.

 

기억하자.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나의 가치에 조금도 영향을 줄 수 없다. 온전히 내가 원하는 나의 삶을 생각하자. 담백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무용하지만 무용하지 않은 것들을 지켜내며, 신랄하지만 자비로운 태도로, 세상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방법을 찬찬히 찾아 보자. 

 

삶의 지향점은 언제고 바뀔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답은 늘 바깥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

 

 

[황연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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