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왜곡된 언어, 은폐된 세계 [시각예술]

현실의 지배하는 언어의 힘
글 입력 2016.11.27 16:02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왜곡된 언어, 은폐된 세계 


송곳니8.jpg
 

"비록 고속도로 때문에
바깥에 나가지는 못했지만,
나는 바다에 앉아 창문을 통해
탄총이 하늘로 날아가는 장면을 보았다.

고속도로 속에서도
힘차게 날아오르던 탄총의 아래에는
여기저기 좀비들이 피어있었다.” 


  위의 문장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이 문장은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언어체계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즉 우리가 아는 단어들과 그것이 지칭하는 존재의 연관성이 이 문장에서는 성립되지 않는다. 사실 이 문장에서 ‘바다’는 침실에서 볼 수 있는 팔걸이 달린 가죽 의자를 말하며 ‘고속도로’는 강풍을 뜻한다. ‘탄총’은 아름다운 하얀 새를 의미하며, ‘좀비’는 작고 노란 꽃을 지칭한다. 즉 일반적인 언어로 풀이하자면 이 문장은 “비록 강풍 때문에 바깥에 나가지는 못했지만, 나는 가죽의자에 앉아 창문을 통해 하얀 새가 하늘로 날아가는 장면을 보았다. 강풍 속에서도 힘차게 날아오르던 하얀 새의 아래에는 여기저기 작고 노란 꽃들이 피어있었다.” 정도의 의미가 될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단어와 그것이 지칭하는 존재의 연결 관계를 바꾸기만 해도 사람들은 의사소통에 불편함을 느낀다. 마치 우리가 사투리나 외국어로 인해 의사소통을 원활히 하지 못하듯이 말이다. 이렇듯 언어란 한정된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일종의 의미 공유시스템이다. 한 개인이 사회에 편입되는 사회화과정에서 사람들은 언어를 학습하고, 또 언어를 통해 사회구성원들이 공유하는 사고방식과 ‘바람직한’ 행동양식을 배우게 된다. 이러한 언어습득 과정을 통해 사람들은 사회에서 낙오되지 않고, 사회구성원으로서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송곳니5.jpg
 

  그렇다면 누군가가 이러한 언어를 왜곡하고, 왜곡된 언어를 통해서 사람들을 기존의 사회와 분리시킨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영화 송곳니(Dogtooth, 2009)는 이러한 의문을 풀어줄 만한 내용을 담고 있다. 영화에서는 아버지가 일종의 권력자로 등장한다. 가정의 모든 규칙을 만들고, 이 규칙을 어긴 사람을 처벌하며, 유일하게 아버지만이 바깥세상으로 나갈 수 있다. 음성테이프로 일반 사람들 사용하는 것과는 다른 단어 체계를 가르치고(글 도입부의 문장은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왜곡된 언어의 예시이다) 마당 밖 세상은 위험하며 송곳니가 빠질 때가 되었을 때만 바깥세상으로 나갈 수 있다고 자식들을 세뇌시킨다. 언뜻 말도 안 되는 규칙인 것처럼 보이나, 태어날 때부터 외부 세계를 보지 못하고 이러한 질서만을 진실로 받아들이며 사는 자식들에게 아버지가 만든 규칙은, 그들이 직접 마주하는 ‘현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을 만들어 내는 일등공신은 사회에서 정립된 수많은 기호들, 그 중에서도 가장 풍부한 상징성을 담고 있는 ‘언어’이다.

  언어는 단순한 기호가 아니다. 언어는 특정 사회 맥락에 의해 혹은 사회의 권력자들에 의해 조작될 수 있고, 이 왜곡된 언어는 특정 대상에 대한 부정적 혹은 긍정적인 태도까지 야기할 수 있다. 송곳니에서 아버지는 언어를 조작하는 권력자이다. 그는 단어들을 왜곡하고 언어체계를 왜곡함으로써 집과 바깥세상을 분리시킨다. 바깥세상에서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언어체계를 배제함으로써, 이로 인해 생성되는 사회의 규칙이나 문화 역시 배제시킨다. 즉 아버지는 체벌과 같은 직접적인 폭력과 언어의 왜곡을 통해 완전하게 자식들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통제하고 이들을 은폐된 세계에 가두고자 한다. 


송곳니4.jpg
 

언어란 결국 사람이 세상을 인식하고, 해석하며, 타인과 교류하는 도구이기 때문에, 왜곡된 언어는 한 사람의 인생을 충분히 망가뜨릴 수 있다. 영화 속에서 큰 딸은 아버지가 조작한, 은폐된 세계에 대한 의구심을 가지고 직접 송곳니를 뽑고 바깥 세상에 나간다. 하지만 여전히 그녀의 행위는 아버지에 의해 왜곡된 언어의 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즉 큰 딸이 비록 직접적인 아버지의 통제에서는 벗어나다 하더라도, 그녀의 행동 여기저기에는 여전히 아버지의 잔재가 남아있는 것이다. 그리고 아마 이러한 잔재는 꽤 오랜 시간동안 세상 밖으로 나간 그녀를 괴롭힐 것이다. 기존의 사회구성원과는 다른 언어체계를 가지고 있기에 사회에 동화되는 과정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을 것이며, 최악의 경우 시행착오를 겪기도 전에 망가질 지도 모른다.


송곳니2.jpg


  영화 송곳니는 권력자에서 출발하는 기호시스템의 왜곡이 불러올 수 있는 부정적인 효과를 보여준다. 고양이를 잔인하게 잘라 죽이고, 남매간에 근친상간을 행하고, 세 걸음 앞의 비행기를 주우러 나가지 못하는 자식들의 행동은, 쉽사리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아버지가 만들어낸 질서 속에서 이는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럽다. 그리고 이는 언어의 왜곡된 학습에서 출발한다. 영화는 ‘왜곡’의 위험성을 한 가정의 양육행태를 통해, 그 속에서 망가져가는 자식들의 모습을 통해 이야기한다. 누군가에 의해 언어가 억압되고, 이 언어를 통해 사람들이 고립될 때, 이들에게 남는 것은 결국 은폐된 세계와 사회 부적응자라는 멍에뿐이다. 그리고 이 멍에는 아주 오랜 시간동안 이들을 괴롭힐 것이다. 마치 트렁크에서 나오지 않은 큰 딸에게 순탄치 않은 미래가 기다리는 것처럼 말이다.



1970998916_2OdpqoUW_EC86A1EAB3B3EB8B887.jpg
 


*게시글은 모든 사진의 출처는 네이버 영화입니다* 


[한나라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5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