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쇼타씨의 마지막 출장>은 일본인 쇼타와 한국인 대성이 우연히 마주치며 시작된다. 라멘집에서 서로의 사직서와 편지가 뒤바뀐 뒤, 두 남자는 예상치 못한 길로 들어선다. 각자의 상처로부터 도망쳐 온 이들에게 이 기묘한 인연은 현실로 돌아가기 전 거쳐야만 하는 일종의 우회로가 된다. 뒤섞인 물건의 주인을 찾아가는 여정이 결국 각자의 진심과 어떻게 맞닿게 되는지, 그 과정을 따라가 보았다.
예상치 못한 궤도 이탈

뒤바뀐 편지를 들고 한국에서 대성의 여자친구를 찾아 나선 쇼타의 계획은 첫 단추부터 어긋난다. 여자친구인 줄 알았던 여성은 사실 그녀의 친구였고, 깔끔하게 심부름만 마치고 물러나려던 쇼타의 계획은 서서히 꼬이기 시작한다.
대성의 상황도 비슷하다. 일본에서 쇼타를 대신해 사직서를 전달하려던 그의 발걸음은 어느덧 그 이상의 목적지를 향해 달리기 시작한다. 출장 중인 쇼타의 부탁을 하나둘 들어주다 보니, 여행은 어느새 서로의 일상을 대신해 주는 과정으로 바뀐다. 사무실 컴퓨터 속 자료 찾기부터 그의 아들을 만나는 일까지. 요구가 늘어날수록 두 사람의 인연은 점점 길어진다.
대성은 쇼타의 부탁을 들어주며 쉽사리 손을 떼지 못한다. 정신을 차려보니 예상치 못한 길에 들어선 자신을 발견하지만, 그는 원래의 길로 돌아가기보다 그 지점을 기점으로 조금 멀리 돌아가는 쪽을 택한다.

계획한 길이 아닌 곳을 멀리 돌아가는 것은 그리 달가운 일이 아니다. 지름길을 두고도 굳이 어려운 길을 택했다는 조급함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길을 돌아가는 것, 가장 빠른 길을 찾지 못해 더 멀고 어렵게 돌아가는 것은 사실 우리에게 너무나 흔한 일이다. 정해진 길을 따라 빠르게만 갈 수 있다면 그 누구도 방황하지 않을 것이다. 발길을 잡는 무언가가 있다면, 누구든 잠시 멈춰 서서 그것을 살필 수밖에 없다.
길을 돌아가는 것은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할 용기가 부족해서일지도 모른다. 대성은 여자친구와의 문제를 제대로 매듭짓지 못한 채, 여행을 핑계 삼아 쇼타의 부탁을 들어주는 데 시간을 쓴다. 현실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그를 우회하게 만든 것이다.
이것은 쇼타도 마찬가지다. 쇼타에게 출장은 가족 해체를 불러온 모든 문제의 근원이나 다름없지만, 그는 이번에도 출장길을 택했다. 비록 마지막 출장이라 해도, 자신을 ‘강철맨’으로 정의해 온 그는 그 외의 다른 삶을 찾을 자신이 없다. 그에게 출장길은 일터인 동시에, 가족과 자신을 마주하지 않기 위해 도망쳐온 도피처가 된다.
매우 자연스러운 부식
하지만 강철맨의 ‘강철’ 또한 언제든 망가질 수 있는 법이다. 쇼타가 이곳에 온 이유는 하수처리장 배관의 부식을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단단해 보이는 배관이 부식된다는 것은, 아무리 강력한 소재라도 언제든지 부서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쇼타의 말처럼 그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는 금속에 대해서는 잘 알았을지 몰라도, 정작 자기 자신이 부식되는 과정에 대해서는 잘 몰랐던 모양이다.

대성은 헤어진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고, 쇼타는 가족 문제로 괴로워한다. 이 지점에서 중요한 것은 새로운 화합이 아니라 사실을 수용하는 것이다. 여자친구의 마음을 돌리는 것도, 이미 다른 사람을 만나는 아내와 재결합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다. 오랫동안 피해 온 문제를 직면하고 엉킨 실타래를 푸는 과정을 견딜 인내가 필요하다. 하수처리장의 흐름을 막은 쓰레기를 치우는 것처럼, 마음을 무겁게 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꺼이 그 오물 앞으로 나아가 찌꺼기를 치워내는 과정이 필요하다.
조급함과 회피는 둘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성이 만난 집주인 할머니, 쇼타의 사직서에 충격받은 직원들, 안경이 부러진 행인 모두 각자의 문제를 안고 살아간다. 누군가는 끝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기도 한다. 하지만 등 돌리고 있던 문제에 아주 살짝 고개를 돌리는 정도의 변화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회피의 끝은 시작된다.
자신만의 흐름을 이어 나가기

이야기는 큰 반전 없이 흐르지만, 우리가 바라는 대로만 진행되지도 않는다. 평소처럼 일상을 유지해도 모든 것이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이 바로 인생이다. 영화는 누군가의 특별할 것 없는 ‘흐름’을 보여준다. 그 흐름을 어떻게 이어 나가느냐가 관건인 셈이다.
쇼타는 강철맨과 남편이라는 두 위치에서 모두 흔들리는 인물이다. 하지만 흔들림 또한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흔들리지 않는 법이 아니라, 흔들려도 어떻게든 흘러가는 방법이다. 버티기보다는 이 순간을 잔잔하게 흘려보내는 여유, 그것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직면의 방식이다. 하수처리장에서 쓰레기를 치워 물길을 트는 것처럼 말이다.
쇼타와 대성뿐만 아니라 영화 속 모든 인물은 자신만의 흐름을 가지고 있다. 물결이 엉켜 막히더라도 그것을 다시 흐르게 하는 방법을 익혀가는 중이다. 기꺼이 멈춰 서서 기다릴 여유가 있다면, 고여버린 응어리는 녹아내리기 마련이다. 비록 부식된 자국은 남을지언정, 고이지 않고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는 사실만으로 삶은 계속될 동력을 얻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