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처음 펼친 것은 비행기 안에서였다.
한 시간 반이면 목적지에 도착하는 후쿠오카행 비행기. 3박 4일의 여행 동안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면 책을 읽었다. 딱히 두껍지도 어렵지도 않은데, 피로에 지쳐있다보니 읽는 속도가 자꾸만 느려졌다. 하지만 여행 중이 아니었더라도 쉽게 책장을 휙휙 넘기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런 이야기였다. 돌이켜보면 그렇게 두텁지도 복잡하지도 않은데, 그렇다고 쉽지도 않은 것들. 결국은 넘어가지 못하고 머물게 되는 것들. 책은 감정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림과 화가의 생애를 빌려서.
여행을 하는 동안 나는 복합적인 감정 속에 있었다. 외국 느낌은 덜하다지만 어쨌든 해외여행을 왔다는 기대, 내가 여행을 이끌어야 한다는 부담, 여행이 끝나면 방학도 끝난다는 사실에 대한 약간의 절망, 학과 활동에 참여하며 작성 중인 소논문에 대한 스트레스까지. 이국의 야경을 뒤로하고 숙소에서 책을 펼치면 내 심경만큼이나 얽혀있는 이야기들이 밤마다 대화를 건네왔다.
허나영 작가의 신간, <바람 부는 날이면 그림 속으로 숨는다>와 만나는 시간이었다.
책을 읽으면 언제나 작가 소개와 목차를 먼저 확인하곤 한다. 이번 이야기는 아홉 개의 날씨로 이루어져 있었다. 불안하게 안개가 끼고, 우울함의 바람이 부는 날. 구름 아래 그늘이 드리우고 비에 마음까지 젖어버린 날. 더는 버틸 수 없는 폭풍이 치더라도. 별은 빛나며 해는 다시 떠오른다고 목차에서부터 속삭이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제법 감성적인 글을 만나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사락사락 종이가 넘어갈 때마다 마주한 문장들은 오랜 기간 겪어온 감정을 담담히 풀어놓았다.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숨기지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겪은 불안과 성공을 향한 욕망, 하염없이 버티고 달리다가 결국 신체적·정신적으로 무너진 순간까지도 숨김없이 기술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결국 그것은 전혀 무관한 타인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울과 불안, 스트레스, 끊임없이 반복되는 궤도 위에서 지쳐가는 건 현대인들에게 이미 흔한 일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독자들을 책 속 미술관으로 초대한 저자는, 자신의 마음에 맞닿아왔던 작품들 앞으로 우리를 이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작가의 삶을 이야기한다. 친구를 잃은 이후 피카소의 ‘청색 시기’에는 슬픔과 우울감이 묻어나온다. 아버지의 성경책과 자신의 애독서를 함께 그린 고흐의 <성서가 있는 정물>에는 부모님과 본인을 향한 복잡한 감정이 서려있다. 사랑과 상실의 고통을 담은 뭉크의 작품과, 인상주의를 상징하는 화가가 된 모네의 선택을 떠올리다보면 정말 미술관에 온 것처럼 잠시 호흡을 고르고 그림을 돌아보게 되었다.
사실 제목에서는 ‘그림’을 언급하고 있지만, 책을 읽으면서 더 와닿은 것은 작품 이면에 새겨진 화가의 생애였다. 책장을 넘기면 넘길수록 ‘그림 속으로 숨는’ 것이 아니라 그림 뒤의 화가에게 대화를 건네기 위해서 모퉁이를 돌아 조심스럽게 걸음을 내딛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낯선 감각에 조금 두리번거리며 걷다보면 나의 감정과도 만나게 된다. 한구석에 쌓아두었던 감정들이 같은 결의 이야기를 마주할 때마다 웅성대며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그림을 읽는 일만으로 얽힌 실타래가 풀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느릿느릿 무언가를 들여다볼 수는 있었다. 그것이 작품 너머 화가의 삶이든, 저자의 진솔한 경험이든, 혹은 나 자신의 이야기든 간에. 때로는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법이다.
이야기의 끝물, 에필로그에 다다르자 책의 저자가 웃으며 출구를 안내한다. 저는 이 미술관에서 조금 더 행복해졌는데, 독자님은 어땠나요? 라고 묻는 것 같다. 아직은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내게 언제든 다시 방문하라며 티켓을 건네준다. 그렇게 천천히 책을 덮으면, 200페이지가 조금 넘는 한 뼘짜리 티켓이 내 손에 들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