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저속한 네온사인에서 네온아트가 되기까지 [시각예술]

네온사인의 부활
글 입력 2017.11.13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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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간판은 원수였다.


몇 년 전,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둔 앞집이 느닷없이 카페로 바뀌었다. 내 방이 밤새 환하게 빛나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다. 그놈의 간판. 커튼도 못 다는 작은 창문 사이로 어찌나 밝게 비추던지. 주변에서 항의가 들어오자 영업 종료 이후에는 소등을 한다는 약속을 받았다. 그리고 그곳은 일대에서 유일하게 새벽 2시까지 운영하는 ‘심야 카페’가 되었다. 영화 속 대사가 절로 튀어나오는 순간이었다. “어머, 증말 할렐루야다.”

주변 이웃의 눈총을 받았던 탓인지 그 카페는 1년 만에 문을 닫았다. 이제 좀 평화를 되찾나 싶었는데 아뿔싸, 그 자리에 또 다른 술집이 생겨났다. 빛 공해에 더불어 소음까지 각오하며 바짝 긴장했지만, 의외로 그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눈부신 조명도, 소음도 없는 소소한 술집으로 자리를 잡은 그곳은 먼저 있던 카페보다 훨씬 오래 살아남고 있다.

그 술집의 비법은 하나였다. 휘황찬란한 빛을 내뿜는 LED간판을 떼고 작은 네온사인 간판으로 대체한 것. 그 덕에 주민들의 원성이 사라지며 근처 이웃들의 발걸음을 저절로 이끌었다. 밉상이자 인권침해의 원흉이었던 간판의 유행이 바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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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거리와 상점에서 흔히 보이는 네온사인들


최근 몇 년 사이 네온사인을 간판이나 인테리어 소품으로 사용하는 곳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싫증을 유발해 금방 사라지는 보통의 유행과 다르게, 네온은 몇 년째 없어지지도 지겨워지지도 않고 있다. 한 때의 유행을 지나 완전히 자리를 잡은 모양이다. 어느새 네온사인은 감성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대표적인 소재가 되었다. 겨울 못지않게 추운 요즘, 반짝이는 크리스마스 조명을 달기엔 이른 밤거리의 낭만을 담당하고 있다. 

네온이 재조명받기 전의 인식은 지금과 사뭇 달랐다. 야하고 천박한 불빛. 그게 네온사인이었다. 미술 평론가 조나단 존스는 ‘한때 네온은 저속함과 (섹스가 개입된) 추잡함을 상징했지만 지금은 예술적 의미를 지닌다.’고 언급한 바 있다. 1910년 조르주 클로드에 의해 처음 선보인 후 네온사인은 1940~50년대에 전성기를 맞았다. 브로드웨이와 타임 스퀘어의 화려함을 책임지던 네온은 형광등이 그 자리를 대체하며 인기가 시들해졌다. 이후 허름한 술집과 싸구려 모텔을 대표하는 이미지로 전락해 네온의 불빛도 점차 사라져 갔다.
     
하지만 유행은 돌고 돈다. 복고라는 이름으로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나팔바지처럼 네온도 우리의 향수를 자극하며 다시 돌아왔다. 그 일면에는 네온을 꾸준히 예술로서 승화해온 네온 아티스트들의 공이 있다.
 


댄 플래빈(Dan Flav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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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 Flavin, Untitled (to Saskia, Sixtina, and Thordis), 1973
Pink, yellow, green, and blue fluorescent light
244 cm high, width variable

1_1Dan Flavin, Monument 4 for those who have been killed in ambush (to P.K. who reminded me about death), 1966, Red fluorescent light, 244 cm, 183 cm deep.png
Dan Flavin, Monument 4 for those who have been killed in ambush (to P.K. who reminded me about death), 1966
Red fluorescent light, 244 cm, 183 cm deep


댄 플래빈(Dan Flavin)은 1960년대, 네온을 미술관에 처음으로 선보인 미국의 미니멀 아티스트다. ‘빛’을 어떤 것을 비추는 용도 이상의 것을 넘어 표현하고자 했다. 빛과, 그 빛이 물들이는 공간까지 함께 작품 전체로 바라볼 때 비로소 완전한 해석을 할 수 있다.



이반 나바로(Ivan Navar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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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an Navarro, Witness, 2010
White neons, painted wood, mirror, 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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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an Navarro, Wail, 2010
Neon, fiberglass battery, metal rods, one way mirror and electricity
183 x 91 x 123 cm


이반 나바로(Ivan Navarro)는 ‘네온아트의 떠오르는 별’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칠레 출신의 작가다. 2014년에는 한국에서 아시아 최초로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미술학교 시절, 햇빛에 유난히 취약한 알비노에 영감을 받아 빛을 소재로 쓰는데 관심을 갖게 됐다. 이후 독재정권에서 자란 성장과정을 바탕으로 네온을 통해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이정(Jung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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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g Lee, The End,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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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g Lee, Maroon 5 5집 《V》 재킷


이정(Jung Lee)은 가장 잘 알려진 국내 네온 아티스트 중 한 명이다. 마룬파이브(Maroon 5)의 5집 재킷 사진을 함께 작업하며 대중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야외에 네온을 설치한 후 사진 작업을 하는 방식으로 유명하다. 자연 속에 배치된 인공적인 불빛의 대조가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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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온사인이 다시 돌아온 건 단순한 유행의 반복이 아니었다. 작품의 소재로 부단히 이용해온 예술가들 덕분에 우리는 네온이 저속하다는 편견을 버릴 수 있었다. 그렇게 재조명하게 된 네온사인은 기대 이상으로 일상 속에서 감상적인 위안을 주고 있다.

에릭 홉스봄은 재즈를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곳까지 오른 음악”으로 정의한 바 있다. 싸구려 술집에서 서민들이 왁자지껄 춤추며 부흥했던 재즈처럼 네온사인도 시간이 흐르며 다른 대접을 받게 되었다. 이처럼 장르에 대한 인식이 바뀌는 과정을 목격하는 건 언제나 즐겁다. 특히 지금처럼 예술적인 몸짓으로 좋은 방향으로 바뀔 때라면 더더욱. 또 어떤 ‘천박한’ 출생이 아득한 예술의 경지에 올라 전에 없던 대우를 받게 될까. 기대되지 않는가.





(이미지 출처: The Red Light, Pixabay)


[윤단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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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 양지의그녀
    • ‘천박한’ 출생이 아득한 예술의 경지에 올라 전에 없던 대우를 받게 될까 라는 말이 굉장히 인상적이에요! 잘읽었습니다
    • 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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