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야름답고 발칙한 동화이야기, 뮤지컬 난쟁이들[공연예술]

글 입력 2016.03.22 19:38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야름답고 발칙한
동화이야기,
뮤지컬 난쟁이들


art_1457662560.jpg


 어린 아이들은 누구나 동화를 꿈꾼다. 누군가는 공주님이 되기를, 누군가는 왕자님이 되기를 꿈꾸고, 아무 대가 없는 사랑이 존재 한다는 것과 자신들 또한 그러한 사랑을 할 것을 믿어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그 아이들이 '어른'이 된 후. 그들은 더 이상 동화를 꿈꾸지 않는다.  

"동화는 동화일 뿐이잖아. 너무 현실성이 없어."

 약간의 그리움과 냉소를 담아하는 그 말 속엔 순수했던 자신에 대한 향수와 동시에 변해버린 자신에 대한 씁쓸함이 묻어난다. 그런데 여기, 이러한 어른들을 꿈꾸게 하는 '동화'가 나타났다. 아름답고 순수한 이야기가 아닌, 야름답고 발칙한 동화 이야기. 어린이가 아닌 어른이들을 위한 동화이야기. 현실을 말하는 동화이야기. 동화의 법칙을 전복시키며 미묘하게 동화를 따르는 동화이야기. 뮤지컬 난쟁이들이다.


시놉시스

난쟁이들 시놉.jpg
 
 
 동화의 법칙의 전복이다. 지금까지 동화의 주인공들은 '왕자'거나, '공주'거나, 그도아니면 특별한 재주를 가진 누군가였다. 동화의 주인공은 항상 '특별'해 왔던 것이다. 하지만 뮤지컬 난쟁이들은,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 보잘 것 없는 '난쟁이들'이 주인공인 뮤지컬이다. 단지 '백설공주의 조력자'가 아닌, 주체적인 난쟁이들의 이야기. 그 보잘것 없음이 차라리 현실적이라 더욱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모든 동화에 답처럼 존재했던 '사랑'을 '돈 많고 집안 좋은 왕자나 공주들이 하는거지!'라며 N포세대라 불리는 우리의 모습을 꼬집는다. 


공주만 만나면, 해피엔딩?

"그토록 원하던 해피엔딩♪"

 백설공주, 신데렐라, 잠자는 숲 속의 공주. 유명한 이 세 이야기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왕자'를 만남으로써 해피엔딩이 이뤄졌다는 것! 이 셋은 착한 심성을 가진 것 빼고는 동화 내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자신의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서 발버둥 치지도, 무언가 해보려고 주동적으로 나서지도 않는다. 분명 부당한 일임에도 눈물 찍으며 행하고, 어리숙하게 누군가에게 속아서 본인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리는 것이 전부. 하지만 이들은 '왕자'를 만나고 그와 첫눈에 사랑에 빠짐으로써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 아무리 사람이 느낌이라는게 통한다지만, 저 정도면 사실 외모를 보고 사랑에 빠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연 이들의 사랑이 행복했을까? '결혼'은 모든 시련을 종결시키는 '해피엔딩'일까?

"네가 나중에 크면, 누가 뭐라그러든, 절대, 절대 가장은 되지마라."

 답은 '아니'다. '결혼'은 말 그대로 인생의 한 과정일뿐이며, 또다른 시련의 시작이다. 뮤지컬 난쟁이들은 바로 이 점을 비틀어 웃음을 유발한다. 찰리의 아버지는 사랑은 있는 집 애들이나 목숨걸고 하는거라며, 사랑에만 목숨걸 수 없는 '난쟁이'들의 현실을 말한다. 이 말을 듣고 찰리는, 그렇다면 자신은 '가장'이 아닌 왕자가 되겠다고 말한다.

"공주와 결혼만 하면 모든 게 한 번에 해결 될 수 있을 거야♪"

 찰리가 원하는 것은 '해피엔딩'이다. 지긋지긋한 '이 곳'. 난쟁이들이 사는 구질구질한 이 곳을 벗어나 '멋지게'사는 것. 공주를 만나서, 동화의 주변인이 아닌 주인공이 되는 것. 찰리가 생각하는 '해피엔딩'은 '공주'를 만남으로써만 가능한 엔딩이다. 하지만, 과연 '공주'를 만나는 것이 해피엔딩일까? 이에 대한 답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공주'들이 제시한다. 그것은 '아니'라고 말이다.


지난 날은 안녕, 이라 생각했지만…

"계모와 언니들에게 구박을 받던 지난날은 안녕 이제 내 팔자 폈다 생각했지만♪"
"도망 다니던 신세 난쟁이랑 사는 것도 안녕 이제 공주답게 살거라 생각했지만♪"

"결혼하면 환상은 사라져버리네. 낭만 그런건 모두 연애 때나 찾는 것! 한눈에 반해 결혼하면 후회할거야♪"

 신데렐라, 백설공주. 말 그대로 '한 눈에 반해서' 결혼한 동화계의 대표주자 둘이 말하는 '후회할거야'라는 말은 어쩐지 더 무겁게 들린다. 백설공주는 몰라도 신데렐라, 하면 '신분상승'의 대표주자이다. 현대에 와서까지도, 신분상승 스토리를 신데렐라 스토리라 부를 정도니 말이다. 하지만 모두가 꿈꾸는 그 스토리의 주인공은, '후회 할'거라고 말한다. 뮤지컬 난쟁이들에서 신데렐라, 백설공주는 모두 '왕자'님들과 이혼을 한 것으로 나온다. 데렐라는 주변 다른 귀족들의 시선과, 다른 삶을 살고싶어서. 백설공주는 왕자의 정력과, 그저 '착한아이'이기만을 바라는 그 점에 질려서. 

 공주들이 이혼을 했다고 하니, 이상하게 느껴 질 수도 있겠지만 사실 이것은 이미 내정 된 일이었다. 앞서 말했듯 결 혼은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외모에 한눈에 반해서 하기엔 '해피엔딩'이라기보단, 또다른 '시련'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사실 평생을 평민으로 살아온 신데렐라가, 귀족들이 갖춰야하는 예법이나 학식 등을 갖췄을 리는 없다. 또한 귀족의식으로 똘똘 뭉친 그들이 신데렐라를 제대로 받아들여 줬을 리도 없다. 평민 출신으로 귀족들 사이에 둘러싸여 살아가야하는 삶이 평온 할 리가 없던 것이다.  백설공주도 마찬가지이다. 왕자는 공주에게 그저 '첫 눈에' 반했을 뿐이다.  심지어는 깨어있지도 않은, 잠들어 있는 모습에 말이다. 그런 왕자가 공주에게 바라는 것은 뻔하다.잠들어 있던 것처럼, 곱고 순한 여성. 그저 '착한 공주'. 성적 욕망 등 자신의 욕구도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이. 그런 왕자가 백설을 만족시켰을 리는 없었다. 결국 첫 눈에 반해, 그저 결혼으로서 행복한 결말을 맞는 일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동화 전체를 관통하는 코드인 '사랑'은 '행복'에 답이 아닌 것일까? 이에 대한 답은 동화 속에서 유일하게 사랑에 실패한, 혹은 유일하게 진정한 사랑을 한 '인어'가 말한다. 그것은 또한, 아니라고.


이렇게, 이게 나야!

"생각해봐 어떤 남자가 모든 걸 다 버리고 매달리면 사랑을 느낄까 아니면 부담스러울까♪"

 인어는 사랑에 실패했다. 왕자를 사랑해서 마녀와 거래를 했고, 목소리까지 주며 왕자를 만나러 왔지만 왕자는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고 이웃나라 공주와 결혼하고 만다. 계약 조건을 달성하지 못한 인어공주에게 남은 것은 물거품이 되는 것 뿐. 언니들의 희생으로 얻어낸, 유일하게 살 수 있는 방도는 사랑하는 왕자를 죽이는 것. 인어공주는 결국 스스로의 죽음을 택한다. 우리가 모두 알고있는 인어공주의 이야기. 인어공주는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서 사랑했지만, 결국 그 사랑은 실패했고 사라지고 말았다. 그래서 인어는 결심했다. 다시는, 아무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겠다고. 그런 인어에게 찰리는 '그런 방식의 사랑은 부담스럽다.' 고 말한다. 목숨을 거는 사랑은 더 이상 미덕이 아닌 부담이라고. 
 
"이렇게 이렇게 무겁지 않게 이렇게 이렇게♪"

 마음이 가는대로, 물 흐르듯. 가볍게 흐르는 사랑. 이것이 사랑이라 찰리는 인어에게 말한다. 인어는 처음엔 부정한다. 사랑에 받았던 상처만큼 새로운 사랑은 어려울 수 밖에 없으니 말이다. 계속해서 찰리를 밀어내고, 자신의 마음을 부정한다. 하지만 이내 찰리에게 끌리는 자신의 마음을 인정 할 수 밖에 없었다.  예전에 받았던 그 상처때문에 인어는 인정하고도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또 이래도 되는 것일까. 과거 그 일을 또 답습하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결국 인어는 스스로 답을 내린다.

"그게 날 다치게 한대도 난 그냥 할거야  그래 난 바보 바보 난 바보 이게 나야♪"

 결국 인어는 또 다시 과거를 답습한다. 가볍게, 무겁지 않게 사랑을 하라던 찰리의 말과 달리. 너도 너 자신을 챙기라는 찰리의 말과 달리. 나는 네가 공주가 아니라서, 나는 내 목표를 위해서 다른 공주와 키스하겠다는 찰리를 위해 인어는 또 다시 자신을 희생한다. 그것이 '자신'이기에. 상처를 받더라도, 또 다시 버림받더라도. 그렇게 하는 사랑이, 그렇게 사는 삶이 '자신'이라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또한. '행복'한 삶일까?


해피해피엔딩, 해피해피 엔딩

  난쟁이들은, 동화 속에서 '모두가 행복했다'(인어공주 제외)던 프레임을 뒤집어서. '행복하지 않은' 주인공들이 진짜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백설, 신데렐라, 인어공주, 빅, 찰리. 모든 인물들이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은 동화의 전복이면서 또 동화의 답습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해피엔딩'이었던 것들이 과연 해피엔딩일까?' 를 물으며 시작했던 뮤지컬이니 만큼, 엔딩곡에 '해피엔딩'이라는 가사에도 한가지 물음이 남는다. 과연 이들은, 이제는, 행복할까? 주인공들 중 유일하게 '행복'을 확신하는 신데렐라의 '비로소 행복하다!' 라는 대사가 그리 희망차게만 들리지 않는 것도 이 이유일 것이다. 

  '행복'은 동화처럼 그리 쉽게 찾아지지 않는다. 무언가를 선택하면 무언가는 버려야 하며, '완벽한 행복'이란 존재 할 수 없다. 하지만 뮤지컬 난쟁이들은, 비록 완벽하지 않더라도, 뭐 하나 부족하더라도. 그 삶 속에 '사랑'이 있다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래도 '행복' 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우리에게 되묻는다. 그렇게나 상처받고도 찰리를 위해서 또 다시 희생하는 인어처럼, 백설만을 바라보고 평생을 살아온 빅처럼. 그 각박한 삶 속에서도 작은 '행복'들을 찾아 갈 수 있지 않을까? '완벽한 행복', 해피엔딩이 아니더라도 그들만의 행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이들은 모두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찰리, 빅, 백설, 신데렐라, 인어공주. 각각이 찾은 '행복'의 답은 다르다. 누군가는 사랑을, 누군가는 실리를 택했다.그 각각 다른 답 속에서도 그들은 한 목소리로 '해피엔딩'을 외친다. 동화 속 '해피엔딩'은 행복하지 않을 개연성이 크다. '결혼'은 인생의 답이 아니며, '사랑'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렇다고 '현실적인', '실리적인' 것이 우리의 행복을 책임져 주지도 않는다. 그것을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을 너무나도 잘 알고있다. 그것이 너무나도 현실적인 고민을 하는 찰리에게 우리가 공감하는 이유이면서도, 또 헌신적인 인어를 동정하면서도 어떤 면에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이유이며, 실속을 찾는 신데렐라를 보며 통쾌해 하면서도 안쓰러워하는 이유이다. 
 
 뮤지컬 난쟁이들은 '해피엔딩'이란 결말을 냈지만, 우리에게 그 결말을 강요하지 않는다. 애초에 해피엔딩을 부정하며 만들어진 뮤지컬이니 당연하다. 다만 묻는다. 각기 다른 답을 낸 이들이, 정말로 행복할까요? 다들 이에 대한 답은 다르겠지만. 나는 '그렇다'라고 답하고 싶다. 아무리 어른이 뮤지컬이라도 동화를 봐서 그런가 현실적인 생각을 내려두고 그저 '해피엔딩'에 젖어있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해피해피엔딩이라 노래를 부르는 이 장면, 이 순간이 영원하길. 행복한 장면을 마지막으로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해설로 그들의 끝을 '행복'으로 박제시켜버리는 동화처럼. 이 순간 만큼은 해피엔딩이기를 바랐다. 그럴리 없겠지만, 이들 모두가 행복하길. 그리고 이들에게서 자신들의 모습을 찾는 우리들 또한 행복하길. '해피엔딩'이길 바랐다.


[권희정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6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