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이거 지금 안 먹으면 지옥 가서 다 비벼먹어야 해.’ 편식하거나 음식을 남기는 아이에게 양육자가 자주 하는 말이다.
이 말이 음식뿐만 아니라 문화예술에도 적용이 된다면 과연 어떨지 나는 가끔 생각해보고는 한다. 내가 죽기 전까지 미처 다 못 본, 완독을 하지 못하거나 아예 시작조차 못한 영화와 책과 게임 등. 그 모든 것을 마무리하기 전까지 안식을 취할 수 없는 지옥이 있다면 어떨까? 아마 나는 영겁의 시간 동안 밀린 페이지를 넘기고, 엔딩 크레딧을 지켜보며 보지 못한 장면들을 꾸역꾸역 삼켜내야 할지도 모른다.
현재 내 책장에는 책이 가득 쌓여있는데, 몇 년 전에 사왔더라도 아직까지 안 읽은 것들이 수두룩하다. 현실뿐만 아니라 전자책 포털, 인터넷 쇼핑카트에도 아직 결제하지 못한 것들이 넘칠 만큼 쌓였다. 이번 휴일엔 반드시 하나라도 해치우자 라는 일념으로 책장에 들어서지만, 어떤 책들은 몇 년째 쌓인 먼지조차 털지 못한 채 그대로 남아있다. 그럴 때마다 책등에 적힌 제목들이 나를 꾸짖는 듯한 기분에 휩싸이곤 한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혹여 내 취향과 맞지 않을까봐 꺼려지기도 하며, 차라리 이전에 봤던 콘텐츠로 다시 돌아가는 경우도 있다. 미루기만 하는 이 현실에 너무나 진절머리가 나서 리스트를 만든 적이 있다. 향후 감상하기로 다짐한 수많은 것들을 딱 100개로 정리했었는데, 아직까지 절반도 보지 못한 것 같다.
리스트는 줄어들기는커녕, 해가 갈수록 더 늘어가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한다.
분명 누군가 시켜서 보는 것도 아니며 노동이 될 수도 없으니 그냥 안보면 되지 않을까. 그런 식으로 혼자 생각해봐도 찝찝함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길게 사는 동안 언젠가 분명 보게 되리라 생각을 하면서도 초조해진다. 왜냐면 어떤 것들은 지금 시기에 봐야 가장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재미있는 것들이 지금은 재미없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예술에도 유통기한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적의 감상기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 같다. 예전에는 재미있던 것들이 지금은 재미없다고 느껴지기도 하는 이유는, 작품이 변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내 안의 시절이 흘러가 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가끔씩 나는 오랫동안 좋아했던 여러 콘텐츠들을 모아서 죽 둘러볼 때가 있다. 나의 취향 변천사를 확인하다보면, 현재 좋아하는 것들은 이전에 어떤 계기를 통해서 애정을 갖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고, 이전에 좋아했던 것과 비슷한 콘텐츠를 좋아하게 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과정을 관찰하는 것도 소소한 재미가 된다.
그러다 보면 현재의 나는 절대 좋아할 수 없는, 오직 그 시기에 봤기 때문에 좋아하게 된 작품들이 몇몇 보인다. 또는 반대로, 예전엔 난해하고 지루하기만 했던 문장들이 나이가 들어야 비로소 가슴에 박히는 경우도 있다. 나이가 더 들어야 좋아하게 된 작품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결국 내 책장의 먼지 쌓인 리스트들은 실패의 기록이 아니라, 내가 그것들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해지기를 기다려주는 기다림의 목록일지도 모른다.
지옥에서 비벼 먹어야 할 숙제가 아니라, 언젠가 찾아올 가장 적절한 순간을 위한 예비된 선물이라 생각하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