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은 했다만 티켓팅이 이렇게나 어렵다니. 본 경기 때 어떤 자리도 잡지 못해 그 뒤로 하루에 10번 넘게 예매 창을 들락날락했더니, 누군가 취소한 티켓을 겨우 주울 수 있었다. 원래 나만 알고 싶은 인생작이었는데, 이제는 전 세계에 있는 모두가 좋아하는 작품이 되어 버렸다.
나는 이 작품의 오랜 팬이다. 처음 이 작품을 알게 된 건 5년 전,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당시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좋아하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유튜브에서 뮤지컬 영상을 한창 찾아보곤 했었다. 그러다 이 작품을 알게 되었다. 귀여운 로봇들이 부르는 재밌고도 감성적인 넘버에 푹 빠져서, 용돈을 탈탈 털어 극장을 찾았다. 그리고 대본집과 OST CD도 사고, 달달 외울 정도로 보고 들었다. 또한 극 중 넘버 "끝까지 끝은 아니야"를 들으며 고3 입시를 버텼다. (실제로 나는 이 넘버가 나를 원하던 대학에 데려다주었다고 말하고 다닌다.) 그리고 이제는 <어쩌면 해피엔딩>을 전 시즌 포함 벌써 5번이나 본, 멋진(?) 어른이 되었다.
이 작품을 볼 때마다 항상 생각한다.
"고물이 된 로봇들의 사랑 이야기"라니. 어떻게 이런 소재로 이야기를 쓸 수 있었을까.
그리고 어떻게 이런 소재를 이렇게나 섬세하게 풀어낼 수 있었을까.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은 사람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헬퍼봇'이지만, 이제는 구형이 되어 버려진 채 혼자 살고 있는 올리버와 클레어의 이야기다. 올리버는 옛 주인 제임스가 자신을 데리러 올 것이라 믿는 헬버봇 5이고, 클레어는 옛 주인들의 이별을 목격해 사랑에 냉소적인 헬퍼봇 6다. 그들은 우연히 서로를 마주하고 함께 제주도로 여행을 떠나게 되면서, 사랑이라는 감정을 깨닫고 사랑이 주는 설렘과 기쁨을 알게 된다. 그러나 클레어의 몸이 자꾸 고장 나며 완전히 수명이 다 할 날이 가까워지고, 사랑이 슬픔과 고통 또한 동반한다는 것을 깨우치게 된다.
이 작품이 왜 좋냐고 묻는다면,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까. 차라리 2시간짜리 강의를 하고 싶은 마음이다. 그 심정을 가다듬고 요점만 얘기하자면, 우선 신박하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컨셉, 유쾌하고 섬세한 대본, 그리고 배우들의 귀여운 로봇 연기가 빛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말 이걸 빼놓을 수가 없다.
사랑이 무엇인지 정의하는, 따뜻하고 감성적인 음악.
고맙다, 올리버
올리버가 옛 주인이자 '친구'인 제임스와의 추억을 회상하는 넘버이다. 올리버와 제임스의 화음이 정말 예쁜 듀엣곡이다. 특히 "세상 모든 게 다 변해도 너는 여전히 같겠지. 그래, 지금처럼 날 위해, 그렇게 내 곁에 함께 머물러줘"라는 부분이 그렇다. 그리고 이 가사는 제임스를 계속해서 기다리는 올리버와, 마지막 순간에도 올리버 생각을 한 제임스의 관계성을 잘 보여줌과 동시에 사랑하는 사람들의 상호적인 믿음을 나타낸다.
또한 이 넘버는 제임스에 대한 올리버의 그리움이 짙게 드러나는데, 제일 그런 감정이 잘 나타나는 부분을 뽑아보자면 곡의 마지막 부분이다. 올리버와 제임스가 "고맙다, 올리버"라는 가사를 함께 3번 연속 노래하다, 마지막 4번째는 올리버 혼자 노래한다. 그리고 "라라라" 하는 올리버의 보컬라이즈 허밍으로 노래가 마무리된다. 너무나 그립지만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에 가득 부푼 채 노래를 끝내는 올리버를 보면, 결말을 알면서도 올리버가 제임스와 재회할 수 있기를 바라게 된다.
사람들로부터 배운 것
클레어가 자신의 옛 주인들의 슬픈 이별을 회상하는 넘버이다. 이때 바이올린과 첼로 연주자 위로 조명이 들어오는데, 바로 그 두 연주자(남녀)가 클레어의 옛 주인들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곡의 전반에 펼쳐지는 바이올린과 첼로의 합주가 참 아름답고도 아프게 느껴진다. 영원한 마음 같은 건 없다고, 세상 어떤 사랑도 끝이 온다는 가사는 사랑의 유한성이 주는 아픔을 강조하는 동시에, 그런데도 왜 우리는 사랑을 하는 것인지 관객들에게 질문한다.
사랑이란
올리버와 클레어가 사랑이라는 감정을 깨닫는 넘버이다. 그들은 2절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사랑이란, 봄날의 꽃처럼
아주 잠시 피었다가 금세 흩어지고 마는 것.
사랑이란 슬픔과 같은 말.
이렇게 사랑에 고통이 뒤따른다는 것을 이미 알면서도, 올리버와 클레어는 클라이맥스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난 널 더 보고 싶어, 널 더 듣고 싶어,
계속해서 너와 함께 있고 싶어.
더 웃고 싶어, 난 더 알고 싶어,
매일을 너와 함께 하고 싶어 난.
주인들과의 일화로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 그리고 그에 따른 아픔을 이미 목격하거나 경험한 그들이지만, 이러한 가사를 부르며 서로를 사랑하기를 기꺼이 선택한다. 사랑하지 않겠다고 한 약속을 저버리고, "바보같이" 행동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와 넘버들을 통해 작품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끝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플 걸 알면서도, 왜 사랑을 하는 걸까? 그리고 이 질문의 답을 작품 곳곳에 숨겨 놓았다.
클레어가 올리버의 방문을 두드리기 바로 직전, 올리버는 화분과 함께 책을 보며 다음과 같은 구절을 읽는다.
듀크 엘링턴의 즉흥 연주는, 같은 멜로디를 반복하면서도
그 아래 하모니는 끊임없이 변주된다.
하모니는 화음을 뜻해. 제임스가 가르쳐준 거, 기억해?
즉, 엘링턴이 연주하는 멜로디는 그대로 유지되지만,
그 안에 내재된 감정은 하모니를 따라 유려하게 움직인다.
여기서 올리버의 대사는 '하모니'를 강조한다. 하모니는 무조건 두 개 이상의 음이 필요하다. 하나의 음이 혼자서 만들어낼 수 없다. 그리고 그 하모니는 단조로운 멜로디를 무한히 다채롭게 한다. 이 점이 우리의 인생을 투영한다. 한 사람의 인생이 여러 음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멜로디라면, 살아가면서 누군가와 함께할 때 그 멜로디들은 합쳐져 하모니가 된다. 함께하기에, 사랑하기에, 서로가 서 있는 공간의 빈자리를 채우며 멜로디는 더욱 풍성해지고, 끊임없이 변주된다.
이렇게 '사랑하며 살아가는 인생'을 듀크 엘링턴의 "즉흥" 연주에 빗댄 것은 정말 탁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인생은 예측할 수 없고, 짜여 있지 않다는 점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만들어지는 아름다운 하모니는 더욱더 짜릿하고, 강렬하며, 잊지 못할 순간을 선사할 것이다.
"이 사랑이란 건 늘 그래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그럴 때 무심하게 찾아와
모든 걸 바꿔놔
이 사랑이란 건 원래 그래
살아갈 이유 되기도 해
몰랐던 행복들을
함께 찾게 해줘"
- <어쩌면 해피엔딩> 넘버 "First Time In Love" 中
즉 혼자인 것보다 나은 오늘을 만드는 거, 예상할 수 없는 내일을 기대하게 만드는 거, 그게 사랑이다. 그러니 우리는 언젠가 끝이 분명히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오선지 위를 함께 걷기를 기꺼이 택하는 것이다.
이러한 메시지를 상징하듯, 이 작품의 넘버들은 멜로디의 반복과 변주가 참 많다.
"우린 왜 사랑했을까"는 극의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을 여는 넘버로서, 수미상관의 연출을 강조함과 동시에 극의 주제를 확실히 제시한다. 또한 이는 올리버가 클레어에게 제임스 얘기를 꺼낼 때 LP 판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이기도 하고, 제임스가 올리버를 위해 피아노로 직접 연주하는 곡이다. 즉 '제임스와 올리버 간의 사랑'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알기 전의 평온함을 표현하는 넘버 "나의 방 안에"는, 올리버가 클레어에게 충전기를 빌려주고 돌려받을 때 나오는 "충전기 왈츠"에서 다시 등장한다. 원래의 메인 멜로디가 통통 튀는 귀여운 분위기로 변주되어 클레어 때문에 변해버린 올리버의 일상을 그려낸다. 그리고 나중에는 사랑이라는 감정의 고통을 알게 된 후에 서정적인 분위기의 "나의 방 안에 rep."로 재등장한다.
그 넘버에서 "Goodbye, My Room"의 멜로디도 삽입된다. 이는 단순히 여행을 떠나기 전 방에게 건네는 인사를 담은 노래인데, "나의 방 안에 rep."에서는 올리버와 클레어가 서로의 기억으로 가득 차버린 자신의 방에게 고하는 작별 인사를 의미하는 테마로 변하게 된다.
"기억을 지우기"라는 넘버에서도 "Goodbye, My Room"의 멜로디가 강렬한 현악기 선율로 다시 등장하며 두 헬퍼봇의 작별이 극적으로 표현된다. 그러다가 넘버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후렴구 멜로디로 마무리되는데, 이는 끝내 기억을 지우지 않은 올리버의 선택을 내비치는 듯하다.
그리고 사랑이라는 감정을 깨닫는 순간을 그린 넘버 "사랑이란"의 후렴구는, 마지막 결말 장면에서 등장인물들의 대사 뒤에 깔리는 허밍으로 재등장하며 잔잔하고 로맨틱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는 작품의 결말이 어쩌면 해피엔딩일 것이라고 포근히 암시하는 듯하다.
이 밖에도 내가 다루지 않은 반복과 변주 부분이 꽤 있다. 어떻게 그렇게 넘버의 조각들을 적재적소에 탁월하게 끼워 놓았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이렇듯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은 우리의 멜로디가 서로를 통해 반복되고 변주됨을 알려줌과 동시에 그러한 교훈을 작품 곳곳에 심어 놓은, 참 똑똑한 웰메이드 극이다. 그러니 과몰입과 해석을 좋아하는 내가 빠져들 수밖에.
5번째 관극을 끝내고 극장을 나가려는데, 로비에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바로 윌 애런슨 작곡가 님이었다! 나는 처음에는 먼발치에서 바라보다가, 이번만 용기를 내보기로 마음을 먹고 줄을 선 다음 티켓에 사인을 부탁드렸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씀드렸다. 어쩌면 해피엔딩의 음악을 들으면 마음이 몽글몽글해지고 기분이 좋아진다고, 이런 작품을 만들어주셔서 감사하다고. 작곡가 님은 자신이 더 감사하다고 답해주셨다. 어느새 내 뒤로 늘어선 긴 줄 때문에 재빨리 엉거주춤 인사를 드리고 나왔는데, 그 순간 왠지 울컥한 감정이 솟아올랐다. 너무나도 좋아하는 작품의 창작자와 직접 대화하다니. 아, 어떡하지. 작곡가 님과의 만남으로 이 작품이 더더더 좋아져 버렸다. 그러니까 나는 이 작품, 특히 넘버에 대한 찬양 글을 쓸 수밖에 없었다.
글을 이만 여기서 마친다.
이 넘버들을 앞으로도 계속 들으면서, 나도 끝에 대한 두려움 없이 기꺼이 사랑해 볼 것이다.
이 작품을 만난 이상, 내 인생도 어쩌면 해피엔딩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