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부터 부모님께서 늘 강조하신 말씀이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나라에서 정한 법을 지키며 살아가라는 것, 또 하나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라는 것이었다. 부모님은 스스로의 직업이 진정으로 원하던 길이 아니었기에, 나만큼은 꼭 원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기를 바라셨다. 하지만 선택의 순간이 다가올 때마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결정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19살, 대학교 전공을 정해야 할 때도, 25살, 첫 직장을 선택해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단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가지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학창 시절 생활기록부에 적힌 나의 장래 희망만 봐도 그렇다. 정치인, 군인, 교사, 음악감독, 음악 평론가 등 다양한 직업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 하고 싶은 것이 많았던 나는, 어느덧 서른을 바라보는 지금까지도 여전히 하고 싶은 일이 많은 사람으로 남아 있다.
대학교에 입학할 당시에는 음악 산업에서 일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음향을 전공했다. 그러나 졸업할 즈음에는 공연 기획에 매력을 느껴 기획사에 입사하게 되었고, 3년 동안 성실히 회사 생활을 이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이 정말 내가 원하던 길일까?’라는 질문은 늘 마음 한편에 남아 있었다.
직장 생활을 비교적 이른 나이에 시작하면서 깨닫게 된 것은, 나는 한 조직에 속해 일하는 것보다 자유롭게 일하는 프리랜서의 삶이 더 잘 맞는다는 점이었다. 또한 하나의 직업에 집중하기보다 여러 가지 일을 병행하는, 이른바 ‘N잡러’의 삶이 내가 하고싶은 일을 하며 살 수 있는 방법임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직장 생활과 병행하며 친구와 함께 사업자등록을 하고, 공연 및 행사에 필요한 음향 장비와 악기를 설치하고 운용하는 일을 시작했다. 평일에는 회사에서 일하며 번 돈을 모아 장비를 구매하고, 주말에는 또 다른 나의 삶을 살아갔다.
하지만 수입의 대부분을 사업에 투자하다 보니 생활비가 부족해졌고, 일이 없는 날에는 추가적인 수입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되었다. 그러던 중 예전부터 관심이 있던 상비예비군 제도를 알게 되었고, 현재는 집 근처 부대에서 상비예비군으로 복무하고 있다.
일반적인 예비군 훈련과 달리, 부대에 출근하는 날에는 현역 장병들과 함께 훈련과 업무를 수행한다. 그날만큼은 나 역시 현역 군인이라는 책임감을 가지고 임하고 있다. 어릴 적 제복을 입는 직업을 꿈꾸기도 했고, 군 생활이 잘 맞아 부사관의 길을 고민했던 적도 있었기에, 지금의 상비예비군 생활 또한 나의 또 다른 ‘N잡’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한편, 내가 주력으로 삼고 있는 음향 렌탈 사업은 행사 수요가 많은 봄과 가을을 제외하면 여름과 겨울에는 일이 거의 없다. 이는 앞으로의 삶을 계획하는 데 있어 큰 고민이자 불안 요소였다. 그러던 중 지난겨울, 회사를 퇴사하고 대만으로 어학연수를 떠나게 되었다. 대만은 이전부터 여행으로 여러 번 방문하며 애정을 갖게 된 곳이었고, 언젠가는 장기간 머물러 보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해왔다.
처음으로 겨울에 대만을 찾았을 때, 이전보다 훨씬 많은 한국인 관광객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 모습을 보며 여름과 겨울에도 대만을 찾는 수요가 충분하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고, 자연스럽게 새로운 가능성을 떠올리게 되었다.
특히 몇 개월간 대만에 머물며 느낀 것은, 아직 국내 여행자들에게 충분히 알려지지 않은 아름다운 장소와 그곳에 담긴 이야기들이 무척 많다는 점이었다. 단순히 유명 관광지를 방문하는 것을 넘어, 내가 직접 경험한 대만의 다양한 모습들을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점점 더 커지게 되었다.
그렇게 앞으로는 봄과 가을에는 음향 사업에 집중하고, 여름과 겨울에는 대만에서 가이드로 활동하는 삶을 구체적으로 그리게 되었다. 현재는 대만 가이드 활동을 위해 필요한 대만 정부 주관 자격증 취득을 목표로 공부를 이어가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방향이 조금씩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내가 이토록 ‘N잡러’의 삶을 꿈꿀 수 있었던 데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경험이 있다. 바로 아트인사이트 에디터로 활동했던 시간이다. 학창 시절 음악 평론가를 꿈꾸기도 했던 나는, 6년 전 에디터 활동을 시작하며 음악과 관련된 글을 꾸준히 기고해 왔다.
글을 쓰며 나의 생각을 정리하고, 음악을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어릴 적 품고 있던 수많은 꿈들 중 하나를 직접 이루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비록 전업 평론가는 아닐지라도,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나만의 방식으로 기록하고 나눌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었다.
이러한 경험들은 ‘하나의 길만이 정답은 아니다’라는 확신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주었다. 여러 가지 일을 통해 각기 다른 나의 모습을 발견하고, 그 모든 조각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나씩 삶에 더해가며 살아가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