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키요에 : 浮世繪(부세회) - 서민의 속세를 담다. [시각예술]

글 입력 2017.04.30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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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나가와의 파도 / 가츠시카 호쿠사이







우키요에
:
ウキヨエ
浮世繪
부세회






우키요에(浮世繪, 일본어: 浮世絵、うきよえ)는,  일본의 17세기에서 20세기 초, 에도 시대에 성립된, 당대의 사람들의 일상 생활이나 풍경, 풍물 등을 그려낸 풍속화의 형태를 말한다. 현재는 일반적으로 '우키요에'라고 하면 여러 가지 색상으로 찍힌 목판화인 니시키에(錦絵)를 말하는 경우가 많으나 육필화 등도 이 범주에 들어간다.

'우키요'(浮世)라는 말 자체를 풀이하면 '떠다니는 세상의 그림', 즉 현세의 이모저모를 그려낸 그림이라는 뜻이며, 지금의 도쿄에 해당하는 에도, 오사카, 교토 등지의 마을의 중심의 이곳저곳에 퍼져있던 현대풍의 새로운 문화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이 말의 유래는, 똑같은 발음의 다른 말인 '우키요'(憂き世) - 즉 '근심어린 세상'이라는 말이며, 불교의 극락정토와 대비되는 생노병사가 전개되는, 꺼리고 멀리해야 할 근심스럽고 걱정스러운 세상이라는 개념이다.

우키요에는 17세기의 후반에 들어와, 히시카와 모로노부의 단색 그림 작품들을 필두로 많은 인기를 끌었다. 초창기에는 인도 묵만이 사용되었으며, 나중에 붓으로 색상을 덧입힌 형태였으나 18세기에 스즈키 하루노부가 비단에 여러색상을 사용한 니시키에를 발명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발전하게 된다.

우키요에는 대량생산이 가능했던 이유로 유복하지 않아 원화를 고가에 구입할 수 없었던 도회지의 서민들에게 많이 받아들여졌다. 우키요에는 처음에는 마을의 일상 생활, 특히 유곽의 어여쁜 창부들, 스모 역사들과 유명한 가부키 배우들의 초상화나 특별한 예술 공연 등의 모습이나 특정한 장면을 주제로 많이 담았으며, 이후에 풍경화도 또한 널리 제작되게 되었다. 정치적인 주제 혹은 권력층의 모습은 그다지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섹스 또한 공공연히 다루는 주제는 아니었으나, 적지 않은 우키요에 작가들은 따로 춘화(春画 슌가[*])를 내기도 하여, 때로는 이때문에 벌을 받는 경우도 있었다.

우키요에 자체는 메이지 시대에 들어와 사진 · 기계인쇄 등의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쇠퇴하였으나, 당시 유럽인들에게 주목을 받아, 특히 프랑스의 인상파 작가들에게 영향을 주기도 하였다. 우키요에의 기법은, 여러 분야에 전해 내려졌으며, 일본의 만화 및 애니메이션에 영감을 주었다.


(출처 : 위키백과)





1년 전, 반 고흐의 전시를 보러 갔었을 때 이었다. 반 고흐의 인생이 담긴 전시회 속을 차례로 구경하면서, 내 마음속에 깊게 자리잡은 유일한 동양풍이었던 그림이 있었다. 그렇다. 그것이 바로 나와 '우키요에'의 강렬하고도 인상 깊었던 첫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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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풍, 오이란, 게이사이 에이센의 모작(Japonaiserie, Oiran)
▲ 일본풍, 소나기 내리는 다리, 히로시게의 목판화 모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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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풍, 꽃이 핀 자두나무, 히로시게 목판화의 모작 
▲ 탕기 할아버지의 초상화(Portrait of Pere Tanguy)


파스텔톤의 유럽식 작품들에 마음이 녹아내려 가고 있을 무렵에 마주한 고흐의 우키요에는, 서양 사람의 입장에서 본 동양의 화풍이 꽤나 잘 녹아들어 있어서 놀라운 느낌이었다. 그는 장르를 가리지 않는 진정한 예술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 또한 우키요에 특유의 화풍에 집중해보았다. 평소에도 일본 문화를 좋아하는 나는, 반 고흐를 위해 만들어진 그 전시회에서, 황당하게도 '우키요에'를 위한 전시 파트 앞 의자에 앉아,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샤미센 연주곡을 들으며, 그렇게 30분 정도를 멍하니 그림만 바라보며 이것저것을 생각했다.

그 특유의 강렬한 색감과 그림체, 우리나라 전통 화풍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모습에 매료되어 버린 것이다.

집에 와서 닥치는 대로 알아본 우키요에는 일본 역사에서도 꽤나 비중있는 문화 이야기에 속하는 편이었다. 17세기에 처음으로 시작되었다고 전해지는 우키요에는 히시카와 모로노부를 필두로 그 명성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원래는 일본의 역사에서 풍속화로 등장한 우키요에는, 대량생산이 가능하다는 이유로 돈이 없었던 서민들에게 더 친숙하게 다가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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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대 오타니 오니지(1794) / 토슈샤이 샤라쿠


메이레키 대화재 (1657년)에서 호레키 시대(1751년 - 1763년)까지를 초기
니시키에(錦絵)가 탄생을 한 1765년 (메이와 2년)부터 1806년 (분카 3년) 경까지의 시기를 중기
1807년 (분카(文化) 4년)부터 1858년 (안세이(安政) 5년)까지의 시기를 후기
에도 말기인 1859년 (안세이(安政) 6년)에서 1912년 (메이지 45년)까지를 말기

로 분류하며 각 시대마다 그림의 특징이 조금 바뀌거나 그리고자 하는 대상이 조금씩 달라졌다. 초기의 도리이 파는 빨간 색채를 많이 사용 하며 가부키 공연과도 꽤 연관이 깊었고, 중기에는 그림 달력이라던가 섬세하고 아름다운 미인화가 유행이었고, 후기에는 도요쿠니에 의해 인물화, 구니요시에 의해 무사, 히로시게에 의해 명승지가 각각 두각을 드러냈으며, 말기에는 서양 사람들에 의해 요코하마에가 등장하게 되지만, 그 이후로는  사진 기술 등에 의해 그림이 점차 힘을 잃게 되고 쓰키오카 요시토시를 마지막으로 역사 속에서 점차 흐려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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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인도 / 기타가와 우타마로


우키요에는 기본적으로 판화이다. 한 번 만들어내면 몇 장이든 같은 그림을 재생산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림체는 흐릿하지 않고 확실한 느낌이었고, 대담한 구도, 그림자의 표현이 없는 것이 표현상의 특징이다. 또한 원근법도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낚시의 명인'(釣の名人)처럼, 멀리 있는 풍경을 거꾸로 크게 그려 일부러 원근법을 깬 형태의 그림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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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카이도 53역참 중 16경 '간바라' / 안도 히로시게


우키요에는 일본의 대중문화의 일부이며, 현대의 미술전시처럼 액자에 넣어서 멀리서 감상하는 형태가 아닌, 손에 들고 살펴보며 즐기는 형태였다. 개중에는 그림을 오려서 가지고 노는 형태의 그림도 있다. 주로 조닌들이 우키요에의 유통을 책임졌는데, 점차 상업의 규모가 커지면서 우키요에를 향유하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났다. 그러나 에도시대의 막부는 우키요에가 풍기문란 유발, 사치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우키요에를 규제하기 시작했다. 상인이나 기술자들을 압박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로 인해 법을 어겨 재산을 몰수당한 상인도 있었고, 화가들은 한 작품당 8가지 색만 쓸 수 있다는 어이없는 조항에 발목이 잡혀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키요에는 서민들이 가장 사랑했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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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 요시하라의 풍경


'떠다니는 세상의 그림'이라는 그 말의 뜻 그대로 그 당시 일본 사람들이 속세에서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모든 것을 어떠한 가공을 거치지 않은 날것의 상태로 그림에 담아 풀어냈다는 것은 굉장히 흥미롭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그저 길다란 모양을 하고 있는 섬나라의 화풍이 서양에 전해져서 ジャポニズム(Japonism)이라는 새로운 문화의 바람을 일으키고 역사 속에서 큰 울림을 일으켰다는 것은, 같은 동양인으로서 굉장히 놀랍기도하고  부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리 것'에 대한 의식을 고취시키고자 하는 도전 정신을 일깨우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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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즈마 다리 밑의 뱃놀이


단순히 사람이 담긴 그림이 아니라, 그 시대의 사람들이 어떻게 지냈고, 어떤 문화를 향유했으며, 어떤 취미를 갖고, 어떤 시선을 갖고 지냈는지에 대한 모든 것이 담겨있는 우키요에. 단순히 활자에 풀어낸 것만이 역사를 보존시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하기에 좋은 예가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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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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