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한 독립 서적 북 페어에 방문했다.
자유로운 편집 디자인을 눈에 담아두고 싶다는 동기에서 참여했지만, 정작 내 마음을 강하게 이끈 것은 한 사진집이었다. 사진가 최요한의 <어서 오십시오>였다.
생소한 경관을 담담하게 담아내는 스타일이 맘에 들어 집어 올리게 됐다. 나중에서야 알게 된 사실은 이것이 한국의 다국어 경관을 담아낸 책이라는 것이었다. 사진집에서는 예상치 못한 광경들을 마주하게 된다.
단순히 낯선 언어로 쓰인 간판뿐만이 아닌, 길에서 흔히 스쳐 지나가는 사소한 풍경들을 사진집 안에선 만나볼 수 있었다.

그 겸손함이 좋았다.
주택 사이 좁은 골목, 건물 위 수신기, 길고양이, 길가에 놓인 꽃 등. 일반적으로 ‘멋지다’라고 여겨지는 것들의 대척점에 있는 일상의 광경을 볼 수 있었다. 물론 강박적으로 잘 정리된 도로, 건물, 높거나 독특한 모양의 빌딩 역시 많은 이들의 노력의 산물인 데다 나름의 멋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좀처럼 누군가의 카메라에 담기지 않거나, ‘인상적’이라고 여겨지지 않는 광경은 오히려 나에겐 더 큰 의미로 다가온다. 그런 공간에선 많은 이들이 활보하진 않지만, 조용히 사색할 수 있다. 어떤 사연이 깃들어 있을지 상상해 볼 수 있다.
정답을 강요받지 않은 의외의 아름다움과 자유로움을 만나볼 수 있다.

성적, 취직, 돈, 외모 등 온갖 강박 속에 살아온 나에겐 이 사진집에서 느껴지는 ‘그저 존재함’도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한국 곳곳에 생각보다 오랜 기간 자리를 지켜온 다국어 간판들이 그랬다. 여러 정책적 논쟁을 떠나서, 그곳엔 그저 살고자 하는 의지가 스며 있었다. 스포트라이트 밖에서도 꿋꿋이 존재하는 삶의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한편 그곳들을 편견 없이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이유는 하나 더 있었다. 그중엔 방문했을 때 의외로 생각보다 잘 맞는 곳들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서울 동대문의 러시아 거리라든지. 특히 그곳의 케이크는 이름이 나 있으니 여력이 된다면 방문해 보길 바란다.

난 이 사진집에 담긴 공간들이 ‘소외됐다’고 표현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분명 어딘가의 사람 또는 길가 생명들의 보금자리였을 것이고, 그 온기만으로 충분히 내 ‘곁’에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삶과 그 의지에 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요즘, 그 증거를 뚜렷이 보여주는 책은 한층 더 뜻깊다고 여겨진다.
더 나아가, 다수의 문법에서 조금 벗어나더라도 신념을 굳게 믿고 지키면 나름의 아름다움을 발하게 된다고 믿게 되었다. 나의 신념이 얼마나 멋진지, 얼마나 잘 지키고 있는지 타인과 경쟁하다가는 결국 절망하고 꺾일지 모른다. 신념은 자신만의 것이어도 된다. 어차피 완전히 이해하는 타인이란 존재할 수 없다. 굳게 믿는 것은 존재하게 하고, 곧 그 굳건함이 아름다움으로 승화할 것이다.
<어서 오십시오>는 그런 내 나름의 신념을 다시 확인할 수 있는 사진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