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우아하면서도 발랄한 음악의 파리가 그립다면 [세도시 이야기-파리]

글 입력 2016.05.13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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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우아하면서도 발랄한 음악의 파리가 그립다면 [세도시 이야기-파리]


 ‘세 도시 이야기-파리’ 음악회는 처음 내가 선택하고 찾아 간 음악회였다. 음악에 대한 빈약한 지식 탓에 형체를 알 수 없는 상상력만 커져서, 금호아트홀에 가까워질수록 나의 기대감은 하릴없이 부풀어가는 중이었다. 때문에 (물론 음악적으로 잘 다듬어진 재능을 파악하고 즐길 수 있었다면 괜찮았겠지만,) 혹시나 이 큰 기대감 때문에 훌륭한 연주를 과소평가 하게 될까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이번 연주회의 목표를 ‘머릿속에 떠오르는 풍경’으로 잡고, 20세기 파리의 인상주의 음악이 펼쳐냈던 바로 그 인상을 나름 그려보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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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아트홀의 연주회장


금호아트홀 밖에서 대기 중인 관객들 중에서는 대부분 연령이 지긋하신 분들이 많았다. 그분들에게서 묘하게 풍겨 나오는 기품과 교양 때문에 ‘이곳이 음악회를 하는 곳’이라는 것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었다. 표를 받아 연주회장으로 입장하니, 아담한 무대 위에 맞물려진 커다란 피아노 두 대는 조명을 받아 더욱 신비하게 보였다. 8시가 되어 안내방송이 나오고, 무대 옆쪽에서 두 명의 피아니스트가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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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오후의 뱃놀이에서의 오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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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의 <밤의 테라스>


두 피아니스트가 각자의 피아노 앞에 앉자 공연이 시작되었다. 1부에서는 전체적으로 우아하면서도 발랄한 느낌을 받았다. 마치 놀이공원의 입구에서 유럽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며 들려오는 음악처럼, 물 흐르는 듯한 구성에 통통 튀는 재주가 곡을 주무르는 인상이었다. 오케스트라의 다양한 악기가 각자의 개성을 가지고 곡에 장식을 넣어주는 것도 아닌데, 단지 피아노만으로도 이렇게 각별한 느낌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확실히 이전에 흔히 듣던 클래식 음악과는 또 다른 색다른 묘미가 있었다. 너무 무겁고 장엄하지도 않지만, 가볍고 화려하지 않은,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신선하게 다가오는 색깔을 지닌 곡들이었다. 20세기 파리의 인상주의가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1부의 곡들은 당시 파리 음악에 영향을 주었던 인상주의 회화 중, 고흐의 ‘밤의 테라스’, 르누아르의 ‘오후의 뱃놀이에서의 오찬’을 떠올리게 했다. 통통 튀는 발랄함으로 곡을 자유롭게 즐기는가 싶으면, 파리에 밤이 내리면 풍겨나오는 프랑스 특유의 낭만과 우아함이 기저에서 느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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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의 <검은 그림 연작 : 성 이시드로를 향한 순례>


2부의 하이라이트는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이라고 할 수 있었는데, 포레의 곡이 끝나고 도입부에 들어서는 순간 이것이 봄의 제전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제목과 어울리지 않는 음산하고도 불안한 느낌이 역력한 멜로디에 나도 모르게 긴장하고 있는 것을 느꼈다. 이 ‘봄의 제전’의 내용은 봄이 되어 깨어난 대지의 신에게 처녀를 제물로 바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데, 당시의 프랑스 사람들이 이 곡을 듣고 왜 경악을 금치 못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줄거리를 알고 있어서인지, 봄의 제전을 들으면서 나는 전체적으로 어두운 느낌을 받았다. 이 곡은 때로는 살금살금 다가와서 목덜미를 간지럽히는 듯한 오싹함으로, 때로는 끈적끈적하게 달라붙어 온몸을 꼬집는 듯한 소름으로, 그리고 귓가에 조곤조곤 집어넣는 협박의 속삭임처럼 다양하고도 훨씬 화려해진 기교로 서늘하게 내 귀를 파고들었다. 하지만 혼이 쏙 빠질 정도의 화려하고도 세련된 연주에 끝까지 집중할 수 밖에 없는, 그런 곡들이었다.

 비록 인상주의 회화는 아니지만, 나는 고야의 검은 그림 연작 중 ‘성 이시드로를 향한 순례’가 생각났다. 본디 이 장면은 순례 중의 경건하고도 기쁜 축제라고도 할 수 있지만, 고야의 어두운 후반기의 내면세계가 반영되어 기괴하고도 음산한 그림이 되었다. 그림 특유의 검고 어둑한 분위기와 수많은 사람들이 엉겨있는 모습이, 명랑한 제목 속에 음산한 멜로디를 숨긴 이 곡과 닮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어둡고 암울했던 시간 속에서 빛난 고야의 천재성과 봄의 제전에서 감상할 수 있었던 화려한 음악적 예술성이 닮아있다는 점도 둘 사이의 유사성을 돋보이게 했다.
음악회의 또 다른 묘미는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를 두 눈으로 볼 수 있는 점이 아닌가 싶다. 두 피아니스트들은 연주를 하는 내내 단지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는 것이 아니라, 음악이 흐르는 대로 손가락뿐이 아닌 온몸을 맡기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피아노의 의자 위에 못박혀 경직되어 있을 것만 같던 피아니스트들은 마치 무용에서 무용수가 음악에 온 몸의 구석구석을 내맡기는 것처럼 자신은 이 연주에 온 정신을 바치고 있음을, 표정으로 몸으로 보여주었다. 예술가들의 감정이 왜 섬세한지, 피아니스트가 그 감정을 곡에 바치면 어떤 연주가 탄생하는지를 눈앞에서 볼 수 있는 것이 연주회를 직접 보는 묘미임을 느꼈다.
 

이렇게 나의 첫 연주회는 성공적으로, 나에게 큰 감성적 충전과 함께 조금은 음악과 친해진 듯한 인상을 남겨주며 끝이 났다. 음악과 친하지 않아도, 역사와 기술에 대해 문외한이더라도 자신만의 방법으로 조금씩 음악과 가까워지는 것. 그리고 누구나 어린 시절에 한번쯤 접해보았을 악기 피아노에 예술적 재능이 덧씌워지면 얼마나 멋진 경험을 선사해주는 지 알게 된다면, 앞으로의 인생에 있어 음악회란 더 이상 먼 것이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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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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