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은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 위를 덩그러니 표류하는 기분이다. 무엇을,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거나 홀로 남겨진 것 같을 때마다 그런 기분이 든다. 사람이 없는 부분을 찾는 게 더 힘든 거리의 한 복판에서도 그럴 때가 있다. 이 많은 사람의 무리에 섞여 있음에도 어쩐지 외롭다. 나는 시끄러운 차가 돌아다니고, 누군지도 모를 사람들이 사방에서 쏟아져 나오는 이 회색빛 바다 위를 표류한다.
중지; 부재하여야 깨닫는 것
“그 아이가 곁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물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떠난 노인은 자신의 배 위에서 이 한 문장을 끝없이 반복한다. 해와 달리 뜨고 지기를 몇 번이고 반복하는 동안에도 노인은 그 말만을 되뇌었다. 처음에는 약간의 그리움이었고, 그 마음이 점점 커지자, 이윽고 분노가 되었으며, 다시 식으면서 그리움으로 돌아왔다. 가열과 냉각의 반복 속에서 타올라 사라져 가는 것은 노인이다. 자신으로부터 자신에게로 순환하는 고리 속에 타자는 없다. 그렇다면 타오를 것은 자신뿐이다.
부재라는 충격이 가해지고 나서야 노인은 자신도 모르게 마놀린을 자연화시키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마놀린의 언제나 자신을 찾아오는 작동 방식은 당연시되었고, 그 관계성 속에 타자라는 요소는 없었다. 부재라는 충격으로 깨진 자아 덕분에 마놀린이라는 타자는 존재를 되찾았다. 그 존재의 자리가 비어버려 위태롭게 흔들리던 노인의 자아는 마을로 돌아와 마놀린이라는 축을 다시 얻어 균형을 바로잡는다. 노인이 노인인 것은 마놀린이 노인이 아니기 때문임을 모르고 있는 것은 우리들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는 모두 노인이다. 각자가 자신으로부터 자신에게로 순환하는 말만 반복한다. 관계의 화살촉은 안으로 파고드는 소용돌이를 그리며 한 방향으로 움직인다. 소용돌이를 벗어나 밖으로 향하는 화살표는 없다. 밖으로부터 날아오는 화살표는 소용돌이의 맹렬한 회전력으로 튕겨낸다. 무한동력은 불가능하다. 전체로써 순환하지 않는 흐름은 언제고 멈춘다. 소용돌이가 멈추고 흐름이 사라지는 순간 소진과 권태가 우울이라는 녀석을 품에 안고 슬그머니 우리에게 머리를 들이민다.

만새기; 나를 낚아 올려라
바다로 나온 노인은 이윽고 오로지 만새기만을 쫓는다. 바리바리 챙겨 온 낚싯줄과 체력, 허락된 시간 전부 만새기를 향한다. 노인에게 만새기는 그렇게 해서라도 낚아 올려 승리를 인정받고 싶은 존재다. 그런 만새기를 갑자기 어디서 굴러먹다 왔는지도 모를 상어 무리가 노리고 있으니, 화가 나지 않을 턱이 있을까. 당연히 노인은 갑작스럽게 자신의 투쟁에 끼어들어 인정의 대상을 위협하는 상어의 대가리에 분노를 담아 작살을 쑤셔 넣는다.
노인을 분노케 한 것은 상어가 위협한 것이 만새기가 아니라 인정으로써 자신을 증명해야 할 대상을 노렸음이다. 노인은 반드시 만새기를 배 위로 낚아 올려 승리를 보여줘야 한다. 그건 단순히 물고기 한 마리를 낚는 게 아니라 자신을 증명하고 인정받는 싸움이다. 만약 상어가 만새기를 물어 죽여버리면 인정의 대상이 사라져 버린다. 존재 증명의 기회를 상실한 이가 그 허망함을 분노로 바꿔버리는 것인 당연한 반사 작용이다. 내가, 이 세상에 있음을 인정받을 수 없도록 방해하는 존재를 너그러운 마음으로 품고서 용서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 것 같은가.
바다; 만물로부터 만물에게로
바다에서는 고래도, 상어도, 그리고 만새기도 그저 헤엄친다. 대서양에 있는지 아니면 태평양에 있는지 생각하지 않는다. 이 바다가 얼마나 깊은지도 고민하지 않는다. 바다 위의 태양은 자신이 비추고 있는 게 물고기인지 물인지, 혹은 사람인지 배인지 구별하지 않는다. 바다 위로 부는 바람은 자신이 돛을 밀고 있는 건지 표면에 물결을 일으키는 건지, 혹은 날치를 날려 보내고 있는지 따지지 않는다. 물고기는 그저 헤엄치고, 태양은 그저 빛나며, 바람은 그저 분다. 모두가 있는 그대로 그렇게 받아들인다.
그러니 바다에는 외로운 것들이 없다. 자신의 틀로 세상을 바라보며 그 속에 대상을 끼워 맞추려 하지 않는다. 그 안에 맞다면 맞는 것이고 맞지 않는다면 삐져나온 대로 그렇게 둔다. 우리와는 다르다. 내가 가진 틀에 맞지 않는 것은 오류로 치부하고, 보이지 않는 부분은 어떻게든 파고들어 살펴보려 하고, 필요하다면 이리저리 깎아서라도 나의 틀에 맞춰 넣으려고 하는 우리와는 다르다. 그 모든 수고가 실패하면 방향을 돌려버리는 우리는 아무것도 남지 않아 언제까지나 외롭다.
바다로 가자. 바다의 존재들로 살아가자. 불어오는 바람을 맞이하고, 내리쬐는 햇살을 만끽하고, 튀어 오르는 물고기를 바라보자. 적당한 더러움만 걷어내고 흐릿한 것은 흐릿하게 두고 살아가자. 모든 걸 다 내 눈앞에 밝히려고 하지 말자. 지나치게 깨끗한 것은 되려 오물을 뒤집어쓴 더러움보다 위험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