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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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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수정의 소설 세계에서 실패나 상실은 파국적인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삶의 디폴트(기본값)에 가깝다. 소설집 『은의 세계』를 비롯해 그녀의 작품들을 관통하는 정서는 뜨거운 절망이 아니라, 차라리 서늘한 체념이다. 단편 『Fin』은 이러한 작가의 세계관이 잘 드러나는 작품 중에 하나이다.


이 소설은 제목이 암시하는 끝(Fin)이라는 절대적 상태를 전면에 내세우지만, 이곳에는 ‘진짜 끝’이 없다. 대신 작가는 ‘끝났다고 믿는 마음’과 ‘아직 끝나지 않은 현실’ 사이의 시차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자신만의 고통과 고독을 품은 채 그 감정들을 감추고 살아가는 네 남녀의 욕망으로 질주하는 삶이 단막극처럼 펼쳐지는 소설이다.

 

 

 

1. 무대 밖으로 밀려난 존재들의 생(生)과 배역(役)


 

위수정의 『fin』은 네 명의 배우와 매니저들이 서로의 삶을 카메라처럼 비추며 흔들리는 지점에 초점을 맞춘다. 이 인물들은 하나같이 배역이 인생을 잠식한 뒤의 인간들이며, 무대라는 은유는 그들에게 더 이상 비유가 아니라 생존 방식, 혹은 생존의 실패를 드러내는 구조에 가깝다.


우선, 기옥은 유진 오닐의 메리를 연기하면서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리는 중년 배우다. 그러나 그것은 치유라기보다는 현실로부터의 도피가 정교해진 것에 가깝다. 커튼콜에서 흘린 눈물은 감격이 아니라 들키지 않기 위한 감정의 대역(代役)이다.


다음으로, 보살핌이라는 이름의 그림자로 드러나는 윤주다. 윤주는 기옥의 매니저이지만, 돌봄은 이미 직업적 테두리를 벗어난 지 오래다. 윤주는 작품에서 가장 현대적인 캐릭터다. 타인의 삶을 관리하며 자기 자신의 욕망은 무한히 뒤로 밀어놓는, 그러나 그 빈 자리가 결국 독이 되어 돌아오는 구조. 그런 의미에서 가장 마음에 남는 인물이었다.


태인은 몰락을 예감하는 배우의 초상으로 본심이라는 위태로운 진실을 꼬집어 말한다. 태인은 성공을 맛본 배우지만, 그 성공은 스스로를 재앙으로 몰고 간다. 그가 내비치는 극단적 감정은 그 자체로 악함이 아니라, 불안을 견디기 위한 기형적인 방어기제로 읽힌다.


마지막으로, 상호는 네 인물 중 가장 조용하면서도 비극적인 인물이다. 그는 윤주와 마찬가지로 자기가 관리하는 스타를 질투한다. 그의 동경과 분노, 질투와 연민은 둘 다 ‘내가 되지 못한 나’의 그림자에서 비롯된다. 그가 태인의 마지막 밤까지 곁에 있었다는 사실은, 그 관계의 끈적한 불편함을 서사적으로 보여준다.


이처럼 『fin』의 인물들은 모두 “연극처럼 끝나지 않는 삶”을 산다. 그들은 배역을 벗어던지려 할수록 더 깊이 얽매이고, 역할을 내려놓는 순간조차 하나의 ‘연기’처럼 느껴진다. 위수정은 이 네 인물의 내부를 통해 불평등, 자아 분열, 관계의 소진을 집요하게 캐낸다.

 

 

 

2. 막이 내린 후의 세계에서 시작되는 진짜 이야기


 

위수정의 『fin』은 특이하게도 이야기의 절정을 향해 달려가는 대신, 이미 무대의 막이 내려간 자리에서 첫 장면을 연다. 연극 〈밤으로의 긴 여로〉의 마지막 공연이 끝나고, 배우들과 스태프들은 뒤풀이 자리에 모인다. 겉으로는 축하의 자리이지만, 그 밤은 화려한 조명이 꺼진 뒤에야 비로소 드러나는 인간의 민낯을 보여주는 은밀한 무대다.


뒤풀이가 무르익을수록, 축하의 분위기 뒤에 숨었던 균열이 하나둘 드러난다. 그날 밤, 태인은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이 사건은 얼핏 보면 돌발적인 사고 같지만, 사실상 모든 인물의 내면을 다시 조명하는 거대한 전환점이 된다.


『fin』에서 중요한 것은 태인의 죽음 그 자체보다, 그 죽음 이후 인물들이 마주하는 삶의 무게다. 배우와 매니저 사이의 권력, 성공과 몰락을 가르는 계급, 연예 산업이 소비하는 노동과 감정의 격차가 사건 이후 한꺼번에 수면 위로 떠오른다. 화려한 무대는 끝났지만, 현실의 무대에서는 누구도 퇴장을 선언할 수 없다.


그래서 『fin』의 끝은 종료가 아니다. 배역이 끝난 뒤에도 지워지지 않는 관계의 압력, 각자에게 부여된 역할의 잔재, 서로에게 기대고 밀어내던 감정의 그림자가 다시 한 사람의 삶을 흔드는 기점이다. 소설은 그것을 조용하고 정확한 시선으로 따라가며, 무대 뒤편에 남겨진 인간들의 진짜 이야기를 보여준다. 단지 막이 내린 것이 아니라, 막이 내렸기 때문에 비로소 시작되는 이야기를 말이다.

 

 

 

3. ‘끝 이후의 공백’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위수정이 ‘끝’을 다루는 방식


 

결국 『fin』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이 이야기는 어디에서 끝났는가?”가 아니라, 오히려 “어디에서 다시 시작되는가?”에 가깝다. 그들은 단지 자신이 서 있던 자리에서 미세하게 옮겨진다. 그리고 그 옮겨짐-관계의 거리, 감정의 무게, 역할의 규정 방식-가 바로 이 소설이 제안하는 재배치의 결말이다.


이 재배치는 공백에서 시작된다. 태인의 죽음 이후, 인물들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역할의 틀을 잃는다. 이 순간의 공백은 무너짐이나 추락이 아니라,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역할의 경계선이 흐려지는 순간이다. 그리고 바로 그 불확실성 위에서, 인물들은 다시 배치된다.


『fin』은 이 이동의 과정을 담담하게 기록한다. 애써 감동을 만들지도 않고, 끝내 회복을 약속하지도 않는다. 그저 막이 내려간 뒤 남겨진 자리에, 인물들이 어떻게 다시 서는지를 보여줄 뿐이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대부분의 ‘끝’이 작동하는 방식인지 모른다. 회복이 아니라 재배치. 상처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안고 서 있는 위치가 달라지는 것. 소설은 바로 그 지점에서 막을 내리며, 독자에게 묻는다. 당신은 지금, 어떤 자리에서 다시 서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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