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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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기회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어 최근 예술 쪽 업무에 종사하거나 현직 작가로 활동하는 분과 연락이 닿게 되는 일이 많았다. 다양한 예술 학과를 전공하여 작가와 예술가, 창작자로 활동하는 모습을 보면서 괜시리 내 가슴이 다 두근거렸다. 그러던 중 한 작가님의 말씀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전공과 상관없이 모두가 예술을 할 수 있다면 좋지만, 예술에 대한 존중은 반드시 필요하다." 최근 많은 사람들이 시에서 예술 지원을 받으면서 활동할 수 있게 된 만큼 전공과 무관한 이들의 참여율은 점점 높아만 갔다. 물론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예술에 대한 의미가 퇴색되거나 단순히 상업적인 용도로 사용되거나 예술 그 자체가 가진 영향력을 존중하지 않는 등 역효과를 일으킬 수 있는 몇 가지 사례를 두 눈으로 보며 '진정한 예술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을 갖고 살아왔다. '예술' 그 자체와 '예술을 하는 것', 즉 행위와는 또 다른 차이가 있음에도 이에 대한 구분은 점점 불명확해지고 대 AI시대에 접어들며 예술은 점점 우리가 알 수 없는 형태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박원재 작가의 <예술은 죽었다(ART IS DEAD)>의 내용 또한 우리가 '예술'에 대하여 깊은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작품이자 통찰력 깊은 칼럼이었다. 예술을 어떤 방향에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떤 시선으로 보느냐에 따라 편차가 상당한 만큼 <예술은 죽었다>에서는 단순히 예술이 의미적으로 본질이 흐려지는 순간을 다루는 것 뿐만 아니라 왜 극단적으로 '죽는다'는 표현을 쓰며 예술에 대한 어떠한 비판을 하고 있는 것인지 자세하게 알려주는 칼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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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죽었다!"

 

작품 첫 시작부터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시작하는 문장이다. 예술은 '죽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도대체 무엇 때문인지 작가의 의도를 짐작하기 어려운 문장이었다. 예술이 현대 속에서 의미적으로 퇴색되어 죽었다고 표현하는 것인지, 예술가들이 예술의 상업적인 이용에 집중하기 시작하면서 예술 그 자체의 본질이 흐려지게 되어 죽었다고 표현하는 것인지, 현대에 들어서며 기술의 발전으로 인하여 누구나 예술을 하게 되어 고전 예술이 갖는 의미가 퇴색된 것인지 아직은 알 수 없는 아리송한 선언이었다. "... 우리가 그를 죽였다! 우리 모두가 그의 살인자다! 하지만 어떻게 우리가 그런 일을 저질렀단 말인가?"

 

작가는 예술의 방향을 결정짓는 것이 소수의 엘리트 집단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 소수의 엘리트 집단이 예술의 가치를 입맛대로 정의하고 어떤 작품이 중요한지 주관적인 판단에 따라 결정하며 시장과 평론의 흐름을 좌우하는 것에 회의적인 관점을 보여준다. 예술은 소수의 손에 정의 되는 것이 아니라 본래 사람들의 삶과 감정을 연결하고 서로 다른 이들을 하나로 묶는 힘이라 여기는 작가에게 이는 마치 '이단'이자 '모욕'처럼 느껴졌을 것이라 확신한다.

 

예술은 왜 중요할까? 작가가 세상과 스스로에게 던진 물음에 대한 답을 <예술은 죽었다>를 통해 표현하고자 한 것이 느껴졌다. 단순히 예술의 현주소를 전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예술이 우리의 삶과 어떻게 다시 연결될 수 있는지, 서로 다른 우리를 이어주는 다리가 될 수 있는지를 탐구하는 여정을 파헤치는 것이다.

 

나 또한 다시 한번 묻고 싶다. '예술은 왜 중요할까?', 대 AI시대에서 예술은 누구나 표현할 수 있고 휘두를 수 있는 무언가가 되어버렸다. 제대로 된 규제나 정책 없이 마구 휘둘러지는 예술은 인간만이 표현할 수 있는 영역이었음을 잊고 더욱 상업적이고 양산적인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물론, 상업적인 예술이 틀렸거나 잘못되었다는 말이 아니다. 모든 예술은 사회와 귀결되고 상업적인 부분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은 당연지사다. 이는 특히 현대에 들어서 더욱 심각해진 문제다. 하지만 예술에 대한 존중이 없는 예술은 우리가 과연 예술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 예술에 대한 존중이 있는지 없는지부터 따져야 할 판국에서 <예술은 죽었다>는 이 혼돈 속의 예술의 죽음을 표현하고자 나온 말일 것이다. 어느 정도는 나도 동의하는 부분이 있기도 하다. 현재 아트인사이트에도 나 자신의 신체 부위를 활용하여 예술 작품을 만들고자 하고 수많은 작가를 만나며 그들의 사고방식을 익혀온 내게 예술은 늘 복잡하다기 보다 친숙하고 가까이 있는 듯 하면서도 막상 정의하려면 누구보다 무엇보다도 먼 존재에 가까운 것이었다. '예술이 삶에 어떻게 돌아오는지'에 대해 파헤치는 <예술은 죽었다>의 작가가 예술이 삶과 연결되었을 떄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여러번 강조하는 것 처럼 나에게도 예술은 삶과 긴밀한 연결을 가질 때 비로소 그 의미가 극대화되고 의미가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예술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고 다름을 포용할 수 있게 하는 수단이자 힘이 되어주며 세상을 그려가는 데에 수많은 기여를 하는 분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종종 우리는 그런 예술의 소중함을 잊고 존중을 잊고 살아간다. 작가는 프롤로그에서 이러한 물음과 코멘트를 던진다.

 

 

"... 이제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예술 없는 세상에서 살 것인가, 아니면 예술을 통해 우리의 삶과 세상을 다시 그려낼 것인가? 이 선택은 단순히 예술의 운명만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우리의 인간성, 우리의 문화, 그리고 우리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대한 선택이다. 예술의 부활은 우리 곧 자신의 부활이며, 우리 사회와 문명의 새로운 시작이 될 것이다. 우리는 지금 갈림길에 서 있다. 한쪽은 예술이 죽은 황폐한 세계로 이어지고, 다른 한쪽은 예술을 통해 재탄생한 풍요로운 세계로 향한다. 우리의 선택이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예술은 죽었다. 하지만 우리가 원한다면, 그것을 다시 살릴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 자신도 새롭게 태어날 수 있을 것이다."


<예술은 죽었다>, p.12-13

 

 

"디지털 기술의 발달은 예술 창작과 감상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누구나 쉽게 이미지를 만들고 공유할 수 있게 되면서 예술가의 고유한 역할이 흐려졌다. 또한 인터넷을 통한 정보의 범람은 예술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보다는 피상적인 소비를 조장했다. 현대 사회에서 예술과 관객 사이의 소통 부재 또한 예술의 죽음을 가속했다. 난해하고 개념적인 현대 예술은 일반 대중과의 거리를 벌렸고, 이는 예술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졌다. 예술이 더 이상 사회와 소통하지 못하고 자기 창조적인 영역에 갇히면서 그 생명력을 잃어갔다. ..."

 

<예술은 죽었다>, p.19

 

 

최근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발전하는 AI 기술력에 감탄하면서도 경외심과 두려움을 느끼던 내게 작가의 말은 뒤통수로 때린 듯한 느낌이었다. '생명력을 잃어간다'니, 단순한 개념인데 왜 잊고 살았을까? 예술은 고유의 역할이 흐려지는 순간부터 예술이라는 본질을 잃고 깊이 있는 이해 대신 단순하고 피상적인 소비를 조장하며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예술에서 누구나 사고 팔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존중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형태로 예술이 다뤄지게 되며 예술이 '죽었다'고 끊임없이 표현될 수 있는 것이다. 예술을 보존하고 연구하기 위해 존재해야 하는 미술관이 동시대성과 분리하는 공간이 되버리고, '예술을 위한 예술'이 존재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작가는 한탄을 담아 "예술은 죽었다"는 표현을 자조적으로 반복한다. 특히 엘리트의 전유물로 남게 된 예술의 결정적 계기는 대중과의 직관적인 소통보다 삶의 구체적인 맥락에서 멀어진 예술의 모습과 철학적 탐구 및 개인적 표현에 치중하게 된 모습이 한 몫했을 것이다. 작가의 말에 어느 정도 동의하면서도, 개인적 주관과 철학적 사유는 예술을 한 편으로는 한 차원 높은 시점에서 바라보고 더욱 새로운 시각과 넓은 경험에서 바라보게 하는 계기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물론 엘리트주의로 이어져 배타적이고 배척으로 흘러간다면 우리가 의도한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올 것이다. 이를 적당히 경계하며 에술을 향유하고 사유하는 것이 현 시대의 예술을 바라보는 우리에게 주어진 주요 역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

 

<예술은 죽었다>에서 내게 많은 부분에서 영감과 반성, 생각할 거리를 제공해준 부분은 후반부였다.


 

"... 예술은 이제 단지 이미지가 아니다. 그것은 나를 흔드는 체험이고,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사건이며, 우리를 다시 '상대'로서 연결시키는 대화다. 그리고 이 대화는 감상이 아닌 참여에서 시작된다. 작품이 대상에서 상대가 될 때, 우리는 다시 살아 있는 예술을 마주하게 된다. ... 예술에서는 흔히 창작자와 감상자, 전시자와 관람자로 구분 짓는다. 그러나 예술이 실제로 '사건'이 되는 순간, 이 경계는 무너진다."

 

"... 그래서 예술은 '보는 것'을 넘어 '함께 이루는 것'이다. 무대의 연주자는 혼자 음악을 완성하지 않는다. 청중의 호흡, 긴장, 침묵이 개입될 대, 음악을 매번 새로 쓰인다. 전시에서도 마찬가지다. 관람자가 자신의 감각, 기억, 상상을 작품 위에 겹쳐놓는 순간, 작품은 비로소 살아난다. 고정된 결과물에 머물지 않고, 그 앞에 선 사람마다 새롭게 열리는 문이 된다."

 

<예술은 죽었다> p.233-234

 

 

<예술은 죽었다>의 필자는 예술이 타인의, 개인의 경험과 어우러지는 순간이 예술이 가진 고정된 결과물의 틀에서 벗어나 각각의 사람에게 새롭게 열리는 문이 된다고 표현하였다. 즉, 작품이 결과물이라, 전시는 시간과 공간을 가진 하나의 '경험 구조'라는 점에 긍정하여 단순히 "봤다"는 것 보다 "그때 그 공간에서 느꼈다"로 회고될 수 있는 것이다. 이쯤 되니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체화가 되었다. 전시 기획자를 꿈꿔온 사람으로서 전시는 단순히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관람자들의 개개인의 내면에 불꽃을 일으킬 수 있는 순간이 되어야한다고 믿는 사람인 나는 작가의 의견에 동조할 수 밖에 없었다. 작품이 걸려서 팔리기까지 기다리는 단순한 판매의 장이 아니라 정말로 내 안의 무언가를 깨우거나 건드리는 느낌을 줄 수 있는, 내가 경험한 개인적인 모든 순간들이 이 전시 속에서 형태를 빚고 작품과 교감할 수 있는 순간을 가질 때 비로소 '예술은 살아있다'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예술이 '대상'에서 '상대'가 되고  삶 전반으로 예술이 뻗어 나갈 때 예술의 죽음은 피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가 예술을 향유하고 작품을 만드는 것은 나의 삶을 닮은 예술을 통해 타인의 삶에서 그 예술 작품을 바라보았을 때 다른 방식으로 해석될 때 예술 작품이 갖는 또다른 의미가 예술을 더욱 살려주기 때문이 아닌가? 많은 의문과 해답을 얻어가는 시간을 이 책을 통하여 가질 수 있는 기회였다.

 

스스로 창작자라고 하며 살아왔지만 이를 전공과 업으로 삼은 작가들을 보며 나의 어중간함에 혀를 내두른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창작자가 되려는 내게 그들은 때론 따끔하면서도 다정한 조언을 건네주었다. 이 중 가장 머릿속에 남는 것은 "네 작품에 너는 어떤 이야기를 담고, 그 이야기가 작품을 보는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갔으면 좋겠나?" 였다. 나는 늘 내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전달하거나 내가 좋아하는 것을 표현하기에 급급하였기에 이에 대해 명확히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많은 생각을 남기는 계기가 되었다. 작가들도 지속적으로 알고 있었을 것이다. 예술의 부활과 영속성을 위해서 우리가 어떤 입장을 갖고 예술을 대해야하 할 지, 창작자의 입장으로서 어떤 생각을 갖고 관람자들에게 다가가야 할 지 말이다.

 

<예술은 죽었다>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과 예술의 관계에 대하여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리뷰를 끝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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