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영화 < 라라랜드 >, 아름답고 찬란했던 남보랏빛 소나기 [시각예술]

글 입력 2016.12.24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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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마음은 모른다. 사실인가? 요즘은 물 속도, 땅 속도 모르겠고, 물론 한 길 사람 속도 모르겠다. 잔잔하던 물이 말라비틀어질지 쓰나미처럼 처얼썩 파도로 변할지, 잠잠하던 곳에서 꿈틀꿈틀 지반이 움직여 모든 것을 뒤흔들어 버릴지 모르겠다. 애당초 사람 속이 누가 하나라고 했는가. 사람 마음이 그렇게 단일한 것이었다면 우리의 고민의 반절은 해결되었을 것이다. 여튼 이 말을 속담처럼만 알았다. 마음으로 알게 되는 건 또 다른 의미다. 영화 <라라랜드>의 세바스찬과 미아, 두 사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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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의 첫 만남.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 기억도 안나지만 출근길 교통체증으로 욕하면서 만난 사이다. 일진은 또 어찌나 더럽던지. 재즈의 성지를 만들고 싶어하는 세바스찬. 그는 자본주의에 귀의하여 지긋지긋한 징글벨만 치고 돈을 벌어야지 다짐했는데 결국 견디지 못했다. 곡 하나 자유롭게 쳤다가 깔끔하게 해고당했다.(메리 크리스마스!) 멋진 여배우를 꿈꾸는 미아. 그녀는 오디션 보러가는길에 옷에 커피 쏟은 것도 모자라, 면접관들한테 투명인간 취급받았다. 기분전환하려고 파티에 나갔다가 차도 견인당했다. 힐 신고 발목 나가도록 터벅터벅 걸어가다가 기껏 곡이 좋아서 이끌려 들어간 카페에서 연주자한테 칭찬했더니 코도 들큰안하고 나가버렸다. 둘의 첫만남은 그랬다. 되는게 하나도 없는 날에 만나서 누구에게도 위로받지 못했다. 그게 그들의 첫 겨울이었다.

   두 사람에게는 그러나 자신의 꿈이 명확하다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세바스찬은 재즈에, 미아는 연기에 빠져있었다. 둘이 서로에게 빠지지 않는게 더 이상했을 것이다. 둘이 참 잘 어울렸던 건 서로의 꿈을 응원해주었기 때문이다. 미아는 세바스찬이 꿈꾸던 정통 재즈 클럽을 헛소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되려 퓨전 재즈를 하고 있자 그걸 계속할건지, 그 음악을 좋아하는지 끊임없이 물어본다. 세바스찬은 오디션에서 상처만 받고 있는 미아에게 혼자서 직접 작품을 만들고 글을 써보는게 어떤지 묻는다. 그녀 작품의 첫 관객이 되어주고, 지원군이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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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기까지. 감독은 거기까지라고 선을 긋는다. 그 둘이 서로의 꿈을 좇을수록 사랑으로서는 멀어질 수밖에 없다는 게 당연하단다. 처음부터 정해져있던 것이었다. 쓸쓸한 휘파람소리부터, 듣기는 좋지만 왠지 한켠이 아련했던 둘의 첫 만남 그 피아노도, 둘이 조금씩 가까워지던 포스터의 저 언덕위에도. 이미 두 사람의 이야기는 남보랏빛으로 시작해 끝날 거란 걸 가리키는 이정표였다는 것처럼. 보면서 색감 때문인지 소설 소나기가 떠올랐다. 보랏빛이 좋다던 소녀는 그렇게 소년과 헤어졌다. 그리고 언제 그랬냐는듯 다시 하늘 쪽빛으로 푸르게 물들었다. 여기선 아무도 죽지 않았는데도 연인으로서의 시간이 모두 사라져 버린거라 슬펐다. 그런데도 왠지 두 사람이 이어지지 않은 것에 전혀 아쉬움이 들지 않았다. 둘이 참 잘 어울렸는데, 헤어진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되다니 아이러니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이런 결말을 현실적이라서 좋았다고 많은 사람들이 얘기했다. 현실적이란 말 속에서 우리는 일상다반사적인 슬픔을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여기고 있다. 그게 좋은 건지는 모르겠다. 현실 속에 행복은 설 자리가 없다는 게. 우리가 행복을 거기까지라고만 받아들이고 있는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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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세히 보면 영화는 세바스찬에게 초점이 있다. 세바스찬에겐 처음부터 지금까지 미아가 현실에 가득하다. 남보랏빛 야경이 펼쳐진 공원에서 그는 미아와 아무 사이도, 무려 가망도 없는사이라는데 동의하지만 거짓말이다. 그는 아주 코앞에 있는 차를 두고도 그녀의 차를 찾기 위해 그 먼 길을 돌아왔으니까. 그녀가 일하는 카페 이야기를 기억하고 아직 남자친구가 있는 미아에게 세바스찬은 부담스럽지 않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한다. 그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으로. 연구 목적이라고. 재즈에 관심도 없는 여자랑은 아무 말도 할 말이 없다더니, 재즈가 싫다고 말하는 미아에겐 할 말이 많다.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재즈클럽에서 재즈가 싫다는 그녀의 생각을 돌리기 위해 재즈의 열정을 전달하지만 강요하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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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존심을 내려두고 퓨전재즈 밴드를 시작한 것도 그녀에게 고정적인 수입이 있는 멋진 남자가 되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그랬던 그녀와 정통재즈를 하고 싶다던 꿈은 버린거냐며 언성을 높이고 나선 다시 그는 꿈을 좇기로 한다. 재즈클럽을 열었다. 그가 그렇게 양보할 수 없다던 이름 대신 미아가 지어준 이름이다. 그는 그녀가 배우의 길을 버리려던 차에 그녀를 마지막으로 붙잡아주었다. 그 길이 그와 멀어지는 것인데도 그녀를 보내주었다. 그녀가 없는 겨울이 왔다. 그녀는 유명한 여배우가 되었다. 모든 소식을 원하지 않아도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녀가 결혼했다, 그가 아닌 사람과. 아이가 생겼다, 그가 아닌 사람의. 그 시간들은 영화에선 드러나진 않지만 짐작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다른 남자와 함께한 그녀를 다시 마주했을 때 무슨 곡을 들려줄지는 이미 결정되었던 것 같다. 가만히 숨을 골랐다. 복잡한 얼굴의 그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알 수 있다. 연주하는 내내 그의 머리에서 아름다운 영상으로 펼쳐진 이루어지지 못한 꿈에서. 그리고 연주가 끝났을 때 떠나는 그녀를 바라보던 눈빛에서. 미아는 그래도 애써 밝게 웃을 수 있지만, 그는 그만큼마저도 웃을 수 없었다는 데서. 분명 그는 그날 저녁 쉽게 잠 못이루는 밤을 보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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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의 묘미라고 할 수 있었던 수많은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장면은 대부분 그의 것이었다. 그의 꿈이었다. 미아의 마음과 미아의 환상은 알 수 없다. 아마도 그래서 혹자는 영화가 찜찜하며 미아는 발암물질같다고도 하는 것 같다.  못된 여자라고 그녀를 험담하겠지. 하지만 우리가 그녀나 그에게 험담할 수 있는 것일진 의문이다. 이 영화가 말하고 싶었던 건 꿈과 사랑이 양립불가능하다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내가 다른 사람, 것도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영영 알 수가 없다는 걸 말해주고 싶은거다. 말과 행동으로 드러나는 것 이외에 숨겨진 그녀의 마음, 생각. 그가 했던 것만큼 혹은 그 이상, 그녀의 머리 속에서 펼쳐졌을 그녀의 꿈과 그녀의 환상이 있다는 것. 그녀가 얼떨결에 그 재즈클럽에 들어와 그를 마주했을 때, 그 곡을 들으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지, 왜 미소지을 수 있었는지, 그녀 또한 잠 못이루는 밤을 보냈을지 같은 것. 영화의 맨 처음, 교통 체증에 갇힌 수많은 차들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털어놓는 그 이야기 같은 것. 파티에 간 미아가 만족하지 못하고 중얼거리는 노랫말 같은 것. 우리 모두에게 아무도 완벽히 영영 알 수 없는 우리 각자만의 라라랜드가 있다는 것. 꿈과 사랑이라는 큰 틀에서의 내적 갈등도 있지만, 수많은 꿈 중 현실이 되는 것도 있고 그저 꿈으로 끝나버리는 것들이 있다는 것. 열길 물 속은 결국은 어떻게 알게 된다 하더라도 아무도 나라는 한 사람의 마음 속을 모른다는 것. 그 달콤쌉싸름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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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영화가 아름답고 찬란하다는 평엔 동의할 수 없었다. 강조점이 다르다. 아름다운데 끝은 약간 슬펐던 것도 아니고, 끝은 현실적이라 좋았던 것도 아니다. 슬펐다, 아름답고 찬란하게. 남보랏빛을 하늘이 수를 놓던 이 영화가 끝난 후 푸른 하늘을 보는게 아무도 죽지 않고 사라지지 않았는데도 새삼 슬펐다. 남보랏빛 소나기를 흠뻑 맞고 나온 기분이었다. 도시 가득한 별들의 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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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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