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인류는 늘 영생을 꿈꾼다. 영생을 위해 불로초를 찾아 나선 중국의 진시황을 시작으로 인류는 그 긴 역사에서 영생을 바랐다. 그러나 비약적인 의료 기술의 발전에도 우리는 영생에 도달하지는 못한다. 수많은 SF 소설은 어느덧 영생을 그리기 시작했고, 닐 셔스터먼의 '수확자' 역시 영생의 인류를 보여준다.

 

소설 속 인류는 영생을 누린다. 심지어 신체 나이의 회춘도 가능하다. 이에 따라 인구수는 줄지 않고 증가하기만 하는데, 인구수를 인위적으로 조절하는 존재가 생겼다. 바로 수확자다. 이들은 각자의 신념에 따라 사람의 목숨을 '수확'한다. 그들은 모두의 경외 대상이다. 사람들은 언제든 자신이 수확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그들을 두려워하지만, 그들에게 수확당하지 않기 위해 비위를 맞춰주거나 그들을 우러러보는 자들 역시 존재한다.

 

주인공 시트라는 수확자 패러데이의 선택을 받아 그의 수습생이 된다. 그녀와 정반대의 삶을 살아온 소년 로언 역시 수확자 패러데이의 수습생이 된다. 수확자가 될 수 있는 건 둘 중 한 명뿐이었다. 한 수확자가 한 번에 한 명 이상의 수습생을 두는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자 그들의 계명에도 존재하지 않은 경우였기에, 수확자 패러데이를 시기했던 자들은 한 가지 조건을 걸게 된다. 둘 중 하나가 수확자가 된 그날, 남겨진 한명을 가장 먼저 수확해야 한다고. 시트라와 로언의 미래는 이 순간 정해지게 된다. 한 명이 살면 한 명이 죽는 것으로. 그러나 이러한 운명이 기다리고 있음에도 둘은 점차 서로를 의식하게 된다. 그 사실을 애써 외면해도 서로의 존재가 점점 특별해지던 그때, 그들의 스승인 수확자 패러데이가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남겨진 시트라와 로언은 각각 다른 수확자의 밑에서 수습생 생활을 이어가게 되는데.......

 

 

 

영생 시대의 인공지능


 

수확자 시리즈 중 두 번째 이야기의 제목이기도 한 '선더 헤드'는 세계관 속 전지전능한 인공지능이다. '클라우드'가 사라지고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 것이 선더 헤드였는데, 마치 현대의 인공지능을 보는 듯한 장면이 여럿 등장한다. 사람들이 말을 걸면 대답을 해주는 건 기본이고, 법을 제정하며 처벌하는 역할까지 수행한다. 이 세계에서 선더 헤드의 영향력이 닿지 않는 존재는 수확자들뿐이다. 선더 헤드로 인해 비효율적인 구시대 방식은 사라졌으며, 오직 선더 헤드에 의지한 채 세상은 움직인다.

 

선더 헤드의 존재는 인공지능의 시대에 발을 딛고 있는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유발한다. 소설 속 선더 헤드는 완벽한 인공지능 그 자체로, 도덕성마저 완전무결하다. 그러나 현대의 인공지능이 발전한다 해서 과연 선더 헤드처럼 될 수 있을까? 그 끝은 선더 헤드일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현대의 인공지능은 사용자로부터 학습함으로서 존재할 수 있다. 무차별한 학습으로 인해 현대의 인공지능은 계속하여 발전하고 있지만, 완전한 도덕성을 지녔다고는 보기 어렵다. 모든 인풋이 인간뿐이기 때문이다. 선한 사람이 있다면 악한 사람도 있듯이, 인공지능은 선함과 악함을 구별하지 않고 모두 학습한다.

 

그러나 선더 헤드는 잘못된 것은 옳지 않다고 인지한다. 인공지능보다는 교과서에 가깝다. 그로 인해 사람들의 삶은 더 윤택해졌으며, 현대 인류가 고통받는 질병이나 여러 사회적 문제에서도 자유롭다. 과연 우리의 인공지능이 최종적으로 발전하게 된다면 이와 같은 형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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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더 헤드의 영향력이 닿지 않는 유일한 존재는 수확자들이다. 그들은 선더 헤드의 데이터에도 존재하지 않으며, 선더 헤드의 법에서도 자유롭다. 사람들을 영생으로 이끈 존재와 사람들의 목숨을 수확해야만 하는 존재. 두 존재의 운명은 마치 평행선을 달리는 듯하다. 절대 만날 수 없고, 서로에게 영향력도 끼칠 수 없는 존재. 선더 헤드도 수확자도 분명 필요하지만, 선더 헤드로 인해 생겨난 수확자는 선더 헤드가 유발한 영생으로 발생한 결과이니, 어쩌면 모든 일의 시작은 완전무결한 인공지능이다.

 

 

 

영생 시대의 사랑


 

두 주인공 시트라와 로언의 관계는 사랑이라고 정의 내리기 어렵다. 결국 누군가는 죽여야 하고 누군가는 죽임을 당해야 하지만, 둘은 함께 지내면서 서로에게 이끌린다. 그러던 차에 완전히 다른 신념을 가진 수확자들 밑에서 수습생 생활을 이어가게 된 두 사람은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게 된다. 로언은 '집단 수확'을 즐기는 수확자 고더드 밑으로 들어간다. 수확자 고더드와 그의 일행들은 수확자인 것에 엄청난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들의 행세는 마치 신과 같았다. 고더드는 실제로 스스로를 신이라 칭한다. 수확의 할당량을 과하게 넘지만 않는다면 어떤 방식의 수확이든 허용되기에, 고더드 일행은 '집단 수확'을 주로 수행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그들이 무고한 집단의 신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의 힘을 보여주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에. 고더드 일행의 '집단 수확'은 마치 현대 사회의 대형 사고를 보는 듯하다. 수확자는 정말 신과 같은 존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등장인물이다.

 

시트라의 새 스승은 수확자 퀴리이다. 수확자 패러데이의 친구로, 두 사람은 한때 사랑하는 사이였다고 한다. 이야기 초반, 패러데이가 유독 수확자의 사랑에 민감하게 반응했던 것도 퀴리 때문이었다. 수확자 퀴리는 얼핏 보면 수확자 패러데이와 유사해 보이지만, 그들은 수확 이후의 태도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수확자 패러데이는 수확을 의무라 생각한다. 의무가 맞긴 하다. 그러나 의무가 삶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태도를 보여준다. 공적인 일과 사적인 시간을 철저하게 구분한다. 반면 수확자 퀴리의 의무는 그녀의 삶과 밀접하다. 수확된 자의 가족들은 보통 1년 간의 수확 면제권을 받는데, 수확자 퀴리는 그 면제권을 준다는 이유로 그들을 집에 초대하여 근사한 저녁 식사를 대접한다. 마치 수확된 자를 위로하듯.

 

고더드는 완전한 악인이다. 그 악인 밑에서 자라게 된 로언 역시 벗어나려 해도 점차 익숙해지는 삶을 받아들여야 했을 것이다. 퀴리와 시트라 역시 그러한 생각이었고. 로언과 시트라 사이에 더 이상 사랑은 남지 않았다.

 

 

한때 사랑이 될 수도 있었던 감정은 이제 오래전에 깨어진 심장의 체념이 되었다.

 

다행히 로언의 심장은 너무나 차가워져서, 금이 좀 간다고 아플 것도 없었다.

 

 

결국 수확자가 되는 건 시트라였다. 두 사람이 이제 패러데이의 수습생이 아니더라도, 이전의 조건은 두 사람을 향한 조건이었기에 시트라는 로언을 수확해야 하는 입장에 놓인다. 로언은 그 이전부터 쭉 시트라의 손에 죽어도 좋다는 생각을 한다. 고더드의 밑에서 절대 수확자가 될 생각이 없던 로언은 이런 삶이라면 기꺼이 시트라의 손에 수확되는 편이 훨씬 나을 거 같다는 생각을 항상 갖고 있었다. 그러나 시트라의 입장은 달랐다.


 

그들은 둘 다 서로에게 너무 마음을 많이 썼다. 그게 문제였다.

 

시트라는 그에게 감정이 남아 있는 한 결코 수확자의 반지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시트라는 최선을 다해 두 사람 모두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로언의 손에 수확될 생각도 없었고, 로언이 제 손에 수확되게 둘 생각도 없었다. 운명이 시간이 다가오고, 시트라의 기지로 로언에게 면제권이 수여된다. 면제권의 발동으로 시트라는 물론 모든 수확자는 1년간 로언의 목숨을 수확할 수 없었다. 로언조차도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이 순간 그들은 서로를 향한 사랑을 확인한다. 너무나도 지독했던 운명 속에서 차마 사랑이라 부르지 못한 감정을 결국 마주하게 된다.

 

 

그녀에게 지금보다 더 감탄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시트라는 방금 그 생각이 틀렸음을 증명했다.

 

「사랑해.」 로언이 말했다.

 

「나도야.」 시트라가 대꾸했다. 「이제 사라져.」

 

 

로언과 시트라의 사랑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랑이 묘사된다. 패러데이와 퀴리 사이의 너무나도 오래되어서 이제는 동료애라고 불러야 되는 사랑, 시트라와 가족들의 사랑, 회춘을 반복하여 주기적으로 새로운 사랑을 찾는 불특정 다수까지. 현재의 사회를 '사망 시대'라고 부르는 소설 속 시대에서, 로언은 사망 시대를 열정이 가득했던 시대로 명명한다.

 

사망 시대에서 영원한 사랑을 외치는 건 참으로 흔한 일이다. 우리의 삶은 유한하니,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영원의 이름을 빌리는 것이다. 사망 시대는 영원한 사랑을 언제나 갈망한다. 그러나 영생의 시대에 영원한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 회춘을 통해 신체 나이를 되돌린 사람들이 새로운 사랑을 찾는 건 너무 당연했다. 당장 로언의 가족이 그랬다. 그에게는 이름 모를 형제가 수없이 많았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물론,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회춘을 통해 새 사랑을 찾았다. 참 모순적인 일이다. 영원한 사랑을 찾아 헤매던 인류는 영원한 삶이 찾아오자 태도를 바꿨다. 진정한 사랑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 속에서 시트라와 로언의 감정은 충분히 사랑이라 부를 만하다.

 

수확자 시리즈는 총 세 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에서 첫 번째 책인 '수확자'는 전반적인 세계관에 대한 설명과 함께, 주인공 시트라와 로언을 중심으로 수확자들이 필연적으로 겪는 삶과 그 삶 속 고뇌에 대한 이야기다. 순수했던 어린 시절, '영원히 살았으면 좋겠어!'라는 생각을 종종 했다. 이젠 더이상 영생을 바라지 않지만, 영생의 지구는 늘 궁금했다. 그 궁금증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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