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영화 "퀴즈쇼"가 우리에게 던지는 퀴즈 [문화 전반]

매체 문화의 매트릭스
글 입력 2017.02.22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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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느 누구도 한가지는 보지 못했다."

1994년작 "퀴즈쇼"

 마치 오늘날 오디션 프로그램이 넘쳐나는 우리나라처럼 당시 미국에서는 TV 퀴즈쇼 프로그램이 한창 유행이었다. 모든 국민들이 쇼가 시작되는 시간에 숨을 죽이고 TV를 바라보고 방송사들은 시청률이 오르는 것에 희열을 느끼며 쇼의 주인공은 사람들의 시선을 즐긴다. 영화 "퀴즈쇼"는 매체 문화를 만드는 이들과 그것을 향유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또한 문화를 소비하는 사람으로서 어떤 태도를 가져야하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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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퀴즈쇼”의 첫 장면은 당시의 최신 차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자동차 판매원은 하버드 법대를 나온 의회조사원 구드윈에게 차 자랑을 늘어놓는다. 탑승자에게 나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차라며 라디오 소리에 다양한 기능들 하며 무엇 하나 빠지는 것이 없다고 자랑을 한다. 그런 차를 보며 구드윈은 장치가 너무 많아 사람이 차를 모는 것이 아니라 차가 사람을 모는 것 같다고 말한다. TV도 마찬가지로 여러 기능이 더해지며 사람들에게 마약같이 중독성 있는 기계로 퍼지기 시작한다. TV는 최고의 발명품으로 그리고 미래라고 불리며 집안에서 가장 편안한 장소인 안방에도 자리를 차지한다. 항상 새로운 것을 보여주는 TV 프로그램은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작은 화면에 고정시킨다. 인간이 만든 TV가 인간을 매혹시켜버린 것이다. TV가 등장하며 방송, 언론은 경쟁적으로 시청자들을 모으기 위해 각종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더 유혹적인 연출, 조작을 하기 시작한다. 기계가 발전하면서 있는 그대로가 아닌 가공된 모습이 사람들에게 전달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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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에서 퀴즈쇼 “Twenty One"의 방송사 NBC를 보여주는 앵글은 건물을 끝이 보이지 않게 설정되어 있다. 아래에서 위로 비추어 엄청난 고층 건물을 화면 가득 메우는 카메라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건물을 우러르게 그리고 압도당하게 만든다. 이는 당시 퀴즈쇼 ”Twenty One"이 있었던 위치를, 그리고 사람들이 그 프로를 바라보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리라. 또한 이 건물이 나타날 때마다 과연 TV는 우리 삶에서 얼마만큼의 위상을 차지하는 건지를 고민해보게 된다. 실제로 “Twenty One"의 인기는 대단해서 쇼가 시작할 때면 길가에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이 퀴즈쇼는 정말 말 그대로 ”쇼“의 모습을 보여준다.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 다시 말하면 자신들의 수익을 올리기 위해 오로지 시청자의 성향에 따라 프로그램이 짜인다. 아메리칸 드림을 원할 땐 그것에 맞는 사람을 이용하고 시청률이 저조해지면 효용가치가 떨어졌다며 가차 없이 내버린다. TV 속에 사람은 없다. 오직 쇼를 구성하는 하나의 흥행요소만이 있을 뿐이다. 때문에 효용가치를 잃은 요소는 재빠르게 다른 것으로 대체된다. 짜인 대본만을 따르고 그 틀에서 벗어나면 도태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1950년대의 프로그램이지만 이 영화를 보다보면 오늘날의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이 오버랩된다.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더 자극적으로 힘없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악마의 편집을 자행하고 스타를 만들고 끊임없이 긴장감이 맴도는 경쟁구도를 만드는 오디션 프로그램말이다. TV 프로그램이 보여주는 것들 중에 과연 얼마만큼이 진실이고 얼마만큼이 제작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것일까. 영화 ”퀴즈쇼“는 관객에게 명확한 답을 알 수 없지만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되는 퀴즈들을 던진다. 돈이 지배하는 방송사에서 정직한 것과 부정직한 것은 더 이상 따질 가치가 없다. TV 뒤에 있는 거대한 기업은 그저 사람들을 이용해 수익을 가장 많이 낼 수 있는 방향으로만 나아간다. 영화 ”퀴즈쇼“를 보며 ”9시의 거짓말“이라는 책이 생각났다. ‘나는 진실을 객관적으로 보도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품었던 한 기자가 쓴 이 책은 방송과 언론의 객관성, 진실, 자유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한다. 주로 뉴스와 보도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9시의 독재자의 모습, 대중을 이용하는 언론, 미디어 효과에 대한 것들은 대중들에게 언론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잘 보여준다. 또한 우리는 얼마나 당연하게 의심 없이 TV가 전달하는 이미지를 사실로 받아들이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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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퀴즈쇼는 단순히 TV, 방송의 구조만이 아니라 그 속의 다양한 개인들의 모습도 조명한다. 퀴즈쇼에서 버려진 스템펠은 인디언들에게서 맨하탄을 24달러에 산 역사를 얘기하며 다 속은 것이라 중얼거린다. 그러면서도 그 역시 프로그램의 거짓된 구조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약속된 쇼 프로그램만을 믿으며 부정한 것에 동참한다. 거대한 매체 구조와 욕망 속에서 개인이 저항하기란 얼마나 힘든지 보여주는 것이다. 반면 찰스 밴도런의 아버지는 퀴즈쇼를 보며 “거액이 걸렸으니 인생의 의미 같은 거나 물었으면 좋겠구나.”라고 말한다. 어떻게 보면 중요하지도 않은, 백과사전 속의 잡다한 문제들을 다루는 퀴즈쇼이지만 사람들은 돈과 인기를 얻기 위해 아등바등한다. 과연 그 프로를 보면서 찰스 밴도런의 아버지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몇이나 있을까. 아버지와 다르게 찰스 밴도런은 처음에는 진실을 중요시하다가 결국 방송사의 꼬임에 넘어가 부정한 쇼의 진행에 동참한다. 영화에서 찰스 밴도런은 계단을 내려오며 진실과 부정함 사이에서 고민한다. 그 모습을 보며 내가 그런 제의를 받았다면 과연 정직함을 위해 거절할 수 있었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영화 “퀴즈쇼”는 우리 사회에 진실이 얼마만큼의 가치가 있는지에 대해서도 퀴즈를 던진다. 진실을 은폐하는 부정한 퀴즈쇼의 실상을 파헤치려는 구드윈은 ‘미는 진실, 진실은 미’라 말하며 방송사의 부도덕함을 폭로하려고 한다. 그러나 결국 TV, 방송사가 아닌 개인에게 피해가 가버린다. 거대하고 체계적인 방송 구조 속에서 모든 책임이 개인에게 넘어간 것이다. 진실을 밝혔어도 방송사에는 타격도 없고 사람들은 여전히 프로그램을 즐기는 모습을 보며 씁쓸함을 느꼈다. 진실이 지속되는 시간도 TV에서 한 사람의 이미지를 실추시키는데 걸리는 시간도 단 몇 초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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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퀴즈쇼”는 끊임없이 쇼에서의 진실의 가치와 오락물에 속느냐 마느냐를 물어보는 영화이다. 퀴즈쇼가 가진 의미는 단순히 오락물이고 사람들의 유흥을 위한 쇼에 그치는 것일까? 이 영화는 사람들이 과연 TV 매체 저변의 진실을 알고 싶어 하는지 의문을 갖게 한다. 쇼는 사람들을 현혹시키기 위한 것이고 대중들의 믿음을 근간으로 TV 프로그램은 발전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하게 된다. 그러나 보다 주체적이고 똑똑하게 문화를 소비하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이 모든 것이 누구를 위한 스캔들이고 쇼이고 거짓인지에 대해 짚어나가야 한다. 영화에서 구드윈은 "TV"를 법정에 세워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과연 이때 법정에 서는 것은 TV 프로그램을 만든 방송사일까 출연자일까 아니면 시청자일까. 영화 “퀴즈쇼”는 런닝 타임 내내 관객에게 여러 시사점을 가지고 퀴즈를 던진다. 이렇다할 답이 딱 주어지지는 않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프로그램과 시청자 간의 권력 균형일 것이다. 그리고 균형을 위해서는 프로그램의 진실성에 대해서 시청자들이 계속해서 던지는 비판적 시선이 필요하다. 영화 “퀴즈쇼”는 진실을 밝히는 개인만이 손해를 입는 매트릭스를 보여주고 이런 구조에 대해 공론화시킨다. 이런 사회에서는 모두가 암묵적으로 부정에 동의하고 흥미를 위해 끊임없는 은폐를 지속한다. 이 매트릭스의 구조를 이해하고 진실의 미를 살리는 시청자가 있을 때 비로소 부정함이 가득한 방송 구조를 깰 수 있을 것이다. 기계를 만들고 작동시키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주체 의식을 가지고 올바른 방향으로 가려는 움직임이 있을 때 제2의, 3의 퀴즈쇼가 나오는 것을 막을 수 있으리라.


[김다회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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