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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사진첩을 정리했다.

   

저장 강박에 가깝게 쌓아둔 스크린샷과 이제는 만나지 않는 얼굴이 여럿 남아있었다. 그때는 사랑했지만 지금은 사랑하지 않는 사진이 대부분이었다. 저기서부터 여기까지 드래그해서 삭제 버튼을 누른다. 그걸 수십 번도 반복하며 수백 개의 사진을 깨끗하게 지웠다. 정리라는 말이 무색하게 그곳에 남겨둘 사진을 골라내느라 시간을 허비했지만.


사진첩에는 그 시절에 멋모르고 모아두었던 구절들이 많이 남아있었다. 지금도 뭘 알지는 못하지만 그때는 지금보다 더 어렸고, 책을 읽는다기보단 세상을 습득하는 것에 가까웠던 시절이었다. 인연과 사랑과 추억은 시간이 지나면 변모하기도 하지만 살아있는 것에겐 바뀌지 않는 습성이라는 게 있다. 나는 그때부터 쉽게 활자에 마음을 뺏겼다. 마음에 걸어들어오는 시구를 만나면 허덕이기에 바빠 사진첩에 넣어버리고는 그걸 소화의 한 과정일 것이라고 섣불리 믿고는 했다.

 

많은 독자가 그랬던 것처럼, 나 역시 어떤 구절들을 오래 곱씹으며 살았다. *불타는 자동차에서 내리라느니, **칠월의 밤은 또 얼마나 많이 흘러가 버렸냐느니 의미도 모르고 그런 구절을 중얼거릴 땐 마침내 시의 세계로 들어섰다는 착각을 하기도 했다. 사진첩에 곳간을 쌓아두고 살았던 때보다 아주 조금 자란 나는, 허연의 여섯 번째 시집을 집어 들며 아주 조금 긴장했다. 지난밤과 같이, 시 속 구절이 어느 순간 ‘쿡’하고 나를 찔러오면 어쩌지, 하는 실없는 긴장이었다. 

 

*허연, 「당신은 언제 노래가 되지」, 『당신은 언제 노래가 되지』.

**허연, 「칠월」, 『불온한 검은 피』.

 

손목께에서 두근두근 대는 맥박처럼, 검붉은 피를 내뿜으며 살아낼 것 같은 시를 만나면 도망부터 가고 싶어진다. 모두가 그렇게 될 일이라는 걸 알았지만 나는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미래를 기어코 만나게 된 사람처럼. 허연의 시를 읽으며 자주 그런 감정을 느꼈었다.

 

『작약과 공터』에서 시인을 ‘나비처럼 패배하는 슬픔의 챔피언’이라고 칭하며 시집의 발문을 쓴 유선혜 시인의 말처럼, “허연의 허무주의는 어쩐지 조금 달라졌다.” 나에게는 다소 그것이 삶의 관문을 여럿 지나온 사람의 초연함으로 느껴졌다. 함부로 타인의 삶과 단계를 짐작할 순 없는 일이지만, 시를 읽는 500명의 사람에겐 500개의 세계가 열리기 마련이라고 배웠으니, 사실은 내가 조금 더 초연해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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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붕어의 죽음을 통해 “견딜 수 없이/지난 계절이 그리워졌다//다시 시작하고 싶었다”(「금붕어 죽이기」)고 말하는 화자는 어디서 스쳐 지나간 것만 같은 얼굴이다. “텅 빈 매미의 죽음이/오히려/충만했던 여름을 알려주”는 것 같다고 느끼는 화자는 없음의 자리에서 있음을 인식하고 “윤회”를 꿈꾸지만, 그 부재와 존재를 인식하는 것이야말로 그다음 단계를 밟은 자만이 거칠 수 있는 과정이 아닐까. 너무 삶의 한 가운데에 서 있을 땐 휘청이지 않고 삶을 바라보는 게 그렇게도 힘들었던 것 같다.


독자는 작약이 핀 공터에서 어떤 얼굴을 마주한다. “어느 별에서 왔”(「스텔라」)느냐고 묻는 화자의 얼굴이다. “신이 너를 조립하고 명명했”다고 말하는 화자의 얼굴엔 사랑이 피어있다. 사랑이 살아있다. 난생처음 겪는 “나의 전부가 나를 버려도 좋”(「파도는 아이를 살려둔다」)은 얼굴. 어떤 한 생이 나의 생으로 다가와 그것이 내 것이 되고 내 것이 그것이 되는 경험을 한 자의 얼굴이 보인다.

 

이제 허연의 시 속 화자는 이제 “심장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다. “그리고/내 전쟁이/압도적으로 슬픔에도 불구하고/승리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화자는 “전쟁을 알기 전 나는 더 불행했다/죽으면 다시 죽지 않는다는 사실을 몰랐다”(「심장에 대해 말하기」)고 고백한다. 그에게 시 쓰기가 전쟁이었던 이유는 삶이 “이별”과 “발아”를 무차별하게 반복하는 “전쟁터”이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이 시의 부제인 시작법(詩作法)은 시 쓰기가 누군가에게 “심장”이자 “전쟁”이 되는 이유가 된다.

 

생명이 다한 자리엔 새로운 생명이 깃든다. 전쟁이 휩쓸고 간 땅에 슬픔의 씨앗이 뿌려지고 발아한다. 단순하지만 아주 잔인한 그 문법을, 화자는 이제 말하고 싶어진 것 같다. 그것을 발화하기 위해 심장을 들여다보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건 “세상의 모든 가여운 머리를/기울어가는 머리들을/받쳐주고 싶”(「기울어가는 생(生)」)은 마음과 일맥상통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


공터 한쪽엔 작은 수도원이 있었고 

천사상이 있었다

천사는 앞에서 보면 천사였지만

옆에서 보면 슬픔이 짙었다


도망가지 못했다 

새들이 인도했지만

나의 피는 느리고 흐렸다


공터에선

당신의 아름다운 나라와 

 내 끔찍한 나라가

불온하게 빛나고 있었다


세상에는 이상한 공터가 있어서 

마음을 멍하게 하는 공터가 있어서

작약이 있어서


—허연, 「작약과 공터 2」 부분


 

그러니 세상엔 이렇게도 많은 “작약”과 “공터”가 자꾸 나타난다. “진저리가 날 만큼/벌어질 일은 반드시 벌어”(「작약과 공터」)지는 삶의 슬픈 주기처럼.

 

다시 사진첩 얘기로 돌아와 볼까. 나는 사진첩에 있는 모든 사진을 지울 수야 있을까.


당장 가지고 있는 모든 사진을 삭제하면 휴대전화엔 쥐똥만 한 저장공간이 새로 생길 것이다. 그러면 새로운 앱을 깔고 새로운 사진을 찍어댈 수 있을까. 아마 예상해 보건대 그 많은 사진을 지웠던 수고는 까맣게 잊은 채 또 쓸데없는 사진을 찍고 쓸모없는 앱을 내려받으려 할 거다.

 

사람은 평생 무언가를 그리워하며 살지만, 그럼에도 또 무언가를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자리에 두게 된다. “고통 받는 삶의 형식이 필요”했기에 “수도원에서 도망”(「슬픔에 슬픔을 보탰다」)칠 수 있었던 화자를 떠올린다.

 

 

***이 글에 인용된 모든 시 구절은 모두 『작약과 공터』에서 가져왔다. 편의를 위해 인용 표기에 작자 표기를 생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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