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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게 문자를 보내볼까 고민했다.
엄마 보고 싶어, 라고 적힌 문자 칸을 보다가 휴대전화를 껐다. 아직은 마음이 이른 문자를 보내기는 힘들었다. 물 한잔을 마시고 계속해서 엄마 생각을 했다. 가부장제가 뿌리 깊은 한국 사회에서 엄마와 딸이 똘똘 뭉친, 유대관계가 깊은 모녀 관계는 흔했지만, 나는 그 안에 속하지 않았다.
엄마는 아팠고 나를 돌볼 여력이 되지 않았다. 엄마를 원망하지 않지만, 종종, 엄마가 아프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생각해 본다. ‘엄마’하고 허공에 이름을 뱉었을 때 마음은 조금 덜 시렸겠지, 라고 생각한다.
제대로 된 글을 쓰기 시작한 건 초등학생 때쯤이었다. 그쯤에는 작은 삼촌네와 함께 살았는데, 많이 무섭기도 또 눈치가 보이기도 해서 늘 일기장에 무언가를 적었다. 어느 날은 삼촌을 원망했고 또 어느 날은 멋진 어른이 된 날 마구잡이로 적었다.
눈치 보는 삶에서 빛나는 삶으로 순식간에 도약하고 싶은 마음을 한 자 한 자 흰 종이에 찍어냈다. 지금 그때 적은 걸 보면 유치해서 다시 읽기 민망할 정도인데, 그때의 진심만은 유치하지가 않다. 종종 타임머신이 있다면 나는 늘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흰 종이 위에 작은 손으로 그렇게도 열심히 적는 한 꼬마 아이를 아무 말 없이 꼭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단 한 번도 나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게 득이 된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근데 글을 쓰면 아무래도 좋았다. 내 이름을 떡하니 올려놓고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게 된 ‘아트인사이트’ 에디터가 된 이후에는 특히 그랬다.
친구에게도 하지 못했던 말을 허심탄회하게 적어 보기도 했다. 개인 사정이 쑥스럽다거나 내 별난 성격을 숨겨야 한다거나 하는 생각은 딱히 안 했다. 오히려 누군가 글자 위에 놓인 진심을 발견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컸다. 이상하게 글을 쓰는 건 나를 다른 사람처럼 만들곤 했다. 아주 조금은 나 자신에게 솔직할 수 있는 사람, 그래서 속에 놓여 있는 것이 바깥 공기도 맡을 수 있게 되는, 그래서 마냥 썩어들어가지만은 않는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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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가 된 이후로는 많은 게 변했다. 일주일에 한 번 씩 글을 써야 했기 때문에, 일주일 내내 글감에 대해 생각했다. 영화에 대한 글을 주로 쓰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계속해서 내 이야기를 적었다.
올해 들어서 사주를 봤는데 이번 연도가 많이 힘든 해라더니, 정말 복채 값을 했다. 매일 같이하던 일도 힘들어진 시기에 글쓰기는 더 간절해졌다. 일주일 내내 울컥 치솟은 마음을 글로 쏟아낸 후 축 늘어져 새로운 주를 맞이하는 게 일상이 된 지난 4개월을 보냈다. 글을 쓰는 건 매 순간이 고통이었지만 아무것도 적지 않았다면 아마 올해는 아주 많이 어두운 한 해였지 않을까 싶다.
엄마에게는 아직 단 한 번도 내 글을 보여준 적이 없다. 쑥스럽기도 하고 또 엄마가 관심을 두지 않을 걸 알았다. 사춘기를 다 지난 성인이 됐지만, 여전히 엄마의 사랑에 있어 예민하게 굴 수밖에 없는 나를 또 마주하고 싶진 않았다.
한 번도 보여줄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데, 문득 엄마가 내 글을 보면 어떻게 반응할지가 궁금해졌다. 장하다고 할지, 아니면 왜 이렇게 우중충한 글만 쓰냐고 할지 궁금해졌다. 근데 아마 엄마는 우리 딸 장하다고 하다가 근데 글이 왜 이렇게 우울하냐고 할 것 같았다. 그리곤 결국에 다시 늘 그렇듯 먼 허공을 바라보겠지만.
엄마는 늘 엄마 품을 떠나 서울에서 자취하는 나를 많이 걱정하곤 했다. 걱정의 끝은 늘 얼른 고향으로 내려오라는 거였고, 어느 순간부터는 그 말이 나올 낌새가 보이면 나는 전화를 끊었다. 삼 학년이 된 후로 매우 바쁘기도 했고, 현실에 부딪혀 자꾸 부모님을 원망하는 못난 마음을 피하고 싶었다. ‘잘 지내’란 말은 쉽게 입밖에 나왔지만, 나는 잘 지내지 못했고 밑에 내려가면 그런 내가 들통 날 게 뻔해 서울을 고수했다.
언젠가는 그래도 엄마에게 내 글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적당한 칭찬을 받고 적당한 꾸지람도 받고 적당한 무관심에 실망해 보고 싶다는, 그런 생각. 아주 평범한 범주에 있는 것들을 온전히 누리는 상상. 하지만 아직은 엄마도 나도 잘 지내지 못하기에 여기에 이렇게라도 적고 싶다. 그래서 아주 나중에 우리가 서로를 바라볼 때 아무런 아픔 없이 웃을 수 있다면 이 글을 보여주고 싶다.
엄마 아직은 문자로 보낼 수 없지만, 언젠가는 다 말할게요. 나는 잘 지내요. 그러니까 엄마도 잘 지내세요.
에디터 생활의 마지막 글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써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죽지 못해 사는 삶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는데 힘들었던 순간들을 지나고 나니 남들이 하는 말처럼 정말 아무것도 아닌 순간들이었더라구요 그런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 더 단단해진 지금, 그 순간들을 반추하면 꾸역꾸역 버티면서 극복했던 힘듦들이 마냥 구질구질한 것만은 아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모든 사람들의 삶도 이처럼 각자만의 시련과 고난 후에 변하는 것일테니 에디터님의 미래도 더 단단해져 있길 바라겠습니다 언젠간 에디터님이 썼던 글들을 행복하게 반추할 수 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