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오늘도 습관처럼 “모든 부분이 모여 하나의 풍경이 된다”라는 말을 곱씹는다. 나는 요즘 내게서 여러 가지의 글 카테고리를 작게, 잘게 생성 중이다. 에세이, 영화 칼럼, 일상 기사, 각종 공모전 등의 작업을 하며 여러 방면에서의 글쓰기를 실천하고 있다.
어떨 때에는 글로 ‘실험’을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지금 이 지면이 언제 어떤 식으로 변주할지 장담할 수 없기도 하고, 쓰기에 대한 고민이 그때그때마다 바뀌는 걸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민되는 부분을 연구 대상으로 놓고 하나씩 실험하는 느낌으로 써본다. 그리고 거기에서 나온 결과로 나름의 데이터를 구축한다.
그렇게 하다가 한 번씩 내가 뭘 쓰고 있는 건지 크게 헷갈리는 순간이 찾아오는데 바로 그때가 ‘글 살림’이 필요한 때다. 앞으로 할 것들도 중요하지만 거기에만 생각이 쏠려 있다 보면 매 과정이 그냥 해치우기 식이 돼버린다. 잠깐 뒤를 돌아보고 그간의 작업물을 차분히 갈무리하는 시간이 있어야 쓰고 싶은 의지를 지켜나갈 수 있다.
의욕이 넘쳤다가, 취해 있다가, 갑자기 무력감을 겪다가, 열등감에 시달리다가, 꾸역꾸역 하다가, 덤덤해지기를 반복하다보니 어느새 1년이 훌쩍 지났다. 늘 셀프 큐레이션을 하고 싶었지만 미뤄왔었다. 지금이 때인 것 같아 이제서야 쓴다. 당시의 글쓰기 고민을 가장 잘 반영한 세 편의 글을 여기에 정리해 본다. 이 글도 나. 저 글도 나. 한 편씩 데리고 오며 모든 글이 나라는 걸 깨닫는다.
1. 뱅글이를 타면서 생각했다. ‘이 장면 언젠가 꼭 써먹는다!’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7831

‘솔직한 글’에 대해 가장 고민이 많았을 때 쓴 글이다. 당시의 고민은 완급 조절이었다. 어디까지 솔직하게 이야기해야 하는지, 또 내가 겪은 자질구레한 감정을 어디까지 내보여야 적당한지 그 선을 찾는 데 집중했던 것 같다.
기대 이상으로 뱅글이는 유용했다. 이토록 자질구레한 신(scene)이지만 적어도 나만큼은 그 안에서 나를 주인공으로 세우게 됐으니 말이다. 내가 나에게 조명을 비추는, 그러니까 셀프 뮤비를 찍는 날이 점점 늘어 갔다. 요즘은 힘들 때 ‘지금 나는 MV 한 편을 찍고 있는 중이다’ 이렇게 생각한다. 자주 꺾이고 자주 힘내는 사람은 겨우 뱅글이를 타며 파이팅을 도모한다. 조바심 때문에 늘 종종거리지만 그만큼 희망도 잘 느끼는 그런 사람이 여기 있다고 이 글에 남긴다.
어쩌다 한 번 뜨겁고 대체로 미지근한 온도의 인간인 나는 위와 같이 어정쩡한 장면이 눈에 잘 밟히는 편이다. 내가 정말로 써야 하는 건 그런 장면이 아닐까 고민한다. 책을 읽다 인상 깊은 문장을 만나면 페이지의 모서리를 접는다. 그런 마음으로 언젠가 써먹을 장면들을 접어 둔다. 모서리 접어 두었던 일들을 다시 펼칠 때 약간의 부끄러움을 동반하지만 그래도 용기를 내어 언젠가는 모두 꺼내 놓고 싶다.
아직은 MV를 조금 더 찍어 봐야 알 것 같다.
결혼식에 혼자 다녀온 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느꼈던 피로감과 조급함을 글에 녹이고 싶었다. 콕 집어 설명하기 어려운 묘하고 애매한 감정을 정확하게, 구체적으로 써야겠다는 다짐도 이때 했었다. 솔직함의 적정선을 지키며 어느 정도의 메시지를 심는 작업은 여전히 어렵지만 개인적으로 공부가 많이 됐던 글이라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2. 감이라도 깎아서 다행이다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8381

읽었을 때 ‘이미지’가 선명하게 그려지는 글을 좋아한다. 이때는 사진 한 장을 생동감 있게 글로 전하다 생각하고 썼었다. 어떻게 하면 장면 구현을 맛깔나게 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던 글이다. 무뚝뚝한 나와 과일 감을 엮어 아빠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 복잡한 진심을 또렷한 이미지로 바꾸는 것이 정말 어려웠다.
우리의 손을 탄 감은 옥상에서 지금 바람 샤워를 맞는 중이다. 꼬들꼬들한 반건시로 거듭나기 위해 필요한 시간을 채우고 있다. 단단한 과육이 말랑해지는 건 여러모로 흥미로운 일 같다. 마당에서 조용히 감을 깠던 무뚝뚝이들의 시시콜콜한 얘기도 당도에 보탬이 되려나. 아무튼 올해의 반건시에게 기대를 걸어 본다. 감나무가 부디 건재하기를. 그래서 매년 감을 깎았으면 좋겠다. 이게 내 진심이다. 사랑한다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촌스러운 뚝뚝이는 세상 무미건조한 말 뒤에 이렇게 또 숨는다. 진심을 돌려 말한다. 그러고서는 안심한다. 감이라도 깎아서 다행이라고.
3. 액션 영화 하나 영업할게요 - 익스트랙션 2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4595

내가 정말로 재밌게 본 영화를 다른 사람들에게 '영업'하는 심정으로 쓴 글이다. 에디터 때 쓴 영화글 전체를 통틀어서 제일 신나게 썼던 오피니언 글이기도 하다. 화면 상단에 이 글 썸네일이 올랐던 날, 처음으로 영화 이야기를 하는 것에 욕심이 났다. 소개하고 싶은 영화의 매력을 내가 가진 화법과 잘 엮고 싶어졌다. 도입부에 공을 많이 들이는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다.
액션 영화 시청은 일종의 명상과도 같다. 때론 참을 인 세 번으로도 풀리지 않는 분노가 있는 법. 그럴 때는 격노하지 않고 적들과 대치하는 신이 넘쳐나는 작품 하나를 틀고 이렇게 대리 만족을 한다.
‘내가 당신의 멱살을 잡을 수는 없으니까요. 밉다고 사람을 쳐서는 안 되겠지요. 마음으로는 벌써 몇천 대나 때렸지만 도무지 분이 풀리질 않아 저기 저 주인공에게 나가떨어지는 악의 무리를 그냥 너라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너. 멀리 안 나가요. 잘 가세요!’
생각보다 효과가 좋다. 나를 힘겹게 한 자에 대한 소심한 복수이자 간접적인 적폐 청산이랄까. 휘몰아치는 아드레날린으로 마음이 한결 개운해진 나는 깨달음 비스무리한 것을 얻었다. ‘이야...이거 액션으로 명상이 된다?’
영화 <익스트랙션>은 ‘구출’이라는 단어의 뜻처럼 스트레스에서 사람 하나를 구해 냈다. 그리고 뒤늦게 입문하게 된 이 작품에 늦바람이 제대로 들어 여태 출구를 못 찾고 있기도 하다. 액션다운 액션을 바라는 사람들에겐 이미 성지 같은 영화. 한 번도 안 들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들은 사람은 없는 영화 <익스트랙션>.
좋은 게 왜 좋은지 설명하는 일이 이토록 영롱했던가. 이 글은 영화 <익스트랙션>에 대한 나의 열렬한 팬심이자 자발적인 영업이다.
익스트랙션 2 글을 기점으로 차근차근 영화글을 쌓아 나갔다. 그러다 문득 지금 내 화법이 다른 데에서도 통할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나를 좀 테스트해 보고 싶은 마음도 컸던 것 같다. 영화 이야기를 따로 떼어내 확장시키기로 했고 지금은 영화 매거진에서 주기적으로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오피니언 기고 때 꾸준히 쌓은 글 체력이 많은 보탬이 되고 있다. 쓰면서 잘할 수 있는 부분을 더 키워 나가기로 했다. 그런 게 또 뭐가 있나 계속해서 찾는 중이다.
에필로그

위의 1, 2, 3 글을 쓰기까지 나름의 헤매는 여정이 있었음을 '글쓰기 절망 버전'으로 대신한다. 블로그에도 한 번 쓴 적이 있는데 말이 안 되는 걸 기계처럼 마구 쓰던 시기가 있었다. 그 과정에서 글이 마음에 들지 않아 저렇게 북북 찢기도 했다. 헐크처럼 분노했던 내 모습에 후회하며 다음 날 쓰레기통에서 원고 조각을 꺼내 다시 테이프로 붙였던 것도 기억난다.
고비를 넘겼는데 이놈의 고비는 계속됐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 절망을 자주 느꼈지만 절망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여전히 일희일비하며 꾸역꾸역 나아가는 모습도 '꾸준함'의 한 종류가 될 수 있음을 쓰는 일을 통해 배워가고 있다. 내게서 믿는 구석은 그거 하나다.
어렵게 쌓고 아주 잠깐 기뻐하며 다음 지면을 맞이한다. 이 글 저 글이 모여 어떤 글에 가닿을지 나조차도 모르는 채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