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나 오래 다닌 학교의 정중앙에는 잔디밭이 있다. 학생식당에서부터 도서관까지, 확실하진 않지만 내 걸음걸이로 80걸음 정도 되는 넓이다. 없으면 몰랐겠지만, 잔디밭이 있고나니 대학이란 것에는 잔디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공유하게 되는 기억이라면, 이런 잔디밭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크지 않은 학교에서 이 잔디밭은 가장 너른하고, 낮은 곳이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곳을 걸을 뿐 아니라, 자연스럽게 앉고 누웠으며 마찬가지로 새들은 아마도 모이나 벌레 같은 것들을 찾아 땅을 쪼고, 고인 물 웅덩이에서 물을 나누어 마셨다.
수평선의 공간, 숨길것이 없는 드러난 세계라 눈은 같은 높이에서 맞닿았다. 꼿꼿이 서는 것은 어딘가 이물적이니 리드미컬한 박자로 춤을 추듯 걷거나 편히 몸을 뉘여보라는 밭의 속삭임에 따랐다.
그곳에서는 노래가 뿜어져 나왔다. 항상 젊고 앳된 목소리였다. 꽃이 망울망울 형태가 잡혀 만개했다 가장 우연하고 극적인 순간에 툭 떨어지는 것처럼 옹기종기 모인 사람들은 작은 돗자리 안에서 노래를 부르며 팝콘처럼 꽃망울처럼 팡, 만개하고 툭, 선율은 바람에 떨어졌다. 이 목소리는 항상 젊고 앳되겠지, 하는 예감이 보슬비처럼 부슬거린다.
설레이는 권태로움이 계속된다. 혹은 권태로운 설레임.

앞선 고민이 많았던 이십대초반 잔디밭에서 지렁이처럼 꿈틀댔던 기억이 한 아름 있다. 다시 추측하건대 80걸음이 안되는 그 잔디밭이 영영 끝나지 않기를 바라며 걸었던 생각이 난다.
어린날, 가족과의 저녁 외식, 부른 배로 몽롱해지는 정신을 붙잡을 새 없이 잠든때 이 자동차가 영원히 시동을 멈추지 않길 바랬던 것 처럼. 잔디밭이 저 미지의 세계로 가는 길이 되어주었으면 하는 생각으로. 자동차는 집에 와서 시동을 멈췄고 아빠는 아직은 무척이나 가벼웠던 내 몸을 들어 침대에 뉘였던 기억이 난다.
날씨가 따뜻할때면 슬리퍼나 샌들을 벗고 맨발로 잔디밭 위를 걸었다. 발바닥에 닿는 뾰족거리는 감촉에 ‘쿡쿡’ 실없는 웃음을 참을 수 없다.
몸 뒤로 긴 땅거미가 지는것 같은 날이면 모든 것을 뵈이는 그 낮은 잔디밭이 문득 높게 자라나 바다의 산호초처럼 울렁거려 주었으면 했다. 그렇지만 잔디는 역시 너무 낮아 내게 갈 길을 뵈이는 것만 같아서, 몸은 누군가 숨겨주기엔 불손하게 자라나서. 그래서 나는 그냥 수업에 갔던 것 같다. 온순한고로!
계절에 상관없이 잔디밭을 가로지르고 싶지만, 봄에는 잔디를 밟는 것이 꺼려진다. 무거운 몸이 신발사이즈 정도에 응집되는 그 무게를 감당하기엔 봄 잔디가 너무 어려보이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 여름도 지나가고 바람에 찬기가 다시 섞일때 즈음이면 학생들은 다시 잔디밭을 넘는다. 또 땅이 바싹 마르고 잔디의 결이 제법 날카로워져 돗자리를 깔 때 즈음이면 강가의 청둥오리 떼처럼 삼삼오오 모여있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잔디에 파도가 일기라도 하는 것처럼 유유히 떠다니며.
하루가 흐르고 봄이 돌아오고 또 모르는 발자국들이 잔디를 딛고, 네모난 잔디밭은 지구의 공전처럼 파랬다 노랬다 축축했다 바짝 말랐다 한다. 쇠약한 일도, 몸져 눕는 일도 없이. 이 잔디는 영영 발목의 복숭아뼈를 넘게 자라지 못하고 오랫동안 젊을 이 대학과 함께 오랫동안 어릴게지,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