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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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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가?"

 

기획자는 아이디어 뱅크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단서를 읽는 사람이다. 광고 현장에서 15년 넘게 '설득'을 설계해온 이규철은 『욕망하는 기획자와 보이지 않는 고릴라』에서 이처럼 말한다. 우리가 열심히 쳐다보는 '결과' 뒤에 숨어 있는, 눈에 잘 띄지 않는 '사실'이야말로 기획의 씨앗이 된다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훈련
 
책은 1999년 하버드대의 심리학자 대니얼 시몬스와 크리스토퍼 차브리스가 진행한 '보이지 않는 고릴라' 실험에서 화두를 던진다. 흰 옷을 입은 팀과 검은 옷을 입은 팀이 농구공을 패스하는 영상을 보며 흰 팀의 패스 횟수를 세라는 과제. 그런데 영상 중간에 고릴라 복장을 한 사람이 등장해도, 실험 참가자의 절반은 그 존재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 실험이 드러낸 것은 '부주의맹(inattentional blindness)'—우리는 집중하는 대상 외의 것들을, 아무리 명백하더라도 보지 못한다는 인지의 한계다. 저자는 바로 이 지점에서 기획자의 딜레마를 발견한다. 우리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들으려는 것만 듣는다는 것을. 데이터는 쌓이지만, 통찰은 사라지고, 회의는 길어지지만 본질은 희미해진다.

 
 

일상에서 출발하는 44개의 생각 도구

 
저자는 이 문제의식을 44개의 '생각 도구'로 구체화한다. 확증 편향, 칵테일파티 효과, 스트라이샌드 효과, 붉은 여왕 가설, 호손 효과, 인지적 구두쇠... 심리학과 경제학, 행동과학의 개념들이 일상의 현상과 마케팅 현장에 적절히 연결된다.
 

예컨대 헬스장에서 사람들이 거울 앞에서 유독 더 열심히 운동하는 모습을 보며 '호손 효과'(관찰받는다는 인식이 행동을 변화시키는 현상)를 떠올리고, 친구의 은밀한 취미에서 '인지적 구두쇠'(에너지를 아끼려는 뇌의 습성)를 읽어낸다. SNS에서 금지된 콘텐츠가 오히려 더 확산되는 현상 속에서 '스트라이샌드 효과'를 발견한다.

 

이처럼 익숙한 공간과 순간이, 저자의 시선 아래선 '기획을 위한 인사이트의 광맥'으로 바뀐다. 카페에서 마주친 낯선 이의 표정,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사람들의 자세, 공연장 로비에서 관객들이 나누는 대화의 뉘앙스 등 모든 것이 기획의 재료가 된다.

 
 

기획자를 위한 시선의 전환

 
기획 현장은 결과 중심이다. 참여자 수, SNS 노출, 클릭률, 예산 대비 효율. 그러나 저자는 묻는다: "그 보고서엔 무엇이 빠져 있는가?"
 

바로 그것이 우리가 놓친 것은 바로 '보이지 않는 고릴라'이다. 전시 오픈 이후 관람객 수는 집계하지만, 작품 앞에서 사람들이 머뭇거린 이유는 기록하지 않는다. 공연의 티켓 판매율은 분석하지만, 객석에서 흘러나온 침묵의 의미는 읽지 못한다. 캠페인의 도달률은 측정하지만, 사람들이 '좋아요'를 누르지 않은 이유는 질문하지 않는다.

 

책은 이런 태도를 단순한 메시지로 끝내지 않고, '생각 도구'로서 훈련 가능하다고 말한다. 회의실의 프레젠테이션, 브랜드 캠페인의 실행, 조직 내부의 피드백 루프, 관객과의 커뮤니케이션—이 모든 영역에서 '보이는 것 너머'를 읽어낼 수 있는 언어와 모델을 제시한다.

 

이를 통해 기획자는 더 이상 아이디어만 던지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설계하는 전략가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문화예술 기획자에게 던지는 질문

 
특히 문화예술 분야의 기획자에게 이 책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전시를 기획하는 큐레이터, 공연을 만드는 프로듀서, 페스티벌을 설계하는 디렉터—이들은 모두 '관객의 경험'을 다루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우리는 얼마나 관객을 제대로 보고 있을까? 전시장에서 관객이 작품 앞에 머문 시간은 측정하지만, 왜 그들이 그 작품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는지는 궁금해하지 않는다. 공연 후 박수 소리는 들리지만, 그 박수에 담긴 온도차는 감지하지 못한다. SNS의 '인증샷'은 보이지만, 정작 그들이 무엇을 기억하며 돌아갔는지는 알지 못한다.

 

저자가 제시하는 44개의 생각 도구는, 바로 이 '보이지 않는 관객'을 읽어내는 렌즈가 된다. 확증 편향을 경계하며 우리가 믿고 싶은 성공 시나리오를 의심하고, 칵테일파티 효과를 활용해 관객이 진짜 귀 기울이는 메시지를 포착하고, 붉은 여왕 가설을 통해 끊임없이 진화하는 관객의 취향을 따라잡는다.

 

물론 이 책이 모든 기획자에게 '만능 해답'을 주는 것은 아니다. 심리학·경제학 개념을 다루다 보니, 때로는 "이 개념을 내 현장에 어떻게 적용할까?"라는 실전적 고민이 남는다. 특히 구체적인 실행 방법보다는 '사고의 틀'에 집중하기에, 당장 내일 회의에서 쓸 수 있는 템플릿을 기대한다면 아쉬울 수 있다.

 

하지만 오히려 그 고민이 이 책이 던지는 핵심이기도 하다. 기획자의 태도, 질문의 방식, 앵글의 전환—이런 근본적 물음에 책은 풍부한 사유와 언어를 제공한다.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질문하는 법을 가르친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진짜 기획의 시작점이다.

 

책을 읽다 보면, 저자가 15년 넘게 광고 현장에서 체득한 '현장의 감각'이 곳곳에 스며들어 있음을 느낀다. 이론서가 아니라 실전서이되, 매뉴얼이 아니라 성찰서인 이유다. 저자는 독자에게 정답을 주기보다, 함께 고민하기를 권한다. 그래서 이 책은 읽는 것이 아니라 '대화하는' 책에 가깝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용기

 
기획자가 되고 싶었다면, 이제는 묻자.
 

"나는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가? 무엇을 보지 않으려 하는가?"

 

이 질문 앞에서 답을 찾는 것이야말로, 기획이라는 행위가 시작되는 순간이다.

 

『욕망하는 기획자와 보이지 않는 고릴라』는 단순한 기획서 작성법이 아니라, 내가 설계하는 '사람과 그 마음'에 대한 태도를 묻는 책이다. 문화 콘텐츠를 만들고, 메시지를 전달하고, 관객을 만나는 당신이라면—이 책이 던지는 질문에 응답해 볼 시간이다.

 

결국 기획이란, 보이는 것을 재배열하는 일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내는 일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언제나 이 질문에서 출발한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놓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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