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왜 나는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을 걷는가?
올 해 여름,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을 걸었다. 여러 루트 중에서도 매년 약70%의 사람들이 걷는, St. James길이라고도 불리는 프랑스 길을 걸었다. 약800km, 30일의 시간. 힘들어 했던 나 자신을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그러나 나는 또 다른 루트를 준비하고 있다. 건조한 숫자로는 알 수 없는 무한한 가치를 간직한 한 달을 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프랑스길 루트
산티아고 길의 유래는 아래와 같다.
예수의 12사도 중의 한명인 성 야곱Saint James은 예수 생전에 약 7년 여의 전도를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지만 헤롯왕에게 참수를 당하여 예수의 12사도 중 첫 번째 순교자가 되었으며, 제자들은 그의 유골을 생전에 그가 전도하던 스페인 북부지방으로 가져와서 묻게 된다. 세월이 지난 813년 한 은둔 수도사가 별빛의 인도에 따라 성 야곱과 두 제자의 유골과 부장물을 우연히 발견한다. 그 자리, 산티아고 콤포스텔라(Santiago는 성 야곱, Compostela는 별들의 들판 이라는 뜻의 스페인어)에 세워져 성 야곱의 유골을 안치한 성당은 예루살렘과 로마에 뒤이어 가톨릭 세계 3대 성지가 되었고, 이때부터 유럽의 각 지역으로부터 수많은 가톨릭 신자들이 산티아고 콤포스텔라를 향한 순례길에 나서게 되었다.
이처럼, 원래는 종교적인 이유였으나 오늘날에는 레져, 여행, 문화체험, 다이어트 등 다양한 이유로 사람들은 이 길에 오른다. 나는 삶의 전환기를 맞이하고자 이 길을 떠났다. 가장 큰 변화라 한다면 종교에 대한 인식이다. 이전에는 종교란 ‘자신들이 보고 싶은 것만을 보는’ 폐쇄된 믿음이라고 여겼던 반면 체력적으로 심리적으로 도전받는 이 길 위에서 나에게 ‘위안과 용기’를 줄 무언가가 필요해졌고 자연스레 절대자의 존재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시공간을 뛰어넘는 무한한 절대자 앞에서 나의 미래는 가을 낙엽처럼 한 없이 작고 가벼워졌다. ‘신은 우리가 견딜 수 있는 만큼의 미래만 허락 한다’는 말을 온 몸으로 느끼며 걸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마주한 숭고미
거대한 규모와 무한함을 처음 마주하면 사람들은 공포심을 느낀다. 그러나 실제로 해를 끼치지 않음을 인지한다면 이는 ‘안도감Delight’이라는 쾌(快)로 바뀐다. <숭고미에 관하여>를 쓴 에드먼드 버크가 말하는 ‘숭고미’의 본질이 여기 있다. 즉, 위압적이고 공포스럽지만 실제로 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이는 안도감을 주고 숭고라는 새로운 차원의 아름다움으로 전환된다. 대자연이나 웅장한 건축물 등을 마주했을 때 경외심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그 느낌을 숭고함이라한다.
알랭 드 보통은 [여행의 기술]에서 숭고함이 주는 묘미를 잘 설명한다.
“숭고한 풍경은 우리를 우리의 못남으로 안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익숙한 못남을 새롭고 좀 더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생각하도록 해준다. 이것이야말로 숭고한 풍경이 가지는 매력의 핵심이다.” 즉, “숭고의 장소들은 부드럽게 우리를 다독여 한계를 인정하게 한다. … 그러나 가장 훌륭한 태도로, 가장 예의를 갖추어 우리를 넘어서는 것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것은 아마 자연의 광대한 공간일 것이다. 그런 공간에서 시간을 보낸다면, 우리의 삶을 힘겹게 만드는 사건들, 필연적으로 우리를 먼지로 돌려보낼 그 크고 헤아릴 수 없는 사건들을 좀 더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데에 도움을 얻을 수도 있다.”
산티아고 순례길 위에서 나는 숭고함을 느끼게 하는 아름다움, 즉 숭고미를 자주 마주했다.
왼쪽부터 레온Leon 대성당, 아스토르가Astorga 대성당, 산티아고Santiago de Compostela 대성당
위에 부터 어느날 일출, 오세브리로O cebreiro의 풍광, 엘아세보ElAcebo의 일몰
내가 숭고함을 느낀 아름다운 장면들
언제나 넋을 놓고 감탄하며 이 장면들을 바라보았다. 그 시간은 내 삶을 생각의 중심에서 가장자리로 보내 관조를 가능하게 했다. 내 미래는 절대자만이 알고 있고 나는 ‘발에 물집이 생기면 어떡하지? 숙소가 없으면 어떡하지?’같은 불안일랑 접어두고 그 운명을 끈질기게 따라가기만 하면 되었다. 걸으면서 느낀 모든 번뇌가 사라지고 차분하게 걱정보다는 낙관으로, 부정보다는 긍정으로 나의 여정을 곱씹곤 했다.
다음에 갈 길은 북쪽길Camino Norte이다. 약 800km의 여정이고 스페인 북부해안과 산악지대를 따라 걷기 때문에 난이도가 조금 있는 편이다. 사람들이 훨씬 적으니 더 자주 자신과 대화할 수 있고, 프랑스 길과는 또 다른 묘미를 주는 풍광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성찰을 위한 길. 나는 그 길을 또 걸을 것이다.
참고문헌
『여행의 기술』, 2011, 알랭 드 보통, 정영목 옮김, 청미래
산티아고 순례자길 유래
지도 출처 http://goog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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