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고릴라의 pumping.

과학하는 마음-숲의 심연편
글 입력 2017.01.13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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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하는 마음[숲의 심연편]



‘Adam's Language.’ 

바벨탑 신화에 등장하는 아담의 언어는 최초의 인류의 것으로 말에 무게가 실려 있는 언어다. 예를 들면 “사랑해.” 라 말할 때 사랑의 양이 단어에 실리는, 대화 시 오해의 여지를 주지 않는 언어다. 그리고 인류가 조화를 이루고, 서로를 사랑하는데 가장 필요한 언어이기도 하다. 하지만 신에게 다가가려 했던 인간들의 어리석은 행동의 벌로 ‘아담의 언어’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고, 이 흥미로운 신화는 내가 현대사회 사회 이슈들을 해결할 수 있는 요소로서 종종 언급하는 소재다. 부대끼고 살아가는 데에 서로 이해하려는 노력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그리고 이해하는 일에 언어는 가장 큰 주축이 된다. 시간이 지나 사회는 더더욱 복잡해지고 그에 맞춰 언어 역시 끝없이 발전 해 왔다. 하지만. 나는 어쩌면 이 언어 발전이 지나쳐 오히려 조화를 방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달리 말해 우리는 너무 많은 말을 하고 있다고 느낀다. 이런 면에서 >과학하는 마음>은 나와 나는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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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부르주아의 은밀한 매력> 中


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국적도 다르고 지향하는 바도 다르다. 자폐아 자식을 위해 유인원 생체 실험을 하려 하는 사람, 연구센터를 에듀테인먼트 사업과 연계하려는 사람, 자식을 잃은 후로 그 곳 보노보들을 끔찍하게 아끼는 연구원 등. 유인원의 본성에서 시작한 간단한 이야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발전해 인간의 존재와 종족 차별 이야기까지 확장된다. 이 과정에서 무대를 가득 매운 등장인물들은 끊임없이 말을 한다. 심지어 갑작스레 두세 팀으로 나뉘어 다른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탓에 관객들은 한쪽의 이야기만을 선택해 듣거나 이도저도 선택하지 못한 채 그저 대화를 지켜보는 입장에 놓인다. 마치 루이스 부뉴엘의 <부르주아의 은밀한 매력>장면 중 하나인, 장관의 말에 맞춰 시끄러운 소음이 겹쳐지는 장면이 떠올랐다. 이 연극의 장면들 역시 한 사람의 의견을 굳이 선택 해 들을 필요 없이 다양한 사람, 다양한 관점이 있음을 느끼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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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오한 주제와 다양한 의견들에 치여 관객들은 흑백논리에 빠질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공감하는 것이야. 뭘 표현하려는 것보다도 그 상황에 대해 공감하는 것.” “고릴라의 pumping은 위협이라기보다 싸움을 피하려는 행동이지.”라는 대사처럼 극에서 던져주는 질문들에 굳이 답 할 필요 없이 이렇게 다양한 의견들이 있구나. 다양한 관점들이 있구나. 전체적인 상황에 ‘공감’을 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앞서 말한 공감에 대한 이야기는 막바지에 다시 한 번 강조된다. 연극 마무리 주축에는 마음에 묵직한 짐을 품은 여자 3명이 있다. 사물함에 숨어있던 북한 여자 은혜가 걸어 나오는 것을 목격한 기쁨과 인주. 갖은 오해가 생길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해명하기엔 너무 많은 문제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렇게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은혜는 어떤 말도 꺼내지 않은 채 가슴을 두드리며 고릴라의 pumping을 따라한다. 또다시 인주와 기쁨역시 번갈아 가며 pumping하고 세 여자는 서로를 마주보고 힘차게 가슴을 두드리며 연극은 끝이 난다. 언어도 가치관도 다른 세 명의 사람 사이에서 백 마디 말보다 더욱 큰 공감이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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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많은 사회. 빠른 사회. 활달한 사회. 자기 피력이 의무적인 사회. 주제가 던져지면 답을 해야만 하는 사회. 언어가 많은 사회. 말이 많은 사회. 

말이 많은 만큼 듣는 사람은 적어졌다. 듣질 않으니 공감을 할 수 없고, 가치관과 언어의 종류는 늘어만 가는데 우리의 공감능력은 점점 약해지고 있다. 히라타 오리자 작가는 사회의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아프리카 콩고의 생명공학 연구소에 빗대어 보여주고 ‘말’이 아닌 ‘공감’의 필요성을 강조한 건 아닐까? 추측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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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하는마음- 숲의심연 편

2016. 12. 21(수) ~ 2017. 1. 8(일) (1월1일 공연 없음)
월~목 오후 7시 30분 / 금~일 오후 4시
서강대학교 메리홀 소극장
일반 2만5천원 , 학생 2만원 
이윤재, 이지현, 이종무, 이화룡, 윤현길, 이강욱, 전수지, 김현숙,강희제
제12언어연극스튜디오
02) 744-1512


[김경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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