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마지막 무렵이 되면 별다른 결심을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지난 시간을 돌아보게 된다. 올해는 얼마나 잘 살아왔는지, 또 무엇을 남겼고 무엇을 놓쳤는지.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한 해는 어땠는가?
우선 나부터 말하자면 올해는 분명 힘든 해로 기억될 것이다. 행복한 기억보다는 쓰라린 기억이 더 많이 남아 있다. 나중에 2025년을 돌아보면 ‘잠시 쉬어간 해’라는 표현이 가장 먼저 떠오를 것 같다. 다만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스스로를 돌아볼 때 덜 힘들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들어 지인들로부터 힘들 때는 어떻게 극복하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하나둘 사회로 나가면서 다들 각자의 자리에서 버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양이다. 글쎄, 나는 과연 어떻게 이 시간을 지나오고 있을까. 누군가 묻지 않았다면 굳이 들여다보지 않았을 질문이라 답을 찾는 데에 꽤 시간이 걸렸다.
“크리스마스가 연말에 있는 이유는 ‘한 해의 마지막이 슬픈 사람들을 위해서가 아닐까?’ 싶었어요. 잎은 피고 졌는데, 아직 나는 제자리인 것 같고 앙상한 나뭇가지를 보며 괜스레 센치한 척하다가도 그 나무에 리본이라도 걸면 왠지 축하받는 기분이 들잖아요.”
얼마 전 좋아하는 유튜버의 영상에서 이런 문장을 읽었다. 모두의 연말이 따뜻하고 행복하게 기억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사람들도 분명 있을 거라는 걸. 춥고 외로운 연말을 보내고 있을 누군가를 떠올리며 이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글이 큰 위로가 되지 않더라도 괜찮다. 다만 '아, 누군가는 힘든 시간을 이렇게 보내는구나' 하고 하나의 방법으로만 받아들여 주길 바란다.
성격
지인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힘듦의 정도는 사건 그 자체보다 그것을 얼마나 크게 받아들이는지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을 발견했다.
나는 평소에도 무던하고 덤덤해 보인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남들이 보는 것만큼이나 실제로도 그런 편인 것 같다. 힘든 날에는 나 역시 꽤 괴로워한다. 그렇지만 생각보다 빠르게 그 상태를 빠져나오는 편이다. 사람인 이상 상처를 받지 않을 수도 없고,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을 수도 없다. 다만 중요한 것은 그 상황에 얼마나 오래 머무느냐인 것 같다. 나는 감사하게도 하루만 지나면, 아니 몇 시간만 지나면 감정이 옅어진다. 감정을 깊지 않게, 오래 붙들고 있지 않는 무던한 성격이 이런 상황에서는 오히려 도움이 되기도 한다.
이건 의지나 노력이 개입된 결과라기보다는 성격에 가까운 것 같다. 모두가 이런 성향을 가질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그렇지 않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아마 여기까지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이 방법이 쉽게 와닿지 않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미련 없이 다른 방법으로 넘어가도 좋겠다.
관심사
내가 우울에 오래 머무르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힘들 때 비교적 곧바로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들이 곁에 있기 때문이다. 목 끝까지 차오른 말을 시원하게 뱉어내는 것만으로도 감정의 밀도가 한결 옅어질 때가 있다.
물론 늘 그런 환경에 놓여 있는 것은 아니다. 괜히 털어놓기가 미안한 날도 있고, 굳이 이 마음을 주저리주저리 설명해야 하나 싶은 순간도 있다. 그럴 때는 다른 방식의 출구가 필요하다. 누군가에게 기대는 대신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리는 것이다. 그것이 취미이든, 최근에 빠진 관심사이든 상관없다. 중요한 건 다른 감정이 들어올 자리를 하나 더 만들어주는 일이다.
아마 이 글을 읽고 있는 많은 사람 역시 문화예술을 취미로 삼고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렇다. 문화예술뿐만 아니라 본인의 관심사를 하나씩 알아보고, 공부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생각이 분산된다. 그 과정에서 스트레스 역시 생각보다 쉽게 해소되기도 한다. 관심사가 여러 갈래로 나뉘어 있으면, 한 곳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다른 곳으로 흘려보낼 수 있다. 모든 감정이 하나의 통로로만 빠져나가야 할 때 사람은 쉽게 막힌다. 그래서 나는 의식적으로라도 시선을 자주 옮기려고 한다.
태도
앞에서 이야기한 방법들은 어디까지나 임시적인 방편이자 꽤 개인적인 요령에 가깝다. 힘든 순간을 지나오기 위한 근본적인 힘은 결국 삶을 어떤 태도로 바라보고 있는가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나는 삶이 주어진 사실에 종종 고마움을 느끼는 사람이다. 아주 작고 사소한 것들로도 금방 행복해질 수 있다는 점이 지금의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주었다. '고작’이라는 수식어를 붙여도 이상하지 않을 법한 장면들에도 쉽게 행복을 느낀다. 썩 대단하지도 않고, 특별할 것도 없다. 그런데도 나는 이런 순간들을 마주하고 나면 뾰족하게 날 서 있던 감정들이 조금씩 둥글어지는 것을 느낀다. 삶이 아주 나쁘지만은 않다는, 어쩌면 오만할지도 모를 생각을 하면서.
적어도 삶에 대한 태도만큼은 희망적으로 바라보는 편이 삶을 살아가는 데는 분명 도움이 된다고 느낀다. 실패하거나 예상치 못한 어려움이 닥쳐도 앞으로 더 행복할 일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면 비교적 빨리 다시 일어나게 된다. 삶에 굴곡이 없다면 작은 성취에서 기쁨을 느낄 수 있을까. 어려움이 없었다면 지금의 평온이 이렇게 반갑게 다가올 수 있을까.
물론 힘든 순간이 힘들다는 사실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오히려 충분히 힘들어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 감정에 충분히 빠져본 사람만이 벗어나고 싶다는 의지를 가지게 되고, 그 감정이 옅어진 다음 날에는 또 무사히 하루를 넘겼다는 성취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삶에는 생각보다 아름다운 순간들이 많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은 늘 기쁨의 얼굴로만 나타나지는 않는다. 슬픈 순간도, 화내는 순간도, 울적한 순간도 모두 삶의 단면일 뿐이다. 그 단면 하나만을 떼어 놓고 그것이 전부라고 믿지 않았으면 좋겠다. 뻔한 말처럼 들릴지 몰라도, 대부분의 일은 정말로 시간이 해결해 준다. 그리고 그 모든 순간은 결국 지나간다. 나중에야 알게 되지만, 많은 끝은 또 다른 시작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덧붙이자면, 나는 후회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나는 아마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지금의 나는 결과를 알고 있으니 “왜 그땐 그랬을까”라고 자책할 수도 있지만 당시의 나는 그 결과를 알지 못했다. 주어진 조건과 정보 안에서 최선을 다해 내린 선택이었다. 그래서 의식적으로라도 과거를 너무 자주 들추지 않으려고 한다. 배움과 교훈을 얻기 위한 적당한 회고는 필요하지만, 현재의 나를 괴롭히기 위한 도구로 과거를 사용하는 건 그다지 생산적이지 않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라면, 지금의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앞으로의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생각하는 편이 훨씬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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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틴다는 것은 끝까지 이를 악물고 견디는 일이 아니라 중간중간 숨을 돌릴 수 있는 방법을 아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 정도의 태도만으로도 우리는 생각보다 꽤 오래, 그리고 무사히 이 시간을 지나갈 수 있는 힘을 얻는다. 또 가끔은 그 사실 자체가 위로되기도 한다.
그러니 올해를 유난히 힘들게 보낸 이가 있다면, 이번 해는 잠시 숨을 고르기 위한 해였다고 생각해도 좋겠다. 그리고 삶이 건네는 작은 순간들이 있다면, 가능한 한 자주 붙잡아보며 다음을 고민해 보자. 그 순간들이 지금 당장 답을 주지는 않더라도 다음으로 나아갈 힘을 아주 조금은 남겨줄 것이다. 오늘을 무사히 지나고 있다는 사실과 충분한 날들이 아직 남아있다는 것을 잊지 않으면서 각자의 속도로 마무리하는 한 해가 되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