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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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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접촬영 / 《새끼-치기》, 온수공간, 2026

 

 

전시명 ‘새끼-치기’는 분얼성 식물에서 새로운 줄기가 형성되는 현상을 뜻하는 농업 용어다. 이번 전시는 유통이 어려웠던 개념적, 가변적 미디어 작품들을 소장 가능한 ‘파생 작품’으로 변모시켜 예술의 새로운 순환 생태계를 제안한다.

 

전시장 입구의 작은 카페를 지나 층별로 이어지는 동선은 마치 식물이 뿌리에서 줄기로, 다시 열매로 뻗어 나가는 과정을 닮았다. 전반적으로 활용된 소리라는 무형의 매체와 공학적 장치들은 역설적으로 작가들이 건네는 가장 내밀하고 인간적인 서사를 전달하는 완벽한 매개체가 된다.

 

1층의 비하인드 비디오 관람 공간과 작가들의 아카이브 서적 진열 공간, 그리고 오이시 카즈키의 전시로부터 동선이 시작된다. 층마다 전시된 작가와 작품은 훨씬 많았지만, 유독 시선이 오래 머문 몇몇 작업들을 중심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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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접촬영 / 오이시 카즈키, < My Shadows >(2026)

 

 

#1F: 파생되는 이미지

오이시 카즈키

 

1층에서 가장 먼저 마주한 작가 오이시 카즈키의 작품은 점토로 이루어진 정육면체 덩어리를 파내어 생긴 홈을 전개도의 일부로 사용한다. 이 전개도에 잉크를 묻히고 롤링하면, 전개도에 따라 서로 다른 이미지가 나타난다. 큐브 안에 등장하는 인간의 형상은 은유적으로 ‘나’를 지칭한다. 모든 것이 3차원 공간 안에 존재한다면 관계는 수평적이고 동등하다. 하나의 판에서 나타나는 여러 개의 그림자는 무엇이 현실인지, 혹은 현실과 그림자를 구분하는 일이 가능한지 묻는다.

 

이 작업이 흥미로웠던 이유는 하나의 덩어리에서 파생되는 이미지들이 단순히 복제되거나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매번 다른 표면과 관계를 만들어낸다는 점에 있다. 정육면체라는 획일화된 형태 안에서 생겨난 홈은 다시 전개도가 되고, 전개도는 이미지가 되며, 이미지는 또 다른 그림자로 생성된다. 이때 ‘새끼-치기’의 어원에 다시금 근접한다. 단순히 무언가가 늘어나는 현상이 아니라 하나의 물성이 다른 형식으로 옮겨가며 스스로의 조건을 바꾼다는 점에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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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접촬영 / 봄로야, < O/X bonding >(2026)

 


#2F: 언어의 치환 메커니즘

봄로야

 

2층으로 올라가면, 언어와 감각의 이동을 가시화하는 봄로야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작가는 지난 2024년 세마(SeMA)에서 진행된 인터뷰 「시각예술에서 언어를 녹일 방법들」에서 ‘그림 그리고, 글 쓰고, 노래하는’ 식의 나열형 자기소개를 견디기 힘들어했다고 말한 바 있다. 동시에 그는 ‘쓰기’를 작업의 시작점으로 삼으며, 결과가 글이 아닌 다른 매체로 표현되더라도 그것이 작업의 중요한 귀결임을 깨닫고 있다고 말한다.

 

평소 이미지를 문장화해 인식하던 작가의 습관은 이번 전시에서 ‘치환의 메커니즘’을 통해 역방향으로 출력된다. 44개의 단어가 23분 10초의 오디오 클립(비트)이 되고, 다시 사각형 기호로 치환되어 진(Zine) 속 대본에 안착한다. 전시장 이어폰 잭을 통해 들려오는 리듬은 사적인 기억을 공적인 신호로 전환하며, 독자에게 ‘읽는’ 행위를 넘어 ‘듣고 느끼는’ 언어의 가능성을 목격하게 한다.

 

개인의 기억과 집단의 흔적이 교차하는 감각을 ‘송-수신중’의 상태로 전환함으로써 언어가 생성되고 변형, 출력되는 과정 자체를 수행이라는 생동적 행위로 드러낸다. 1층 한 켠에 위치한 비하인드 영상에서 작가는 노트북에 타이핑하며 대본을 읊어내리고, 그 앞에는 언어를 리듬으로 수신하는 것을 돕는 것처럼 보이는 장치가 놓여 있다. 그것이 디제잉 기기가 맞는지 모르겠다. 여하튼 소리라는 매체와 언어라는 매체를 도형 혹은 리듬이라는 시각예술의 범위 안에서 치환하는 과정이 계속 궁금해졌다. 그녀의 책을 살 것을 그랬다. 치환된 멜로디를 계속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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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접촬영 / 유은, <안에서 안으로>, <교환일지> (2026)


 

#3F: 애도하는 귀

유은

 

3층에 위치한 작가 유은의 실험과 그 비하인드는 매우 흥미롭다. 2층의 비트가 잦아든 자리에서 3층은 학교라는 거대한 시스템 속에 깃든 숨결들을 마주하는 공간이 된다. 유은 작가는 초등학교 졸업을 앞둔 두 명의 6학년 아이들과 함께 학교라는 공간의 물성을 탐구했다.

 

국가와 닮아 있는 학교라는 추상적이고 근대적인 시스템 안에서, 아이들은 물건과 소리를 매개로 공간의 물성을 더듬는다. 작가는 이 과정을 ‘애도’라고 부른다. 6학년의 마지막을 앞둔 아이들에게 ‘끝’은 슬픔만이 아니다. 작가는 애도의 감각이 사랑과 돌봄의 기저에 자리할 때 비로소 서로의 호흡을 마주할 ‘틈’이 생긴다고 말한다.

 

비하인드 영상 속 아이의 마지막 나레이션이 가슴에 남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끝을 오롯이 마주하고 잘 보내주었을 때 비로소 시작될 수 있는 것들을 아이는 이미 알고 있었다. 작가는 이 내밀한 실험의 결과물을 ‘교환일지(물물교환)’ 시스템으로 치환해 우리에게 교환의 기회를 제공한다. 상업적인 유통을 넘어, 작가의 기억과 관람객의 무언가를 맞바꾸는 이 행위야말로 전시의 주제인 ‘새끼-치기’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따뜻한 공유의 형태가 아닐까.

 

 

기획: 카이먼, 로 (A-GOP)

장소: 온수공간 (서울 마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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