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를 담은 영화 중 가장 충격적으로 기억되는 장면이 있다.
최동훈 감독의 영화 <암살> 중 ‘하와이 피스톨(하정우)‘과 일본 장교 ’카와구치(박병은)’가 일상적인 대화를 이어가던 중 꽃을 파는 조선 여학생이 카와구치에게 실수로 부딪히자 그가 사과를 하는 학생을 다시 불러 망설임 없이 총을 쏘는 장면이다. 역사 수업에서 듣고 보던 수없이 많은 실존하는 영상 자료들 보다 그 시대의 분위기를 가장 잘 표현한 장면이었다.
그 모습이 충격적이었던 이유는 너무나 영화적이지 않은 평범한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흐르는 폭력의 풍경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2025년 제78회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과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시크릿 에이전트>는 1977년 브라질 군부 정권 아래 이름을 감추고 고향으로 돌아온 한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독재 정권 시대의 혼돈과 불안을 가감 없이 그려낸다.
제목만 보고 자칫 ‘007시리즈’나 ‘제이슨 본 시리즈’와 같은 액션물을 떠올렸었지만 숨 가쁜 추격이나 몸을 사리지 않는 화려한 액션 대신 섬뜩할 정도로 현실적인 경멸과 핍박, 도시 한 가운데서 울려 퍼지는 총성에도 돌아볼 수 없는 무정한 시대의 공기가 가득하다. 피비린내보다 시체 썩는 냄새가 느껴지는 이 영화는 기록되었지만 기록되지 않은, 지워진 삶을 살아간 사람들이 마주한 그날의 차가운 공기들을 그 어떤 시대극보다 뜨겁게 담아내고 있다.
소년의 악몽 - 아이러니한 시대의 풍경
‘소년의 악몽’, ‘신원 확인소’, ’수혈‘ 등으로 총 3막 구조를 지니고 있는 이 영화는 첫 장면부터 군부 정권 시대의 모습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신분을 숨기고 고향으로 돌아온 주인공 ’마르셀루‘는 주유소 한가운데 버려져있는 시체를 마주한다. 주유소 주인은 시체를 향해 돌진하는 들개들을 쫓아내느라 바쁘고, 경찰들은 시체의 신원을 확인하긴커녕 마르셀루에게 부정한 돈을 받아내기에 여념이 없다. 한 장소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 중 제 역할을 다 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고 일상 속 자리한 폭력에 대한 망각이 너무도 자연스러운 블랙코미디 같은 아이러니함이 영화 내내 계속해서 풍자된다.
카니발 축제에선 100명이 넘는 사람이 죽어 나가지만 사람들은 그러려니 하고 축제는 계속된다. 상어의 뱃속에서 사람의 다리가 나왔지만 누구의 신체인지 알지 못한 채 털 난 짐승의 다리로 바꿔치기 된다. 감독은 영화 곳곳에 시대의 아이러니한 상황을 풍자한 장치를 넣음으로써 살해 협박을 당하고 있는 주인공의 불안한 심리를 점차적으로 극대화하며 다른 이념을 가진 이가 궁지로 내몰리는 과정을 조용하고 차근차근하게 묘사하고 있다. 마치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상어’가 먹잇감을 쫓아 고요히 바닷속을 떠다니듯 말이다.
주인공 마르셀루는 아들을 보기 위해 고향에 돌아오지만 정작 고향에서는 아들을 보기는커녕 자신의 이름도 사용할 수 없다. 본명을 숨긴 채 살아가는 이들은 조국이지만 스스로를 ‘난민들’이라 칭하며 신념을 지키고 살아간다. 권력을 잡은 이들의 논리에 반대선에 서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은 자신도 모르게 ’시크릿 에이전트‘가 돼버린 것이다.
추격을 다룬 영화들 속에선 보통 조력자가 있다 해도 주인공이 홀로 은신처에 숨어 살며 타인에 대한 의심이 끝없이 피어 오르기 마련이지만 이 영화에선 주인공은 홀로 있지 않는다. 함께 은신처에서 공동생활을 하며 진짜 이름이 아닐지언정 다정하게 이름을 부르고,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준다. 영화 내내 쫓고 쫓기는 정치 스릴러의 장르 색을 진하게 띄고 있지만 그 속엔 시대를 살아간 인물들의 현실적인 내면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이다.
신원 확인소 - 기록된 것과 기록되지 않은 것
영화 내에선 ’신문‘이나 ’녹음 파일‘ 같은 기록 매체가 계속해서 노출된다. 물질적으로 신문은 얇게 펼쳐진 종이에 불과해 시체를 덮는 용도로 쓰일 뿐이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한 시대가 진실을 씹어 먹고 배설해낸 기록들과 작게나마 은어처럼 풍자된 현실이 기록되어 있다. 독재 정권 아래 통재된 언론이 작성한 기사들은 제 기능을 하지 못해 시체 덮는 용도로 가장 많이 쓰인다는 점이 기묘하게 영화에 표현되어 있다.
주인공 마르셀루가 인터뷰를 하는 장면에서 분노를 담은 진심을 말할 땐 잠시 녹음을 중단한다. 후세에 이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여러 매체를 기반하여 마르셀루의 본명을 밝히는 데까지는 성공하지만 그가 어떤 심정으로 은둔 생활을 했는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그들의 후세를 만나고 진실에 더욱 가까워지기를 갈망한다. 기록된 것과 기록되지 않은 것 사이에 현존했던 진실을 쫓는 것이 억울한 시체를 망각했던 과거를 향한 과오를 뉘우쳐야 현대가 더욱 나아갈 수 있다고 말하는 듯했다.
수혈 - 과오을 통해 현대를 바라보다.
마르셀루의 최후는 추격전이 펼쳐지다 갑작스럽게 신문을 통해 관객들에게 전달된다. 다소 황당할 정도의 전개에 놀라긴 했지만, 그것 또한 현대에 이르러 마르셀루의 자취를 따라 그릇된 자료들을 파헤치던 후세들이 느끼던 맨땅에 헤딩하며 진실을 찾는 느낌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그의 마지막 모습은 과정은 생략된 채 잔혹하게 살해된 사진만이 신문에 기록돼있다. 마치 숨어있는 쥐에게 경고를 날 리 듯 쥐의 머리를 잘라내 그들의 통로에 놓는 것처럼 처참한 모습의 마르셀루를 가장 큰 사진으로 걸어 놓았다. 이름을 지우고 살아야 했던 그는 마지막까지 독재정권에 맞선 대가의 견본품으로 남아야 한 것이다.
그의 기록을 쫓던 현대 학자는 마르셀루의 아들을 만나 인터뷰한다. 아버지와 똑 닮은 아들은 아버지와 당시 시대에 대한 기억은 하지 못한다. 그러나 학자가 떠난 뒤 텅 빈 밤거리를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그의 두 눈은 아버지와 같은 불안을 느끼는 듯하다. 과거의 부패가 현대에 이르러서도 지속적으로 이들에게 남아있음을 암시하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감독은 현대의 장면을 통해 망각의 시대에 살던 과오를 현대에 이르러 어떤 식으로 바라보아야 할지 영화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폭력의 시대가 주는 불안과 공포는 그림자만으로 영향을 끼친다. 어쩌면 우리도 그림자가 두려워 과오를 망각하며 살아가고 있진 않은가 되짚어보게 되는 영화 <시크릿 에이전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