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언어를 갖지 못한 감정은 당신 마음 속 괴물의 먹이가 된다. 연극 시에나 안녕 시에나 리뷰

글 입력 2015.03.13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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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8일 국립극장 별오름 극장에서 열린 연극 '시에나 안녕 시에나'를 보고왔다.
시에나라는 한 여자의 어린 시절 상처를 독자적 은유로 구현한 작품이다. 
연극 ‘시에나, 안녕 시에나’는 제12회 대산대학문학상 희곡 부문 수상작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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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은 천둥이 치는 비오는 밤, 환경운동가 부부의 감정적인 대화가 오고 가며 시작된다. 가정집엔 한 아이가 자라고 있는 언제나 일로 바쁜 엄마와 아빠에게 사랑을 갈구하며 알 수 없는 이야기를 계속해서 내뱉는다. 늘 혼자 있는 외로움에 사무쳐 있는 아이를 부모는 방에 가두어버린다. 그 때 가정집에 낯선 손님 시에나씨가 방문한다. 시에나라는 이름을 가진 손님은 국적도, 나이도, 직업도, 정체도 알 수 없는 존재이다. 더불어 그가 실수로 그의 품 안에서 떨어뜨린 건 용도불명의 날카로운 칼 한 자루. 밤은 깊어지고 아빠 엄마는 급한 연락을 받고 외출 준비를 서두른다. 이에 손님 시에나는 자신이 아이를 재우고 돌아가겠다는 황당한 제안을 건네온다.
아이는 곧 시에나의 어린시절의 상기인 동시에 시에나와 함께 자랐던 마음 속의 또 다른 자아이다.
연극 <시에나, 안녕 시에나>는 계속해서 어둡고 우울하며 음산하다. “언어를 갖지 못한 감정은 당신 마음 속 괴물의 먹이가 된다”는 대사가 몇 번이고 반복된다. 아이가 겪는 심각한 외로움과 불안함은 단어의 정의로 이해되는 것이 아닌 어떤 단어로도 감당할 수 없는 암흑의 고통 같은 것이었다.

시에나, 안녕 시에나는 무심한 부모와 그들 사이에서 소외받는 딸, 그 소녀가 겪은 내면의 이야기였다.
시에나의 부모는 부부가 함께 환경운동에 시간과 노력을 바친다. 직업에 대한 자부심만큼이나 차갑고 까다로운 성격이다. 그들은 목적과 의무에 빠져 딸을 인생에서 제외시킨다. 시에나가 유일하게 갖고 있는 따뜻한 기억은 고래의 죽음을 슬퍼한 부모가 그 감정을 그대로 가진 채 집에 돌아와 시에나 딱 한번 따뜻히 안아주던 순간이었다. 딸은 그날 밤을 잊지 못한다. 이 기억은 긴 시간 지속된 내면 상처와 부딪쳐 그녀를 괴롭힌다. 

후반부에는 어른이 된 시에나를 어느 새 흰머리가 가득 자란 부모가 기다리는 장면이 있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시에나에 대한 왜곡된 사랑을 기억하는 부모와 그들을 미워하면서도 여전히 사랑을 갈구하는 시에나의 모습이 인상깊었다.
부모는 마치 과거의 반복처럼 중요한 일이 생겨 오랜만에 만난 시에나를 두고 나가려 하는데 시에나가 부모를 향해 내면의 소리를 꺼내 소리치는 부분의 대사가 와닿았다. 
"두 분이 같은 일을 하시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아요." 라고 시에나가 말하자 부모는 서로를 쳐다보며 함께 같은 분야에서 일하는 것에 대한 만족감을 나타내자 시에나는 그런 애정어린 부부 사이에 자신은 무슨 존재였냐며 늘 함께여서 외롭지 않은 부모와는 달리 자신은 늘 혼자였기에 늘 외로움에 사무쳤고 그럴수록 내면의 자아는 자신을 집어삼킬듯한 거대한 괴물이 되어가고 있었음을 인정하고 알리는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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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를 갖지 못한 감정은 당신 마음 속 괴물의 먹이가 된다' 라고 어린 시에나부터 성인이 된 시에나까지 계속해서 말하던 대사가 이해가 되었다. 그러나 새삼 놀랐던 것은 마음 속 항상 시에나를 괴롭혀 왔던 괴물이라는 또 다른 자아가 결국엔 시에나와 평생을 함께 한 동반자였고 시에나를 유일하게 혼자 두게 하지 않으려 한 대상이었다는 다른 시각의 반전이다. 성숙해진 시에나를 위로하며 마음속의 감정을 언어로 내뱉지 않는 순간 고독함과 외로움이 오는 것이라며 언어로 소리치라는 말을 남긴 채 시에나 속의 또 다른 시에나는 사라진다. 

연극을 보는 내내 집중을 하게 되었고 쉽게 이해되지 않는 대사나 장면이 있어서 꽤나 심오해졌지만 연극을 다 보고 난 뒤 집에 가는 길 다시한번 시에나를 떠올려 보니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던 것 같다. 작가가 대사 하나하나 속 깊은 뜻을 담고 글을 썼다는 느낌이 들었고 연출 또한 그러한 작가의 생각을 잘 투영하여 배우들의 동선이나 연기, 소품, 조명이 잘 맞춰져 있었다. 작은 공간 안에 다양한 이미지를 심어주어 시에나의 복잡한 내적 감정이 잘 보여졌었다.

늘 대학로에서 가벼운 주제의 재미있는 연극을 보다가 처음으로 심오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을 보게 되니 다소 충격적이면서도 신선했다. 어린 시절의 상처를 내면의 또 다른 자아와 반복되는 기억들로 잘 풀어낸 의미있는 작품이었던 것 같다.

연극은 3월 27일까지 계속된다.

일시 : 2015/03/04 ~ 2015/03/27

장소 : 국립극장 별오름극장

출연 : 이강희, 한송이, 이보미, 강연정

관람 : 만 15세이상 

시간 : 80분

입장권 : 30000원

평일 오후 8시 / 토요일,일요일 오후 4시, 7시 (2회) / 월요일 공연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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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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