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워너브라더스의 광팬이었나 생각해 보면 망설임 없이 “맞다”고 할 수는 없지만, <톰과 제리>, <루니 툰즈>를 좋아했던 것은 맞다. 이 캐릭터들을 끼고 자란 것은 아니지만 트위티와 제리는 귀여운 게 맞으니까.
“워너브라더스”라고 하면 사실 ‘창작’보단 ‘배급’이 먼저 생각나는 것도 사실이다. 마치 이 시대의 메디치 가문 같달까.
그래서 이 거대한 기업이 만든 작품은 무엇이 있나 궁금해 100주년 특별 전시회를 다녀왔다. 그리고 가장 처음 마주한 문장, “세상의 모든 이야기에 찬사를”. 실로 많은 이야기를 세상에 뿌리는 사람들의 인사말.
첫 섹션에서 연표를 보는 재미는 꽤 쏠쏠했다. 어렴풋하게 몇 번 들어본 적 있는 작품명들과 배우의 이름들, 사진을 보고 있자면 정말 옛날이야기 옛날 사람 같다가도 익숙한 이름들이 나오면 그다지 오래 지나지 않은 일처럼 여겨진다.
한때 내가 <해리포터>에 나오는 기숙사에 들어간다면 어디에 배치될지, 내 패트로누스는 어떤 동물일지, 내 마법 지팡이는 무슨 나무로 만들어졌을지 테스트로 알아보는 사이트가 유행했었다.
슬리데린에 패트로누스는 표범이었던 것만 기억이 나지만 기숙사별 교복과 등장인물들의 지팡이를 보니 추억이 떠올라 즐거웠다. 전시를 보는 많은 사람들의 표정과 비슷한 웃음이었을 것 같다. 이런 게 있었는데, 맞아 이런 장면도 있었는데, 나는 이래서 얘 좋아했잖아, 등등.
DC 코믹스 피규어와 영화에 등장하는 아이콘들 역시 퀄리티가 상당했다. 특히 피규어의 경우는 만드는 과정이 궁금해질 정도로 정교하고 섬세했다. <배트맨>에 나오는 모빌리티도 전시장 한가운데에 크게 놓여있었는데, 영화를 보진 않았지만 괜히 신기해 한 바퀴 둘러보았다. DC 코믹스 마니아가 봤다면 적잖이 좋아했을 것 같다.
영화 제작 단계별로 섹션들이 구분되어 있었는데, 덕분에 전시장 전체에 널려있는 소품들을 보고 있자니 <듄>과 같이 스케일이 큰 영화들은 얼마나 많은 소품들과 인력이 들어갈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숫자를 헤아려보다 어질어질해진 머리는 미디어 아트로 식혀주었다.
기억에 남는 섹션 중 하나다. 노란 벽에 수많은 그림. 다소 과장된 움직임들과 표정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 수 있는 공간이었다.
애니메이션은 보다가 일시 정지를 해도, 인물들의 움직임이나 표정이 잔상으로 남는 게 아니라 마치 의도한 순간에 멈춘 것 같은 움직임으로 장면이 굳는다. 모든 페이지를 직접 다 그리니 그럴 수밖에 없는데, 괜히 궁금해지곤 했었다.
이렇게 몇 장을 그리는 걸까. 그리고 이 공간에 붙어있는 수많은 그림을 보니 제작자들의 노고가 조금은 느껴졌달까. 제리와 트위티 그림들이 많아 기분이 좋았다.
다소 아쉽게 끝내는 느낌이 없잖아 있지만 워너브라더스에서 다룬 수많은 캐릭터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전시였다.
사실 전시를 보는 내내 굿즈가 상당하겠다는 기대를 했는데, 역시는 역시나였다. 탐 나는 피규어들은 이미 품절이었고 사고 싶은 엽서들은 한가득했다. 와중에 카카오와 콜라보한 인형들을 보고 조금 놀랐다. 자본주의도 역시 무섭다.
트위티가 그려진 파일과 이름 모를 귀여운 캐릭터가 그려진 엽서 한 장, <해리포터>와 <톰과 제리> 엽서도 각각 하나씩 챙겼다. 제리가 치즈 캔을 옮기는 피규어가 탐났지만 품절이었기에 눈물을 머금고 계산대로 향했다.
분명 오전까지만 해도 회사에서 1시간에 수십 통씩 들어오는 업무 메일을 보며 뒷목을 붙잡고 있었는데, 오후 반차를 내고 귀여운 것들이 가득한 전시를 보자니 동심을 되찾은 것만 같았다.
전시장에는 아이들도 꽤 많았는데, 아이들보단 아마 아이들보단 부모님들이 보고 싶어 온 전시였을 거라 감히 추측해 본다. 밝고 귀여운 색감의 캐릭터의 우스꽝스러운 움직임에 아이들도 웃고 있었고, 부모님들도 연신 카메라 버튼을 눌러대는 것을 보았는데 퍽 보기 좋았다.
아이들은 저만의 이야기를 열심히 써 내려갈 테고, 부모님들은 꽤나 행복한 이야기를 쓰고 있겠지.
세상의 모든 이야기에 찬사를 보내는 사람들의 100주년 기념은 행복해 보이는 그림들이 가득했다. 벽에도, 공간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