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영화 < Closer >, the closer, the farther [시각예술]

처음엔 안녕, 낯선 사람. 끝엔 안녕할 수조차 없는, 사람.
글 입력 2017.06.21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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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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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과 끝에 아련하고 쓸쓸하게 데미안 라이스의 'The Blower's Daughter'이 울려퍼진다. 의미는 달라져 있다. 가장 강렬하게 만난 댄과 앨리스. 눈빛이 오가고, 갑자기 차에 놀라 넘어진 그녀를 보러 온 그. "Hello, stranger." 하면 퍼지는 둘의 미소. 아마도 가장 강렬한 첫 만남 첫 문장이 아닐까.  아무 것도 모르고 만난 그 둘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서로를 쳐다보던 시작. 앨리스가 떠나고 추억을 헤매던 댄이 예상치도 못했던, 그가 너무나도 중요시하던 어떤 진실을 알게 된 끝. 1시간 40여분 만에 사랑이 시작되었고 끝났다. 너무나 빨리 깊어졌고, 너무나 쉽게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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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댄과 앨리스, 안나와 래리 네 사람은 각자의 방식으로 싸우고 있었다. 누가 진짜 승자라고는 말할 수가 없는 게 모두 상처뿐인 싸움이었다. 남녀 차이, 캐릭터 간의 차이를 확연하게 드러내고 싶었던 건지 영화에서는 그들을 하나씩 분류를 해준다. 댄은 부드럽고 복잡하며 실패한 작가이자 부고란 기자. 래리는 댄에 비해 좀 더 거칠고 단순한 피부과 의사. 앨리스는 소녀같고 자유로운 스트립 댄서, 안나는 보다 성숙하고 여린 사진작가.

  관점 포인트는 어느 누구 하나 떳떳한 사람이 아니라는 점. 모두가 한 가지 이상의 딜레마에 빠져있다. 댄은 안나는 앨리스와 래리, 각각 애인이 있으면서도 서로에게 빠져들었다. 래리는 출장에서 다른 여자와 자고 왔고, 안나의 외도를 알게 된 후 앨리스와도 잔다.  안나는 래리에게 이혼 서명을 받는 조건으로 마지막으로 래리와 잔다. 댄은 안나와 래리가 잔 것을 알고 충격을 받고, 그 모습에 안나는 래리에게 돌아간다. 안나가 떠나가 버린 후 댄은 앨리스에게도 래리와 자고 말았다는 진실을 듣고 그녀와 함께하려 하지만 이제는 앨리스가 댄을 사랑하지 않아 떠나고 만다. 축약해 놓고 보니 이거 참 막장이다. 물론 막장 그 이상의 무언가는 분명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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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와 래리(상)/안나와 댄(하)


  댄과 래리에게는 분명 섹스가 사랑의 큰 지표다. 둘은 희한하게도 입을 맞춘 것처럼 꼬치꼬치 진실을 캐묻는다. 내가 아닌 그 사람과 잤는지, 좋았는지. 절정을 느끼면 그게 꼭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됐다는 증거가 되는 것만 같다. 혹은 그 날 것 그대로의 진실이란 녀석을 사랑했는지도 모른다. 물론 중요한 문제고, 덮고 싶어도 사실은 궁금한 문제인 것도 안다. 하지만 그런 자세한 설명이 본인들이 절망을 더 자초하는 것일 수도 있는데 대체 왜일까? 차라리 그 모든 걸 알지 않으면 찜찜함에 어차피 더 괴로워했을 이들이다. 속속들이 진실을 알수록 좀 더 구체적으로 절망스럽고 분노하게 될 길이더라도 그들은 일관되고 용기있게 그 길을 선택한다. 그 진실을 숨기고 계속 그들과 함께이고 싶었던 안나와 앨리스는 래리의 윽박지르는 취조나 댄의 끊임없는 추궁에 결국 말문을 열고 만다. 그러나 그들은 몰랐겠지. 그녀들에게 차가운 진실을 말하게 하는 건 끝을 의미한다는 걸. 혼자 죄책감으로 병들어 갈 지언정 그를 절망스럽게 하고 그의 믿음을 산산조각 내고 싶지는 않았던 사람들이란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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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와 댄(상)/앨리스와 래리(하)


   안나와 앨리스는 이상하게도 래리와 댄만큼 섹스에 중대한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는다. 따지고 보면 래리도 안나를 두고 출장을 갔다 외도를 저질렀고, 댄도 앨리스를 만나는 동안 안나와 자주 서로의 집에서 몸을 섞었다. 그러나 그녀들은 댄과 래리만큼 다른 사람과 잔 것에 대해 그렇게까지 분노하지 않았다. 앨리스는 분노는 했지만 화살이 자신에게로 쏠렸다. 자신에게 질리게 만든게 아니냐며 오히려 매달리며 한번만 안아달라고도 한다.

  안나 역시 마찬가지다. 설령 그렇게 애정없던 사이라도 방금전까지 사랑을 노래하던 남편이 다른 여자와 자버렸다고 말 하는데, 그런 얘기를 듣고도 괜찮다고도 한다. 자신이 외도를 해서도 그렇겠지만 생각보다 그리 놀라지도 않아서 래리를 놀라게 만들었다. 그녀들에게 사랑과 섹스는 분명히 별개의 영역이다. 안나에겐 사랑하는 댄에게 가기 위해 래리와 이혼도장을 받는 마지막 조건, 진심 없는 한번의 섹스는 온전히 수단으로 가능하다. 앨리스에겐 댄과 헤어진 사이 친절하게 옆에 있던 래리와도 자봤지만 앨리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댄이 더 좋단다. 래리와의 섹스가 좋았지만, 그를 사랑하지는 않는다. 이런 그녀의 마음을 아무리 표현해보아도 그가 믿지 않을 걸 알아서, 얘기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댄과 래리는 분명히 내가 사랑하는 그녀에게 다른 남자의 체취가 뒤덮인 상상에 잠 못 이루고 괴로워할 뿐이었으니. 머리가 아는 것과 감각이 아는 것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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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이란 건 눈에 보이지도 만질 수도 없는 것이니 이런 불확실함에 견디지 못하고 뭐라도 부여잡고 싶은 심정이 이상하지 않다. 그렇다면 이 가까워지지 않는 골은 대체 어떻게 생긴 것일까. 역설적이게도 그(댄과 래리)와 그녀(안나와 앨리스)가 사랑하는 사람과 가까워졌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그와 가까워진 그녀의 입장에서 그가 보기에 그녀는 사랑과 섹스를 별개로 보지 않을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물론 다른 이유도 있을 수는 있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를 일면 소유욕으로 서로 남자들끼리 자존심 대결을 하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는 일. 하지만 댄과 래리에겐 육체적으로 하나가 되는 순간이 어렴풋한 사랑이란 녀석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것인 모양이다. 드라마틱하게 보자면 섹스는 가장 육체적으로도 가깝고, 정신적으로도 거리가 가까운 강렬한 순간이다. 실오라기 하나 없는 몸으로 욕망과 사랑, 혼돈과 안정감 사이에 오롯이 둘만 있는 순간이라서.  입을 맞추고, 남들은 잘 알지 못할 표정과 습관과 온 몸의 움직임을 알 수 있는 그 흔치 않은 순간. 그들은 그녀가 그를 사랑하지 않고는 이 순간이 분명 불가능한 것이라고 결론내렸으리라. 시간이 지나가며 알게 된 많은 습관과 취향, 정보로 그녀를 많이 알게 되었다고 착각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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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댄과 래리, 안나와 앨리스 각각 두 명의 남녀의 대결같기도 한 영화이다. 댄과 래리 중 래리를 승자같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댄은 안나도 잃고 앨리스도 잃고. 래리의 모든 덫에 현혹되어 결국 혼자 남아있다. 래리는 대결 중에 승자가 맞다. 그는 무서운 사람이다. 댄과 안나, 앨리스 모두를 파악한 사람이다. 안나에게 마지막 조건을 내걸어 댄과 안나도 끝내게 만들고 갈 곳 잃은 안나는 자신의 품으로 기어이 데려오고 만다. 뉘앙스로 보면 래리가 보는 안나에겐 길티 플레저가 있는 듯하다. 죄책감에 괴로워하면서도 좋아하는 안나의 모습에 맞춰준 부분도 있는 것이다. 자신 때문에 안나와 헤어져 멘붕상태로 찾아온 댄에게는 병주고 약도 줄 줄 안다. 의사선생님처럼 안나는 이제 포기하고 친절하게도 앨리스에게 돌아가라는 처방전을 준다. '아 맞다, 근데 나 앨리스랑 잤어, 밤새.' 라는 크나큰 폭탄선언도 하나 심어주고. 변덕스런 앨리스와 하룻밤을 보내게 될 정도면 어쨌건 그녀의 마음에 들만큼 친절한 포인트를 찾은 모양이다.  그러나 그는 승자이긴 하지만 아마도 넷 중 가장 불행하다.  그는 모두와 가까워졌을지언정 마음은 누구보다도 멀어졌을 사람이다. 그의 상처는 겉으로 터지지 못하고 보이지 않는 속에 숨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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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나와 앨리스 사이의 대결이라면 물론 앨리스가 이겼다. 안나는 이미 앨리스에게 초반부터 밀렸고, 마지막 순간에도 밀렸다. 앨리스는 처음 댄이 앨리스를 코 앞에 두고 안나에게 빠져들었을 때도 화를 내지 않았다. 사진이나 찍으라고, 사진가인 그녀에게 명령하면서 그 둘의 싸움은 이미 일단락된 것이다. 안나는 잃을 것이 많고, 떠날 곳이 없으며, 죄책감에 빠지면 두려워한다. 앨리스는 그 반대다. 앨리스는 래리와도 비슷하고, 래리보다도 심한 구석이 있다. 감정적인 면에서는 참 솔직한 것도 같은데 막상 자신을 드러내는 일에서는 누구보다도 저항적이며 소극적이다.

 그녀가 댄과 헤어지고 스트립 클럽으로 돌아왔을 때 래리는 그녀를 지명해서 스트립쇼를 보며 본명을 물어봤다. 그 스트립 클럽도 참 신기한 룰을 가지고 있고 그 안의 앨리스도 마찬가지다. 스트립쇼를 하는 사람은 고객이 원하는 모든 몸 구석구석을 보여줄 수 있지만 절대 만지게 하진 않는다. 앨리스 역시 이미 모두에게 자신을 앨리스라고 말하고 앨리스로 살고 나서 래리의 질문에 제인 존스라고 답한다. 놀랍게도 그것이 그녀의 본명이지만 아무도 그 사실을 믿지도 않는다. 그녀는 앨리스로서의 자신을 모두 보여주고 제인 존스로의 자신은 단 한 터럭도 보여주지 않았다. 그 앨리스란 이름도 댄과 함께 온 어느 곳에 새겨진 이름이었는데 그녀와 장장 4-5년의 시간을 보낸 후에야 어느 날 댄은 그녀의 이름이 진짜가 아닐 거란 느낌을 받게 된다. 댄은 보기만 하고 관찰을 하지 않았고, 앨리스는 본 것을 자신의 것처럼 포장할 줄 아는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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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앨리스는 사진이 사기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사진기가 찍은 사람은 슬픔도 고통도 모두 아름답고 멋진 것으로 승화시켜버리는 '개소리'이자 예술이란 이름으로 사람들이 즐기는 사기극이라고. 그러나 그녀는 역시 알고 있을까. 그런 그녀의 인생도 사기가 될 수 있다는 걸. 그녀가 그렇게 만들어놓은 상태대로 사람들은 사진기가 사진을 찍듯 그녀를 눈에 담고 기억할 것이다. 사진은 적어도 저게 예술이란 형태로 다듬어진 모습이며 슬픔조차 아름답게 찍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지만, 그녀가 만들어놓은 앨리스라는 사진기는 그걸 깨달아버린 사람들이 무방비한 혼란과 낯선 배신감에 사로잡힐 거라는 걸. 그녀가 본명을 아무리 외쳐도 그녀가 소개한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겐, 그녀가 어떤 면에선 진심이었다고 해도 그녀의 모든 것이 거짓이라고, 개소리이자, 사기꾼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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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를 비난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그것은 그녀의 삶의 방식이다. 누구나 한번쯤은 아예 다른 사람으로, 다른 곳에서 정말 새롭게 시작하고 싶고, 그녀는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언제든지 그녀는 떠날 수 있다. 누군가와 헤어지고 나서 영국에 왔다는 그녀는 다시 영국에서 사랑을 끝내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녀의 감정은 상처를 입었을지언정 그녀의 본명으로 대표되는 정체성이란 보루는 무너지지 않았다. 그 보루는 너무나 빈틈이 없어서 결국은 아무도 그녀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혹여 기억한다면 흐릿하게 신비롭게 자신을 앨리스라고 부르던 어떤 여자로.

  그녀는 가까워질수록 뒤늦게 얼마나 멀리 있는 사람인지 사람을 허탈하게 깨닫게 할 뿐이다. 그게 잘못된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어쩌면 많은 이들에게 받은 상처가 그녀를 아예 꽁꽁 아무도 알 수 없게 허들을 만들어 둔 걸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로 빈틈이 없고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들어보았기 때문에 그녀를 비난할 수 없다. 4년을 만나고도 그녀의 진짜 이름과 여권 등 신뢰를 얻지 못한 건 댄일지도 모른다. 가끔은 그녀도 흔들렸을 수도 있는데. 비밀이란 건 얘기하고 싶게끔 간질간질 입안에 돌아다닐 때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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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나는 그녀를 탓하지 않겠다.  그녀를 털어놓으려 할 때마다 아마도 매번 멈칫하게 했던 것은 그녀가 사랑했던 댄이었을 것이다. 확실하게 래리와 자고 말았는지 묻고야 말았던 댄. 너에게서 꼭 듣고야만 말아야겠다고. 괜찮지도 않으면서 괜찮은 척. 방을 벗어났다가 그제서야 다시 그녀에게 장미 꽃 한 송이 정도 수년간 다져진 학습된 연애의 산물을 들고 사랑한다며 돌아왔을 때. 그래, 그 때 나는 앨리스를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다른 여자 사이에서 그가 혼란스러워할 때도 먼저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을 하지 않던 그녀가  왜 그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지. 왜 사랑이란 녀석이 그렇게 변덕스럽게 시작되고 끝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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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의 시작은 처음 만난 댄과 앨리스의 눈이 마주치고 길을 걸어왔고, 마지막은 앨리스가 혼자 아무도 마주치지 않고 길을 걷는다. 시작엔 수많은 주변인이 보이지 않게 흐릿하지만 끝엔 선명한 주변인 속에 한 사람으로 앨리스가 덩그라니 있다. 그녀를 모르는 사람들이 그녀를 보고 눈을 흘깃거리기도 한다. 4년이 지났다. 모든 걸 다 버릴 수 있을 것처럼 누군가를 사랑하기에 충분한 시간이겠지만 사람도, 사랑도, 우리가 서로를 안다고 생각하는 그 믿음도 그저 세상의 수많은 시간의 먼지같다고 얘기해주는 것만 같다. 그래서 뭘 알았냐고. 밑바닥을 보고, 정말 사랑스러워도 해보고, 그리고 그 결과 남아 있는 것은 무엇인지. 어느 한 사람이라도 정말 꿰뚫어볼 수 있었냐고. 사실은 여전히 모르는 것 투성이에 결국 어슷하게 누구보다도 멀어지진 않았느냐고. 음악은 계속 I can't take my eyes off you가 쓸쓸히 흘러나온다. 여러번, 매번 다르게. 첫눈에 당신에게 눈을 뗄 수는 없었지만 마음은 막상 한번도 본 적이 없었던 것 아니냐고. 처음엔 안녕, 낯선 사람하고 만났던 사람이 끝은 안녕조차 편하게 할 수 없는, 심리적 거리가 낯선 사람이 되어가는 것. 그 과정을 반복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질문이 흩어지고 노래는 울린다.


And so it is
The shorter story
No love, no glory
No hero in her sky

And so it is
Just like you said it should be 
We'll both forget the breeze
Most of the time

-Damien Rice < The Blower's Daughter > 중






* 영화는 의외로 유쾌한 구석도 많다. 댄은 필력을 이상한데 써서 래리에게 여자인척 익명 채팅방에 들어와 즐거운 19금 대화를 나눈다. 19금대화에 데코레이션으로 얹어진 경건한 클래식. 안나때문에 고통받는 두 남자가 서로를 연민하는지, 래리는 댄에게 울지 말라고 하고 댄은 훌쩍이며 미안하다고 하는 장면.

** 영화를 보다 든 이질감은 한국 매체에서는 남자가 사랑없이도 섹스를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경우를 본 반면(물론 일반화는 아니다) 영화에서는 오히려 남자가 사랑없이 섹스를 했을리 없어!의 입장이고 여자가 사랑과 섹스를 별개로 나눌 수 있다는 입장을 대변한다는 점.더 연연해하는 모습이 반대로 펼쳐지고 있어 신기하다. 막장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나.


[장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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